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맥 — 4, 5권 제2부 민중의 불꽃 ①, ②와 6권 제3부 분단과 전쟁 ①
조정래 지음. 해냄 펴냄. 2007년 1월 30일 제4판 1쇄.
“야이 씨부랄 눔아, 니만 사람이냐아!”
싼값에 사들인 논에 바닷물 끌어들여 소금밭을 만들려는 정현동 — 소화를 사랑한 정하섭의 아버지 ― 에게 쏟아낸 농사짓던 사람의 노여움. 그가 “쥐어뜯듯이 소리 지르며 앞으로 내닫고 있었다. 그의 치켜올린 손에는 낫이 들려 있었다. 말리고 어쩌고 할 사이도 없었다. 낫이 정현동의 목덜미를 찍었고, 가슴을 찍었고, 쓰러지자 배를 찍었다(6권 38쪽).”
지주 서운상. “벌거지 겉은 것덜 죽으나 사나 나 알 일 아니다. 머 허고 있냐! 물 찌끄러 내몰아라(4권 252, 253쪽).” 소작인 강동기. “머시여, 벌거지(4권 253쪽)!” 강동기가 삽 들고 서운상에게 달려갔다.
민중. 몸과 마음이 괴롭고. 아팠고. 억눌리다 못해 울부짖으며 낫, 삽 들었다.
농사지은 이. “일정 때야 일정 땐께 전답도 뺏기고, 소작도 띠이고 혔다 허드라도 해방이 되어 우리찌리 사는 시상이 되얐는디도 일정 때나 똑겉은 일이 벌어지니 요것이 무신 사람 사는 시상인지 몰르겄다(4권 51쪽).” 뻘에 나가 꼬막 잡은 이. “한차례 뻘일을 하고 나면 조개껍질에 긁힌 상처가 일삼아 바늘로 긁어놓은 것처럼 온 다리를 실핏줄로 감고 있었다(4권 84쪽).” 바다를 막아 뻘밭을 농사짓는 땅으로 바꾼 이. “워따 말도마씨요, 고것이 사람이 헐 일이었간디라. 죽지 못혀 사는 가난허고 가난헌 개돼지 겉은 목심덜이 목구녕에 풀칠허자고 뫼들어 개돼지맹키로 천대받아 감서 헌 일이제라(4권 313쪽).” 내다 팔려고 토하 잡던 이. “토하알젓이라는 것이 있었다. 이름 그대로 토하의 알로만 담그는 젓갈이었다.……중략……그것을 먹고 사는 사람도 분명히 있었다.……중략……일삼아 토하알젓을 담아 젓가락 끝으로 찍어 흰 쌀밥에 살짝살짝 발라먹는 지주들이 있었다.……중략……지주들 사이에서는 토하알젓을 먹는다는 것이 서로 간에 내놓는 자랑거리일 만큼 그것은 귀물 취급을 받았다. 그러나 그것을 먹는다는 소문이 난 지주는 못사는 사람들에게 욕을 바가지로 먹었다. 그것은 못사는 사람을 수없이 괴롭혔다는 증거였기 때문이다(5권 276쪽).”
덧붙여 여러 토막.
“그 여자가 무슨 잘못을 저질러 손가락질을 당하고, 고향에서 쫓겨나야만 하는가. 그 여자는 가엾고 불쌍한 피해자일 뿐인 것이다(4권 23쪽).” ‘그 여자’ 일제가 끌어간 성노예.
“앞으로 나슨 사람덜이 믿을 것이 머시겄능가? 자기덜 몸띵이겠는가, 손에 든 총이겄는가? 아니여, 아니여, 고런 것덜 아무것도 아니고, 뒤에 남은 사람덜 맘얼 믿는 것이여. 뒤에 있는 수수많은 사람덜 맘이 자기덜허고 똑같다고 믿는 그 맘으로 쌈도 하고, 죽기도 허는 것이여(4권 60쪽).” 맞아. 뒤에 남은 사람 마음을 믿기에 앞으로 나설 수 있지.
“스물두 살의 나이를 마지막으로 나 문상길은 저 세상으로 먼저 떠나갑니다. 여러분은 한국의 군대입니다. 매국노의 단독정부 아래서 미국의 지휘 하에 한국 민족을 학살하는 한국 군대가 되지 말라는 것이 저의 마지막 염원입니다(4권 63쪽).” 어휴. 1948년 9월 25일 자 <서울신문>에 보도됐다고.
