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책좋아요 ILikeBooks

혼불 6, 7권.

eunyongyi 2017. 6. 18. 12:49

최명희 지음. 매안 펴냄. 2014년 12월 15일 제2판 19쇄.


민초 춘복이 반갓집 딸 강실에게 아이를 배게 한 사건다운 일이 드디어 일어나 ‘끝없이 지루하려나’ 했던 숨 좀 트겠다 싶었다. 하지만 그때 뿐. 미리 낌새 내보인 지 오래인 터라 숨이 금세 식고 마니, 참 따분하다. 이러다 내 숨넘어가는 것 아닐까 몰라.

그 집안의 딸이고 며느리고 간에 과부가 개가(改嫁)를 하면, 제아무리 명문 거족일지라도 하루아침에 벼슬길이 막히고 그 가문의 명성조차 보존하기 힘들었다. 그러니 자연 행세하는 가문에서는 수절하는 과부를 구중심처(九重深處) 깊은 곳에 가두어 두고 바깥사람은 일체 만나지 못하게 하여, 그 안에서 홀로 죽은 듯이 살아가게 하였다(6권 23쪽).

 

오류골댁이 강실에게. “집안에 훈기 나고 냉기 도는 것은 다 여자 할 탓이란다(6권 99쪽).” 아니, 옛날, 아주 오랜 옛날 얘기다. 그때도 그러지 말았어야 했지.

 

대나무는 꽃이 피면 안된다. 죽는다. 황록색 대나무꽃 피게 되면, 그 대나무는 영락없이 누렇게 죽고 만다(6권 103쪽).

 

지은이는 옹구네가 ‘아직도 신명나게 불가에서 맴돌 고리배미 사람들의 겨운 몸짓이 아득하고 눈물나는 세상의 멀고 먼 그림자 시늉인 것만 같아서, 고개를 떨구었다(6권 173쪽)’고 썼다. 음. 옹구네가 그리 깊은 사람이었나. 아니, 옹구네 핑계 삼아 지은이 서정 깊다 내보인 성싶네.

춘복. ‘몸 가진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니여(6권 177쪽).’

 

“시집와 보니 좋아?” “죄 많어 여자지요.” “죄도 많고 일도 많고.” “탈도 많고 시름도 많고(6권 231쪽).”

 

옹구네. ‘느그들은 대관절 무슨 권세를 쥐고 있길래 그토록 잣대밧대 거만하며, 나는 무엇을 못 가졌길래 이 수모와 박대를 받어야만 하는가(6권 265쪽).’

 

진의원 머리 속이 핑그르르 맴을 돌았다. 대가의 종부라 하나 아직 나이 젊고 거기다 여자인데도, 나이 훨씬 더 먹고 외처 바람 많이 쏘인 남자인 자기가, 어떻게 거역해 볼 수 없는 엄중함이 자신을 납작하게 눌러, 순간 어지러운 탓이었다(6권 293쪽).

 

안서방네. ‘아아, 상전은 다르시다. 세상과 사람을 어찌 대해야 하는 것인지를, 이만큼 보여 주신다(6권 302쪽).’ 거북하다. 매우. 짜증 나고.

 

시어머니가 동촌댁에게. “너 그게 버선이냐 쌀자루냐(7권 12쪽).” 발 괴로워 버선 좀 넉넉하게 만들어 신었다고 핏대 돋우기는, 쯧쯧.

 

동촌댁이 며느리에게. “나 죽으면 수의도 헐 것 없다. 그저 홑이불 돌돌 감어서 파묻어 주어. 까깝헝게. 아 오직이 좋냐. 걸린 데 없고 매인 데 없고, 쾌활허지. 죽어서까지 그놈의 치마 저고리, 끈으로 묶고 고름 매는 거 나는 싫다(7권 21쪽).”

 

옹구네. “산해진미 처쟁이먼 멋 헐 거이냐? 먹도 못헌디. 살어 생전에는 삼시 세 끼 밥 한 그륵을 못 먹을람서, 곳간에다가는 오뉴월 염전에 갈비짝이 썩어나게 쌓아 놓고, 나락섬은 노적봉 꼭대기보돔 더 높으댄히 절벽맹이로 꼬깔을 지어 놓고. 죄로 가제, 죄로 가아(7권 78쪽).”

 

기표. “주인 뒤꿈치 무는 개가 어디 한두 마리여야지요. 그놈도 그런 놈 중에 하나일 뿐. 그까짓 것한테 사람 대하듯 심정 두고 대거리할 필요가 없습니다. 마소 육축 같은 종자들인즉, 치죄만 엄혹하게 하면 되는 게지요(7권 89쪽).” 이런 놈 뒤꿈치가 제대로 물려야 하거늘.

 

이징의. “죽은 뼈다귀 때문에 생사람이 죽겠구나. 다 쓰고 죽은 몸, 어디에 묻히면 어떻고, 좋은 자리 함께 나누어 묻히면 또 어떤고. 모두 부질없는 일. 헛것들이다. 망상이야(7권 118쪽).”

 

백단이. ‘양반만 부모 중허고 팔천 사천 무당 박수 당골네는 부모도 안 중헌 줄 아냐? 앙 그리여. 그렁 거이 아니여.……중략……양반은 상놈한테 먼 짓 해도 상관없고, 상놈은 양반 옆에 찌끄래기만 줏어 먹어도 죽을 죄냐(7권 138쪽)?’

 

옹구네. “즈그들은 양반이라고, 멀쩡허게 서방 있는 넘의 각시도 오라 가라, 앉으라 서라, 누워라 엎어져라, 지 맘대로 주무르고 치긋고 차지험서나, 그러다가 어느 하루 지 마음 식으면 홱 내떤져 붐서나, 아 그께잇 노무 공산(空山)에 묏동 조께 살째기 쑤시고 들으갔대서 저 지랄을 허고 길길이 등천을 헝마잉. 천하에 다시없는 못헐 짓 헝 것 맹이로. 경우가 안 그리여? 경우가. 말로 따지자먼. 도둑질은 다 똑같은디(7권 217쪽).”

 

춘복. “이 피를 갚으리라(7권 234쪽).”

 

불문곡직 무작스럽게 달려들어 개 패듯이 패다니. 그것은 오직 그가 상놈이기 때문이었다. 문서도 절차도 없이(7권 239쪽).

 

강호. “내가 내 힘으로 내 몸 움직여서 근로하고, 그 노동과 근로를 통해서만 내가 먹을 밥과 내가 읽을 책을 산다는 것이 얼마나 떳떳한 일인가요. 내가 흘린 땀을 꼭 그만큼의 밥과 책으로 바꾸는 것이야말로 가장 정확한 교환 방법이고, 또 정직한 소득인 것이지요(7권 251쪽).”

 

강호. “그 자신의 노력이나 자질과는 아무 상관도 없이 그저 자신에게 숙명적으로 지워진 신분의 굴레 때문에 제가 태어난 환경을 벗어나지 못한 채, 일생 동안, 금방 고꾸라져 뒤집히면서 죽을 것만 같은 아슬아슬한 비탈길에 매달린 무산자(無産者)들(7권 25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