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희 비롯한 열다섯 명 지음. 한국여성연구소 엮음. 동녘 펴냄. 2014년 6월 30일 초판 1쇄.
이남희.
(존 스튜어트) 밀은 부인 헬렌 테일러의 영향으로 페미니즘 사상을 가지고 있었고, 1869년에는 <여성의 종속>을 썼다. 밀은 여성과 남성은 근본적으로 동등하지만 교육의 차이로 인해 격차가 생겼다고 봤다(29쪽).
급진적 페미니즘의 이론적 틀을 제공한 파이어스톤은 1970년에 출간한 그의 저서 <성의 변증법>을 통해 ‘사회주의 혁명은 여성을 위해 충분히 혁명적이지 않다’고 선언했다(45쪽).
이제는 모든 인간이 서로 다르지만 그래도 평등하다는 원칙에 공감하고 성별을 비롯한 다양한 차이가 차별로 이어지지 않을 때, 인간 해방을 완성하는 사상으로서 페미니즘의 의미가 계승될 것이다(53쪽).
김현미.
보부아르는 여성성과 남성성이 단순한 성적 차이가 아니라 남성중심적 가치와 규범을 반영하면서 성립된 남성성과 여성성이라는 점을 강조했다(65쪽).
가족 내에서 ‘무임’으로 행해지는 돌봄노동은 사회로 나와 ‘시장화’되더라도, 노동의 값어치가 낮게 책정된다(72쪽).
김민정.
그간의 역사 연구나 인류학 연구 결과를 종합해 보면, 인류 역사의 초기 모습은 자연 상태의 모권제가 아니라 인류의 문화가 구축되는 가운데 양성이 각기 다른 역할을 대등하게 수행하면서도 여성의 출산력과 양육을 숭배하는 모습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113쪽).
자궁을 남기고 성전환 수술을 해 남자가 된 토마스 비티(당시 37세)는, 미국 애리조나에서 아내 낸시와 함께 살면서 2008년부터 연달아 세 명의 아이를 출산했다(126쪽).
하정옥.
육상 경기의 남녀 기록 차이는 여성의 경기 참여가 허용된 시기가 언제였는지 제도의 역사를 무시한 채 평균적인 완력 차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올림픽의 꽃이라 불리는 마라톤 경기에 여성의 참여가 허용된 것은 불과 1984년의 일이다(137쪽).
성 호르몬을 이용해 성을 이분법적으로 규정하려는 시도는 이와 같이 수많은 문제가 있었으나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위에서 본 것처럼 남성 호르몬 또는 여성 호르몬이라는 명칭은 ‘하나의 성에 하나의 호르몬’이라는 전제 하에서 붙여진 이름이지만 그 이론이 틀렸음이 사실로 입증됐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그 명칭이 사용되고 있다. 이론이 잘못됐음에도 여전히 남성/여성 호르몬이라는 명칭이 잔존하고 있는 것은 그 이론이 전제하는 이분법적 성차라는 신념이 얼마나 강고한지 보여 준다(157쪽).
편집자 팁.
박정희 정부는 1962년 요보호자인 ‘창녀’들에게 ‘안전한 적선구역’을 설정한다는 명목으로 미군 기지촌 등 104개 특정구역을 설치해 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고 면세주류를 제공하는 등, 본격적인 외화벌이에 나서게 된다. 이로 인해 공식적으로는 성매매가 불법이었음에도 실질적으로는 성매매를 허용하고 심지어 권장하는 위선적 문화가 고착화된다(197쪽).
황정미.
사스키아 사센은 자본주의의 지구화 과정에서 여성들이 경제개발에 참여해 역할을 맡는 변화를 세 단계로 구분한다. 첫 번째 단계는 외국자본이 저발전국의 농업 플랜테이션이나 자원 개발 사업에 진출해 현지 남성들을 임금노동자로 고용하면서, 여성들이 ‘보이지 않는 노동자’가 돼 생존경제 내 식량 생산, 가사노동, 각종 생계 유지를 도맡게 된다. 여성들은 집 주변에서 여러 가지 노고로 생계를 유지함으로써 남성 노동자의 극단적 저임금 상태는 유지된다. 결과적으로 생존경제에 따른 여성 무급노동이 근대화된 산업 분야의 성장에 의해 착취당하는 것이다(211쪽).