“워메 큰탈나부렀네. 대일본제국이 요리 허망허게 망해뿔다니. 참말로 알다가도 몰를 일이시. 그나저나 인자 워째야 쓸꼬. 큰탈나부렀어, 큰탈(4권 124쪽).”
“다시 아궁이 가득 싸리나무를 밀어 넣고 일어섰다(4권 208쪽).” 소화가 정하섭을 위해.
소화는 자신도 모르게 정하섭의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아니, 그의 말이 끌어당겨 끌려간 것이다. 존대가 아닌 그의 말이 그렇게 정답고, 다정하고, 편안하고, 가깝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4권 213쪽).
“빨갱이라는 것들이 우리 벌교에만 들끓는 것이 아니고 저 제주도부터 장성‧나주까지 전라남도 전부, 남원‧고창‧무주로 해서 전라북도 반 이상, 하동‧진주‧합천으로 한 경상남북도 반, 이런 식으로 따져놓고 보면 거의 온 나라가 지금 빨갱이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실정입니다(4권 219쪽).”
일본 군국주의자들은 인간은 교육으로 재창조할 수 있으며, 그건 소년기 교육으로 결정된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국민학교 선생들은 군국주의적 인간을 양성해 내는 전초병이었고, 그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해 낼 수 있는 능력자를 길러내는 것이 사범학교였다(4권 239쪽).
“김범우와 손승호는 복도를 나란히 걸었다. 나무복도에 윤기가 반들거렸다. 어린 조막손들의 정성스런 노동이 거기에 어려 있었다(4권 241쪽).” 박정희 살아 있을 때 ‘국민학교’에 다닌 나도 교실과 나무복도를 반들반들하게 닦았다.
김구 여운형 박헌영. “세 사람 모두 토지개혁 단행과 친일파나 민족반역자 처단을 내세운 것(4권 275쪽).” “토지개혁은 무상몰수 무상분배로 하고, 친일파나 민족반역자들은 엄중처단하여 일체의 정치참여를 못하게 한다는 것(4권 275쪽).”
현 체제 속에서 현 체제에 전혀 종사하지 않고 살아나갈 수 있는 방법, 그것은 도대체 무엇일까(4권 276쪽).
“저 신념의 덩어리, 당신은 역시 행복하다(4권 330쪽).” 김범우가 염상진 바라보며.
“나는 한 사람도 남김없이 역적도배를 절멸하라고 군‧경 수뇌에게 지시하고 있다. 폭동의 진압은 시간문제이다(5권 99쪽).” 이승만이 4‧3 제주 민중항쟁을 짓밟으며.
기자 이학송. “이승만 정권이야말로 반민주적이고 반민중적인 양키들의 모조정권이오. 이건 김일성이나 공산당 입장에서가 아니라 역사의 입장에서 그렇소(5권 154쪽).”
김범우는 전부터 혐오를 느껴왔던 ‘사바사바’니 ‘빽’이니 하는 말을 이제 실감 있게 뇌며, 그럴 만한 사람을 찾고 있는 자신을 발견해야 했다. 사바사바는 ‘통역정치’ 또는 ‘요정정치’라고 불리었던 미군정의 음성적 정치로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말이었고, 빽은 이승만 정권이 세워지면서 연줄과 돈이면 안 되는 것이 없는 풍조 속에서 생겨난 유행어였다(5권 168쪽).
일정시대의 기마경찰들은 고등계형사들만큼이나 공포의 대상이었다. 말발굽소리, 긴 가죽장화, 번쩍이는 닛뽄도, 큰길이고 골목이고 가리지 않고 누비는 기동성, 말 위에서 닛뽄도를 내리쳐 사람의 목을 날리는 포악함, 그런 것에 기 질린 사람들은 기마경찰을 먼발치에서 보아도 진저리치며 미리 피했다(5월 175, 176쪽).
“백범은 해방 아닌 해방의 상황 속에서 그 누구보다 분투했소. 그러나 그 분투가 상부에서만 맴돌았을 뿐 하부로부터의 호응이 전혀 없었소. 민중이라는 존재와 그 힘을 근원적으로 인식하지 못한 게 백범의 한계였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소(5권 243쪽).”
이학송이 기자가 되고 싶다는 김범우에게. “신문사라고 해서 절대적 자유가 보장되는 건 아니오. 다 정치적 통제 아래 있소. 기자라는 것도 그 범위 안에서만 움직이는 수동적인 존재에 지나지 않소(5권 246쪽).” “기자생활이라는 게 거칠고, 고달프고, 무질서하고, 어떤 때는 소모적 허망감에 빠지기도 하고…… 어떤 보람이나 만족이 없는 게 아니지만 그와 반대로 괴로움도 많소(5권 247쪽).”
