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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신성가족 ㅡ 대한민국 사법 패밀리가 사는 법

eunyongyi 2018. 10. 1. 21:07

김두식 지음. 창비 펴냄. 2009년 5월 15일 초판 1쇄. 2017년 2월 13일 초판 9쇄.

가끔 변호사를 봤다. 처음부터 변호사. 판사였던 변호사. 검사였던 변호사. 허투루 잘 웃는 성싶어 좀 허술해 보였는데 대리인을 위해 똑소리 나게 말하는 걸 보니 ‘하! 변호사 맞네’ 싶던 변호사. 내게 어려운 일 생기면 수임료 없이 도와주겠다던 변호사. 방송통신 쪽 돌아가는 얘기 잘 짚어 준 변호사. 노동자 옆에 선 변호사. 부당히 해고됐다가 엉뚱한 곳에 복직한 뒤 또다시 정직을 두고 다투느라 절절한 내게 ‘오늘 심판 일정이 많아 바쁘니까 묻는 말에 간단히 대답해 달라’는 말부터 건넨 변호사 ㅡ 노동위원회 공익위원. 검사 출신 국회의원이었다가 법무법인 차린 변호사. 지방법원장이었다가 방송통신위원회 들러 법무법인 대표가 된 변호사 들.
여러 변호사 가운데 한 사람 삶이 궁금해 ‘대한민국 사법 패밀리가 사는 법’을 들췄다. 판사였던 그도 방에 찾아온 변호사로부터 “실비(室費)**, 휴가비, 떡값 등을 받는 경우(26쪽)”가 있었겠지. 관례였다니까. ‘실비’는 “**판검사 사무실에 들른 변호사들이 회식비 등으로 활용하라며 놓고 가던 돈”이라고. 거참, 그가 고고한 줄로 아는 이 많던데. 음. 어쩜, ‘실비’ 받던 버릇처럼 기업으로부터 뭘 좀 받은 뒤 도움 주지나 않았을지 모르겠네. 

덧붙여 책 속 여러 토막.

우리 법조계는 언제나 특정한 사건, 외부의 엄청난 비판에 직면해서 수동적으로 조금씩 변화해 왔을 뿐입니다(38쪽).

저는 평소 개인적으로 아는 변호사들에게 “일 자체보다 판사들에게 모욕당하는 게 너무 힘이 든다. 그래서 법원에 가기 싫을 때가 많다. 변호사가 돈을 버는 것은 그 모욕에 대한 대가다”라는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습니다(45쪽).

검사든 판사든 누구라도, 먼저 들은 이야기에 따라 사건의 틀을 짜고 결론을 쉽게 유도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렇게 예단해서 사건을 바라보기 시작하면 자신의 틀을 흔드는 모든 시도를 거짓말로 받아들입니다(62쪽).

공 판사는 서류를 우편으로 보내고 말았습니다. 우편으로 보내면 면전에서 창구지도를 할 수 없으므로 미비한 점이 있어도 직원이 판사에게 포스트잇으로 그 사항을 적어서 알려 주기만 하고 일을 끝냅니다(72쪽).

오랜 세월 서울대, 연고대로 상징되는 소수의 배타적 지배계급에서만 사법시험 합격자가 주로 배출됐고, 법의 운용도 그러한 불평등체제에서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에, 그 외부에 있는 사람들은 법적인 문제에 부딪힐 때마다 “자기하고는 완전히 낯선, 어떤 타자성의 세계에 던져졌다”는 느낌을 받는다는 것입니다(79쪽).

해방 이후 한국의 법조시험은 언제나 국가가 관리해 왔으며, 처음부터 판검사 임용시험 성격이 강했습니다. 변호사 ‘자격’ 시험이 아니라, 판검사를 뽑기 위한 관료 ‘임용’ 시험이었던 것입니다(92쪽).

실력 있는 변호사보다는 청탁할 수 있는 변호사를 선호하는 경향은 우리 법조계의 가장 중요한 특징입니다(143쪽).

1997년부터 2006년까지의 범죄 통계를 보면, 형사사건으로 처벌된 여성 범죄자는 전체의 14 ~ 17퍼센트에 불과합니다. 80퍼센트 이상의 범죄는 남성들이 저지릅니다(151쪽).

공성원 판사는 “판사들이 변호사 욕을 마구 하는 것이 관행화되어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변호사에게 제대로 말할 기회, 충분히 증거 설명을 할 기회, 실력을 발휘할 기회도 주지 않으면서 늘 변호사 욕을 한다는 것입니다(169쪽).

한동근 실장. “대형 로펌은 우리 같은 사람들을 쓰지 않고 장관 출신 뭐 그런 분들을 쓰잖아요. 장관도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하면서 사건 유치하면 그냥 우리하고 똑같은 거 아닙니까? 고문으로 앉아 있을 뿐이지 똑같은 거죠(210쪽).”

판사들은 서울에서 가까운 곳부터 서울중앙지법, 동·남·북·서부 지법, 수원지법, 인천지법 등의 순서로 배치되고, 검사들은 검찰청 규모에 따라서 서울중앙지검, 서울의 동·남·북·서부 지검, 부산지검 등의 순서로 임지가 정해지지요. 그래서 법조인들끼리는 판검사의 초임지만 들어도 그의 사법연수원 수료 성적을 거의 정확히 가늠할 수 있습니다(233쪽).

판사들 중에서도 “서울대 법대 출신으로 군법무관을 마친 남자들”이 최고로 좋은 대우를 받는다고 합니다. 군법무관 출신을 선호하는 이유는 그들이 대개 군대에 가기 전 어린 나이에 사법시험에 합격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여자의 경우에는 무조건 나이가 어려서 시험에 붙어야 “쟤는 똑똑한 애”라는 인식을 줄 수 있다고 합니다(235쪽).

공성원 판사. “재판사무감사가 왜 없어졌느냐면, 김영란 대법관 때문에 없어졌어요. 그분이 기수를 파괴해서 올라갔기 때문에, 재판사무감사를 하고 돌아다닐 거 아닙니까. 그러면 그분보다 기수가 높은 원장들이 그짓을 해야 되기 때문에 그렇게 못하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없어졌습니다(247쪽).”

판사들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이정수 국장은 법관조직이 “옛날부터 독불장군이거나 유아독존적이거나 자기만 똑똑하다고 생각하거나 이런 친구들이 굉장히 많은 동네”라고 이야기합니다(261쪽).

김상구 변호사. 판검사들은 퇴임하면 곧바로 로펌으로 갑니다. 그렇게 바로 가려면 “미리 현직에 있을 때, 물밑 작업을 길게는 1년, 짧게는 몇 달을 했을 것”인데, 물밑 작업이 계속되는 동안에도 판검사들이 그 로펌에서 오는 사건들을 처리하고 있으니 문제라는 이야기입니다. 로펌들이 개인 변호사들 식으로 로비한다고 사기치는 일은 없을지 몰라도 전직 대법관, 부장판사들이 그렇게 취업하는 구조 자체가 이미 비리일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28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