돌봄의 전 지구적 연쇄와 돌봄 노동에 대한 평가 절하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할까?
첫째, 서구 사회 내부에서 성별 분업을 재편성해야 한다. 즉 서구 남성들이 자녀 양육과 가사노동에 더 많이 참여하고 사회적 돌봄을 확대해야 하는 것이다(215쪽).
나임윤경.
준비되지 않은 상대에게 지속적으로 섹스를 요구하는 남성들은 그것이 사랑의 과정이 아니라 강간의 과정임을 알아야 한다(258쪽).
편집자 팁.
현대의 이성애 핵가족은 가장 근원적인 자연의 산물이라기보다는 인류 역사의 어느 한 시점에서 나타난, 경제 구조 변화에 따라 파생된 가족의 한 형태로 보는 것이 옳다. 보편성과 불변성을 가장하는 이데올로기의 특성상, 가족 이데올로기는 가족 내 젠더와 세대에 근거한 불평등과 지배관계의 현실적 모순을 은폐하는 기능을 하기도 하므로 이에 대한 비판과 성찰이 필요하다(305쪽).
허민숙·신경아.
전통 사회의 주요 구성 원리인 공사 영역의 분리는 가족을 사적 영역으로 고립시키고 사적 영역에서 수행되는 돌봄노동에 낮은 지위를 부여했다. 여성이 수행하는 돌봄노동은 사적 영역에서 이뤄지는 자연스런 역할이므로 국가나 사회가 개입하거나 영향을 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사적 영역의 가족 안에 고립된 돌봄노동은 언제나 여성이 수행해 온 ‘자연스런 일’이며 시장에서의 생산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므로 경제적 가치를 인정할 수 없다고 간주됐다(307쪽).
엄기호.
이런 점에서 고대 사회에서 전쟁이 있고 난 다음에 포로로 잡힌 상대편 전사들을 왜 집단적으로 강간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들이 동성애자들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전쟁 후에 남성 포로들을 강간한 것은 그들의 남성성을 제거하는 의례적 행위에 가까웠다. 강간을 당한다는 것은 곧 수동적인 존재, 여자가 되는 것을 의미했다. 한번 남성성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고 여자가 되고 나면 다시 남성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한번 손상된 능동성은 복구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소년과 남자 어른 간의 동성애가 이성애보다 더 고귀한 사랑으로 여겨지던 그리스 시대에도 소년에 대한 항문섹스는 엄격하게 금지됐다. 그것은 욕망을 위해 소년의 남성성에 손상을 가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소년은 아직 남자는 아니지만 미래에 남자가 될 존재이기 때문에 그의 잠재적 능동성을 보존해 주는 것이 그를 사랑하는 남자 어른의 임무였다. 따라서 남성성이란 곧 능동성의 보존이며, 최대한 능동적으로 살아가려는 자세를 말했다고 할 수 있다(372, 373쪽).
패배감을 여성들에 대한 적대와 공격으로 전환한 것이 바로 사이버 마초들이다. 이들은 자신이 여성들의 욕망을 채워 주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그 여성들의 욕망이 애초에 헛되고 허황된 것이라고 말한다(383쪽).
송다영.
남성의 돌봄 참여가 일상적 생활 규범이 된다면 돌봄으로 인해 발생하는 여성에 대한 성차별의 근거는 사라질 수 있으며,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모든 근로자의 권리로 확대될 수 있다(426쪽).
정현백.
젠더에 대한 높아진 관심과 더불어 여성운동 내에서도 여성들만의 운동에서 한걸음 나아가 남성과 함께하는 양성평등운동으로 나아가는 노력이 시작됐다. 여성의 진정한 해방은 여성 억압의 행위자인 남성의 변화가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인식이 높아졌기 때문이다(4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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