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경 지음. 봄알람 펴냄. 2016년 9월 30일 1판 1쇄. 2016년 12월 26일 1판 3쇄.
“나는 아는 게 많지 않다. 얼핏 들었음에도 마음 두지 않은 채 얼굴 돌리고 산 남자였다”는 걸 알게 한 책.
책에서 꺼내 곰곰 생각한 여러 토막.
김다경. 나는 내가 뭘 한다고 바뀌리라고 생각해서 이러는 게 아니야. 이게 맞다고 생각해서 이러는 거지. 그리고 뭐든 변화는 있어! 처음에 미러링이 뭘 바꿀 수 있냐고 했지? 근데 미러링 덕에 여자들은 자신들이 겪어 온 폭력이 어떤 건지 정확히 알게 됐어(27쪽)!
안티미스코리아 운동, 내 제사 거부하기 운동, 부모 성 함께 쓰기 운동 등 여성주의운동에 앞장선 페미니스트이자 한의사. 처음 함께 일한 스승이 유명한 임신 전문 한의사였는데, 찾는 사람들이 전부 아들 낳는 처방만 바라는 것을 보고 남아 선호와 여아 낙태를 정면으로 비판했다(32쪽). ? 고은광순.
‘강간과 추행의 죄’라는 이름으로 바뀌기 이전에, 형법에는 ‘정조에 관한 죄’라는 명칭만 있었다. 이 명칭 개정은 1995년 12월 29일에 이뤄졌다(42, 43쪽).
1993년 서울대에서 재직하던 신정휴 교수가 실험실에서 계약직으로 근무하던 우 조교에게 성희롱을 했다.······중략······이 일을 계기로 성희롱이라는 죄목이 생겨났고, 피해자 중심주의라는 관점이 생겼다(45쪽).
1999년 2월 정부가 직장 내 성희롱을 문제로 인식해 기존 남녀고용평등법을 개정했다.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한 규정이 처음으로 명문화된 것이다.······중략······보이지 않던 성희롱이 인정받게 되기까지, 전진만 있었을 리 만무하다. 1994년 판결 이후, 남녀가 함께 앉으면 삼천만 원, “삼천만 원이 없으면 쳐다보지도 얘기하지도 접근하지도 말라”는 조롱 섞인 농담이 횡행했다(47쪽).
2002년 10월 당시 서울대 총장 정운찬이 한명숙 여성부 장관과의 면담에서 신 교수 성희롱 사건에 대해 “재계약에서 탈락된 우 조교의 앙심에서 비롯해 억울한 사람을 매장한 사건이었으며, 당시 우 조교를 지원한 여성운동이 신중하지 못했다”고 발언했다(47, 48쪽).
존속 고소와 친족 간 성폭행 제3자 고소가 가능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1992년 1월 17일 벌어진 강도 살인 사건이었다. 사망자는 검찰 간부였고, 살인자는 의붓딸의 남자친구였으며 사건 당시 딸도 함께였다. 사망자는 재혼 상대의 어린 딸을 12년 동안 성폭행했다. 이 남성은 딸에게는 물론이고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아내에게도, 쥐약과 식칼을 갖다 놓고서 이혼이나 고소를 생각하면 가족을 몰살하고 검찰의 위세를 보여 주겠다고 끊임없이 협박했다(50쪽). ? 김보은 김진관 사건.
1993년 12월 최초의 동성애자 인권 모임인 초동회가 게이를 중심으로 운영되면서 레즈비언이 배제된 문제로 해제되고, 이듬해인 1994년 11월에 현재 한국레즈비언상담소의 전신인 한국여성성적소수자인권모임 끼리끼리가 생겨난다. 퀴어 커뮤니티는 1990년대 중반에 피시통신을 중심으로 급속히 성장했는데, 현재 레즈비언 활동가인 한채윤 역시 이 무렵 하이텔 동성애자 인권 모임에 참여하면서 활동을 시작했다(54쪽).
1898년 9월 1일 벌어진 사건은 유별났다.······중략······바로 이날, ‘여권통문’이라고 불리는 ‘여학교 설시 통문’이 발표됐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 최초의 여성 인권선언문으로, 민족 사업에 참여할 권리, 직업을 가질 권리, 남성과 동등하게 교육받을 권리를 주장하며 여학교 설립을 촉구했다(81쪽).
