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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맥 ― 9, 10권 제4부 전쟁과 분단 ②, ③.

eunyongyi 2017. 5. 23. 18:29

조정래 지음. 해냄 펴냄. 2007년 1월 30일 제4판 1쇄.

 

“천왕봉언 아까 알았을 것이고, 거그서 왼쪽 옆으로 쪼깐 틀어서, 이 쩌그 저 아시무락허니 산꼭대기가 서너 개 맞붙은 것맨치로 된 것 있제라? 아, 뵈요, 안 뵈요!” “이, 뵈요.” “고것이 바로 덕유산이요. 더 확실허게 말허자먼 남덕유요(9권 352쪽).”

나는 가끔 남덕유산 향적봉에 선 채 지리산 천왕봉을 바라봤다. 아득하되 하늘에 맞닿은 모습 뚜렷한 그곳까지 산등성이가 죽 이어졌다는데 ‘정말 걸어서 저곳에 닿을 수 있을까’ 싶었고. 내 삶 드문드문 남덕유 꼭대기에 서거나 언저리를 맴돌 때마다 ‘언젠가 걸어 볼 수도 있을 천왕봉 가는 산길’을 마음에 그렸다. 내가 그때 ― 한국전쟁 ― 산에 안겨야 했다면 제대로 견딜 수 있었을까 짚어 보기도 했고. ‘이리 마음이 여리고 약한데 설마’ 싶기도 했다.

남덕유산에서 손승호. “그날 비로소 남쪽으로 끝없이 뻗어나간 산줄기를 멀리멀리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산줄기를 따라가면 지리산맥에 이르고, 거기서 다시 가지 친 산줄기를 따라가면 염 선배는 그 어느 산엔가 있을 것이었다(9권 115쪽).”

손승호와 그의 선배 염상진 같은 사람. 빨치산. “지식계급에 비해 농업인민이나 기본출들은 꽤나 태평한 편이었다. 이래 살다 죽으나 저래 살다 죽으나 어차피 한세상인데, 바라는 세상 못 볼 바에는 실컷 싸움이나 하다 죽겠다는 태도였다. 그런 의연함은 기본출일수록 많이 나타났다(9권 185쪽)”던 사람들. 특히 외서댁. “나가 여자요? 빨치산이제. 빨치산에 남녀차등 웂응께 고런 말 마씨요(9권 125쪽)” 한 사람. ‘밤이고 낮이고 여름이고 겨울이고 간에 싸움만 시작하려고 하면 빨간 띠를 머리에 동여맸다(10권 314쪽)’는 이. 질끈.

“빨치산 — 자각한 인민들이 전사로 뭉쳐진 덩어리, 강제가 없는 그 자주적 군대는 가장 순수한 혁명의 동력이고, 바로 인민의 역사 그 자체인 것이다(9권 310쪽).” 스스로 깨달아 뭉친 힘. 음. 살며 제대로 이룰 수 있을까. 한번이나마. 지치지 않고 땀 흘리며. “지치면 그것 자체가 죽음인(9권 327쪽)” 거니까.

지은이. “이 세상 그 누구의 목숨이 죽음으로 이어져 있지 않은 목숨이 있는가. 그러나, 이 보편적 명제 앞에서 두려움이 없는 건 죽음을 종교적으로 초월해서가 아니었다. 구체적인 자각으로 죽음을 끌어안았기 때문이었다(10권 294쪽).” 염상진. “우리는 역사를 믿어야 한다. 우리가 오늘 죽는 것은 패배가 아니라 내일로 확정된 역사의 승리를 위해서다. 우리는 비록 죽더라도 우리의 투쟁은 역사 위에서 반드시 되살아난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10권 102쪽).”

“너(정하섭)는 북쪽으로 가는가. 그래, 가거라. 남쪽에 집을 두고 북쪽으로 가는 것이 어찌 너 혼자뿐이겠는가. 난(김범우) 이제 고향으로 간다. 너와의 약속은 꼭 지켜나갈 것이다. 휴전이 언제까지 갈지 모르지만. 전쟁이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라 시한부로 멈춘 것일 뿐인 휴전은 우리에게 내일로 남겨진 숙제다(10권 321쪽).”


덧붙여 되새긴 여럿.

 

아버지. “다 괜찮허다. 원제야, 인자 모든 대결투쟁언 끝났다. 앞으로넌 세월에 의지혀야 헌다.” 조원제. “알고 있구만요(10권 286쪽).” 아버지. “허먼, 역사 속의 투쟁이 길다는 것을 실천허겄다는 뜻이냐?” 조원제. “예, 지시구만요.” 아버지. “알겄다. 그 담 일부텀언 이 애비가 알어서 허겄다(10권 287쪽).”

 

염상진이 하대치에게. “감옥살이하는 것도 투쟁의 하나요. 그것은 우리의 역사를 지키는 투쟁이오. 굽히지 않고, 지치지 않고, 꿋꿋하게 의지를 지키며 감옥살이를 해나가는 것은 또한 적들에게 우리가 옳다는 것을 보여 결국 그들이 굴복하게 하는 투쟁이기도 하오(10권 288쪽).” “하 동무, 너무 서운해하지 마시오. 어차피 투쟁은 동지들을 헤어지게 만드는 것이고, 죽어가는 데는 순서가 없는 법이오(10권 289쪽).”