국도극장을 건너다보았다. 기와를 얹은 주변의 2층 건물에 비해 서양식으로 지은 그 건물은 언제나 우뚝 솟아 거만하게 보였다(6권 54쪽).
“그렇제라. 옛적부터 여자야 실금이 가도 안 되고, 남자야 한쪽이 떨어져나가도 암시랑 안 헌 것이 이 시상 법칙잉께요(6권 111쪽).”
‘공산비적’을 줄인 ‘공비’라는 말은 지난 (1950년) 1월 초순에 강원도 경찰 책임자가 신문기자를 상대로 쓰게 되면서 ‘빨갱이’란 말을 제치고 급속히 퍼져나가기 시작했고, 공식용어화하고 있었다(6권 202쪽).
“미친눔에 새끼덜이 있는 좌익얼 잡는 것이 아니라 웂는 좌익얼 맹그니라고 그 염병이제 워째(6권 212쪽).”
“어허, 그 아짐씨 참말로 땁땁허시. 보도연맹이 빨갱이 잡자는 디니께 빨갱이가 그리 싫으먼 더 잘된 일 아니겄소. 여그에 손도장 꽉 눌러뿔고 빨갱이 잡는 일에 협조허먼 을매나 좋소.” “염병허고 사람 홀기지 말어. 나가 아무리 무식혀도 그런 소리에넌 안 넘어간다(6권 213쪽).”
“그눔덜이 지닌 돈이 다 머시여. 불쌍헌 우리 피 뽈고 등까죽 벳게서 모은 것이다 그것이여. 후보자 중에 당당허니 돈 번 눔이 있으면 대부아. 싹 다 지주 아니면 지주네 새끼덜이 아니냐 말여. 술언 묵었어도 정신언 똑똑허니 채려, 또 당허기 전에(6권 241쪽).”
기자 민기홍. “내 생각으로는 이놈의 세상이 달라지는 데는 한 가지 방법밖에 없을 것 같소. 그게 뭔가 하면, 기왕 썩은 세상이니까 한 이삼 년 더 푹푹 썩게 내버려두는 거요. 권력이 썩을 대로 썩다 보면 제물에 무너지게 될 거고, 그러는 동안에 대중들의 불만과 불신은 쌓일 대로 쌓여 폭발하고,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세상이 뒤집어질 것 아니겠소. 종기야 곪을 대로 곪아야 뿌리가 빠지는 법이니까요.” 김범우. “글쎄요, 그게 이삼 년이 아니라 이삼십 년이 걸리면 어찌 됩니까(6권 249쪽)?”
일제 순사였다가 이승만 뒷배로 경찰 된 놈 남인태. 한국전쟁 터지자 “미군이 다 알아서 해줄 텐데 무슨 걱정이오. 여순반란사건 때처럼 미군의 화력으로 박살을 내기 시작하면 그놈들 신세도 잠시잠깐이오. 미국을 믿어요, 미국을.” “미국이란 나라는 우리하고는 다르잖소? 얼마나 의리 있고, 인정 있고, 책임감 있소. 우리 경찰들한테 해준 것하며, 빨갱이들 몰아친 걸 보시오. 이번에도 여순반란을 진압해 버린 것처럼 간단하게 해치우고 말 거요. 미국은 문자 그대로 위대한 나라 아니겠소. 그러니까 우린 안심하고 그 그늘에서 시키는 대로 하기만 하면 되는 거요(6권 287쪽).”
김범우. “왜 꼭 서울을 떠나려고 그러오?” 송경희. “어머 선생님, 서울은 빨갱이 세상이잖아요(6권 307쪽)!” 1950년 한국전쟁과 맞닥뜨린 송경희처럼 머리가 돌대가리 같은 자가 2017년 서울에도 있다. 대학에서 석사 공부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기 나라의 전쟁을 수행하는 군인이 다른 나라들의 군대에 속해 명령을 받아야 하다니, 그럼 우리나라의 존재는 무엇이란 말인가.……중략……그것은 바로 주권해체가 아니고 무엇인가.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없어지고 만 것이 아닌가. 세상에 어느 나라에서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을까. 도대체 대통령이란 사람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아니, 무슨 생각으로 이런 일을 저지를 수 있는가(6권 31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