아이슬란드가 2008년 금융 위기를 겪어 주요 은행이 하나 빼고 파산했으나,······중략······아이슬란드는 경제 위기에 빠진 국가가 흔히 취하지 않는 노선을 택했다. 은행가에게 선처를 베풀거나 구제금융을 준비하는 대신 관련 은행가와 정치가를 엄벌했다. 금융 위기 발생의 책임을 물어 이들을 징역형에 처한 것이다. 그리고 재정지출을 삭감하는 대신 복지 예산을 과감하게 늘렸다. 채무가 국민 1인당 5억 원에 이르렀던 상황에서, 실업수당 지급 기간을 두 배로 연장하고 건강보험 예산을 포함한 보조금 혜택을 강화했다. 그리고 누구나 물고기를 거래할 수 있도록 어업 규제를 풀었다. 잠시 금융업에 뛰어들었던 어부들은 다시 아이슬란드의 오랜 주력 산업으로 돌아온다. 정부의 과감한 결단으로 2013년 아이슬란드는 성장률 2.3퍼센트를 기록하며 단기간에 경제 위기에서 벗어난다(107쪽).
1989년 12월 6일은 캐나다 역사상 최악의 총기 난사 사건이 벌어졌던 날이다. 총과 칼로 무장한 남성이 몬트리올 공과대학에 침입해, ‘페미니스트를 증오한다’고 말하며 14명의 여성을 무참하게 살해하고 자신도 목숨을 끊었다.······중략······본 사건의 희생자가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 때문에 죽었다는 데 문제 제기한 이들은 여성만이 아니었다. 2주기 추모식 때부터, 남성들이 모여 화이트 리본 운동을 전개했다. 여성을 향한 남성의 폭력에 스스로 문제의식을 표하며 남성들이 가슴에 하얀 리본을 달고 움직인 것이다(110쪽).
스위스에서 여성이 투표권을 갖게 된 것이 한국보다도 23년이나 늦었다는 사실은 놀랍다. 프랑스 역시, 기혼 여성이 남편의 허가 없이 직업을 갖거나 자신의 이름으로 계좌를 열 수 있게 된 지 50여 년밖에 되지 않았다. 성희롱이라는 개념은 1974년 미국 코넬대학에서 린 팔리가 직장 내 성폭력을 다루면서 처음으로 사용했다.······중략······미니스커트, 배꼽티를 비롯해 파격적인 패션이 유행하던 1994년, 광주 지역 경찰이 배꼽티를 착용한 두 여성을 경범죄처벌법으로 단속해 즉심에 회부했다. 판사가 무죄 판결을 내려 처벌을 받지는 않았다.······중략······르완다에서는 2003년에야 여성도 부모 재산을 상속받고 자기 재산을 가질 수 있게 됐으며, 이혼한 여성이 부부 재산의 절반에 대한 권리를 갖게 됐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여성은 운전도 할 수 없고 자전거도 탈 수 없었는데, 2013년에 들어 처음으로 자전거를 타고 공공장소에 나설 수 있게 됐다. 이곳에서 여성이 투표권을 얻은 것은 불과 2015년의 일이다(122, 123쪽).
“이번 살인 사건에서 여성이 사망한 것은 우연한 일이지 여성을 일부러 범죄의 타깃으로 삼은 게 아니다. 또한 살인범도 사회 구조의 희생자였고 정신병 때문에 일을 저지른 것이다. 이 일을 정치적으로 끌고 가서는 안 된다(140쪽).”
1989년 캐나다 몬트리올 총기 난사 사건 당시, 사건을 여성 혐오 범죄로 규정하기를 꺼리던 이들의 주장(143쪽).
디시인사이드의 메르스 갤러리에는 금세 ‘남성을 비하’하는 언어를 금지하는 조치가 내려졌다. 3일 만이었다고 했던가. 여성을 대상으로 한 혐오 표현이 이런 식으로 제지를 받았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었다.······중략······그리고 그때부터, 여성들은 더 이상 참지 않았다. 수많은 여성이 마치 거리로 나서듯 온라인상에 나섰다. 더 세게, 더 집요하게, 더 신랄하게 거울을 들고 나를 향하던 혐오를 비췄으며, 함께 분노를 표출했다. 이건 정말로 처음 있는 일이었다(155쪽).
190.6. 1994년에 태어난 셋째의 성비다. 1990 ~ 1994년은 한국에서 역사상 여아 낙태가 가장 심했던 시기다. 나는 그 무렵에 태어났다(157쪽).······중략······한국에서 여성 살해가 최고치에 다다랐을 때 태어난 나는 강남역 살인 사건이 발생한 2016년 5월 17일에야 이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깨닫게 됐다. 많은 이가 의아해하듯 유사한 사건이 여태까지 숱하게 있었고 그때마다의 피해자가 피해를 당한 데에 여성이라는 이유밖에 없었음은 이미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그러나 죽음이 내 생각보다 더 가까이에 있음을 피부로 느낀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1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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