 

서민영. “작전권이양서라는 것은 이름만 다른 또 하나의 한일합방조인서인 것이고, 작년 7월 12일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미국의 식민지라는 걸 공인한 날입니다(9권 168쪽).”

 

“이 전쟁이 끝날 때까지는 미군이 작전권을 틀어쥐고 계속 그 꼴일 건 너무 확실한 일이고, 전쟁이 끝나 작전권을 찾아오면 그땐 이미 무슨 소용 있는 일이겠소(9권 233쪽)?” 빌어먹을 그 작전권은 여태 — 2017년 5월 ― 미군이 틀어쥐고 있다. 줘도 받지 않겠다는 제정신 아닌 군인과 정치인이 넘쳐났다.

 

“투쟁의 바탕이 없이 자란 온실 사상가들의 작태가 그것 아니겠소.……중략……그러나 말이오, 당적 입장에서 떠나서 볼 때 그건 어느 사회에서나 문제가 되는 지식인들의 위선과 기회주의가 발동시킨 추악함 아니겠소(10권 139쪽)?”

 

“지가 저질른 잘못은 입이 열 개라도 헐 말이 웂구만이라.……중략……지 잘못을 용서허시씨요(9권 194쪽).” 사람은 자기 잘못을 돌이켜 볼 줄 알아야 한다.

 

쓰레기. “어허, 이래저래 여러 말 헐 것이 하나또 웂소. 정전하고도 우리가 안심허고 편케 살 방도가 딱 한나 있소!” “고것이 먼디, 싸게 말허씨요.” “간딴허요. 요새 큰 도시서부텀 말이 시작되고 있다는디, 정전험스로 남쪽이 미국에 한 도로 들어가뿌는 것이요(9권 179쪽).”

 

자기네의 생존보호를 위해 이승만 정권을 떠받치며 반공세력으로 똘똘 뭉쳤던 그들의 집단기회주의는 정작 전쟁이 벌어진 다음부터는 개개인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각자가 개체기회주의를 발동시켜 내부혼란이 야기되고 있었다. 뒷손을 쓰자니 돈이 필요하고, 돈을 마련하자니 부정을 저질러야 하고, 부정을 저지르다 보니 턱없이 민간인들을 괴롭히고, 그런 것을 노려 옆 사람이 밀고하게 되고……(9권 86쪽).

 

“엄니, 정신 채리씨요. 빌기넌 워떤 눔덜헌테 빌어라! 엄니 맘이 워찌 그리 변해뿌렀소. 나 갈라요!” “못 간다니께.” “여그 놓씨요. 나넌 끝꺼정 싸울 것잉께.” “반동이고 뭐시고, 갈라먼 이 엠씨 죽이고 가그라.” “사람 미치게 맹글지 말고 여그 놓으란 말이어라, 여그.” 소년은 울부짖으며 방아쇠를 당겨버렸다(9권 100쪽).

 

“긍께로 말이시. 다 지랄 겉은 시국이 맹그는 얄랑궂은 굿판이시.” “참말로 징헌 눔에 시상이구마. 이짝저짝에서 날마동 떼과부는 생기제. 생때겉은 자식덜 잃는 부모덜 늘어나제. 그럼스로 또 이리 판이 갈리니 살맛 떨어지는 인심 팍팍헌 시상이여(9권 175쪽).”

 

“아덜이 군대 나갔소?” “나가 한나라면 말얼 않겄소.……중략……두 자식 다 죽어 북진통일인가 머신가 허먼 나가 졸 것이 머시가 있소. 나헌테 금이 생길 것이요, 은이 생길 것이요. 우리 겉은 농새꾼이야 불쌍허게 키운 자석덜만 잃어뿌렀제 될 일언 웂고, 다 권세 잡고 돈 있는 눔덜만 좋아라 살판나는 것 아니겄소(9권 213쪽).”

 

“이짝으로나 저짝으로나 난리가 싸게 끝나야제 요래갖고넌 죽도 밥도 아니시. 해방되고 이날 이때꺼정 요리 체질얼 당헌께 인자 입에서 씬물이 나고 징글징글허구마.” “참말로, 은제나 사람 사는 시상이 올란지, 지대로 묵지도 못허미로 요리 가심 통게통게허고 사는 것도 인자 징허구마(10권 73쪽).”

 

천점바구. “그는 꼭 적과 맞서 싸움을 하고, 야간작전을 수행하는 식으로 글쓰기에도 열성을 부리고 있었다(9권 11쪽).”

천점바구의 얼굴도 약간 웃는 것 같으면서 김혜자의 손을 잡은 팔이 부르르 떨렸다. 서로가 처음 잡은 손이었다(10권 212쪽).

 

학생으로 나이가 어리면 500만 원, 나이가 스물다섯이 넘었으면 1천만 원, 자리가 좀 높은 경우에는 1500만 원 정도를 쓰면 풀려난다는 소문이 진작부터 파다하게 퍼져 있었다(10권 281쪽).

 

“나넌 월요일만 되먼 학교 댕기기가 싫다. 이눔에 애국조회가 징헌께(10권 18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