안미선 지음. 오월의봄 펴냄. 2014년 9월 17일 초판 1쇄.
“남자 친구가 피임을 하지 못했다고 일러 줬을 때 은민은 침대에서 내려와 여관방 구석에 한동안 쭈그려 앉았다. 이제 오롯이 자기 몸의 문제로 돌아와 책임을 져야 한다. ‘이제 너 어떻게 할래?’ 하는 눈으로 남자 친구는 은민을 쳐다봤다. 그 시선을 피해 그녀는 더 단호한 자세로 일어났다. 이런 상황에서도 파트너의 감정을 고려하고 되레 위로해 주면서 당당한 척 굴어야 한다는 게 짜증이 났다(17쪽).”
마땅히 져야 할 짐을 꺼린 자. 그걸 되레 달래 준 은민. 여러 여성 삶에 맺혀 사무쳤을 얘기 아닐까. 많이 놀라기도 했단다. “유나가 놀란 것은 무엇보다 성관계에서 피임을 하지 않는 경우가 생각보다 아주 많다는 점이었다. 여성들은 제대로 된 피임을 남자에게 요구하지 못했고 남자들 또한 피임은 자기 책임이 아니라고 여겼다(34쪽)”지 않은가.
한국 사회는 오래도록 ㅡ 지금도 마찬가지로 ㅡ ‘여성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부러 귀 막기도 했고. 피임에 무책임한 걸 무슨 특권인 양 여긴 남자도 많았던 터라 이루 다 말할 수 없이 미안하다. 부끄럽고. 편하지 않아 조마조마한 ㅡ 하여 두려운 ㅡ ‘여성 목소리’를 새겨들어야 할 까닭이 차고 넘치는 사회. 생각 새로 다질 때다.
귀 기울일 책 속 토막 넷 더.
등을 돌린 여자는 욕망과 불안과 두려움 때문에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을 짓고 있다. 피하지도 마주하지도 못한 채, 정숙한 여자여야 한다는 강박과 낯선 손길에 대한 호기심과 초조함 사이에서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거나 표현하지 못한다. 동의하는 것도 동의하지 않는 것도 아닌 관계. 더 이상 소통이 되지 않고 평범하지만 가학적이고 폭력이 스며 있는 관계(27쪽).
미경. “일반 아동에 비해 장애아는 양육을 전적으로 엄마가 다 맡아야 하는 게 심각해요. 우리나라 유교 사상은 씨는 문제가 없고 엄마가 잘못해서 낳은 것처럼 여겨서 죄의식 때문에라도 혼자 십자가를 다 짊어지고, 그게 제일 힘든 거 같아요(116쪽).”
“백화점에서 회사 관리자들이 여성 노동자보고 하는 말이 ‘너 나이 먹고 잘리면 마트 가서 캐셔밖에 못해. 너희는 나이 먹으면 쓸모가 없는 사람들이야. 필요가 없어’ 하는 소리예요. 감정 노동 이야기하면 여성의 비정규 고용의 문제, 회사와의 문제도 같이 얘기할 수밖에 없어요(141쪽).”
식당에서 받은 설문지를 길에서 펼쳐 본다. 근무시간 아침 10시부터 밤 10시. 월급은 130만 원. 손님이 더 오면 1시간 정도 더 일함. 추가 근무에 대한 돈은 받지 않음. 휴일은 한 달에 평일 두 번. 명절 때도 대납을 해야 쉴 수 있음. 성희롱 아주 많음. 손님들의 신체 접촉 아주 많음. 데이트 권유 많음(1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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