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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 8, 9, 10권

eunyongyi 2017. 6. 23. 21:11

최명희 지음. 매안 펴냄. 1996년 12월 5일 제1판 1쇄, 2015년 1월 26일 제2판 20쇄.

 

지루했는데. 가뜩이나. 이야기가 백제로, 고구려와 신라와 후백제로 흘렀다. 난데없이. 고려와 조선에 불교 사천왕 이야기까지. 뭐, 이야기마다 재미있고 배울 게 있긴 했으되 너무 많아 싫증. ‘아, 지루하다니까’ 하는 마음 가라앉지 않으니 내 어찌 누군가에게 <혼불> 한번 읽어 보라 말할 수 있겠나. 하물며 이야기가 아직 덜 된 — 미완성인 ― 바에야.

음. 양반 삶에 맺힌 이런저런 문화. 지은이는 그게 예뻐 구구절절 풀어내는 것 아닐까 싶을 때 많아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짜증 솟았다. 특히 일제 강점기 아래 일어난 일 비추는데 — 온 나라 삶이 일본 제국주의에 짓눌렸는데 ― 순사 하나, 앞잡이 하나 제대로 나오지 않다니. 창씨개명 때문에 순사 하나 매안 이 씨 집에 다녀가고, 어린아이 목에 칼 댄 선생이 괘씸하다 말한 게 고작. 어찌 그리 밋밋한지. 마주치기 싫어 얼굴 돌린 건가. 쩝.

 

덧붙여 여럿.

 

노예 찬규와 노비‧천민‧상민. “세상을 고치자(8권 19쪽).”

 

강호. 또는 지은이. ‘제도와 관습이라는 허울로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기회와 환경을 빼앗아 박탈하여 버린 횡포는, 마땅히 역사와 사회로부터 철회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기회와 환경을 모든 인간 앞앞에 각자의 몫으로 다시 되돌려 주어야 한다(8권 25쪽).’

 

강호. ‘뜻을 가진 사람이 살기에 세상은 알맞지 않은 곳일까. 뜻이 가는 길은 평탄치 못하다(8권 40쪽).’

 

춘복. ‘느그만 덕석 있고, 느그만 몽뎅이 있고, 느그만 패는 놈 있는지 아냐? 느그가 양반 무선지만 알고 상놈 무선지를 모르능게빈디, 내가 상놈 무선 본때를 뵈어 주마(8권 56쪽).’

 

오백 년 유장하던 그 나라는, 지금 여지없이 짓밟히어 찢기고, 갈갈이 흩어진 조선의 강산은 이제 일본의 더러운 발굽에 능욕을 당하고 있다(8권 99쪽).

 

역사 선생. “특히 김유신은 모사에 능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소문을 내는 데 명수였다. 그는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었지(8권 133쪽).”

 

선생. “제 밥그릇에 밥 한 주걱 더 얹는 것이 급해서 밥상을 통째로 내주고만 통일. 그것이 소위 신라의 삼국통일이라는 것 아닐까?……중략……김유신과 김춘추가 당나라를 이 땅에 끌어들인 책임을, 이제 와 물어도 아무 소용없지마는, 반드시 물어야 한다(8권 141쪽).”

 

김유신은 신분을 뛰어넘어 상승시키는 그 일을 신통한 꾀로서 능히 이루었으니(8권 173쪽).

 

사리반댁. ‘시절은 흉악해도, 그럴수록 하루 놀이를 누구한테인가 앗기지 않으려고, 예 하던 풍습대로 화전을 하러 갔던 그날이 눈에 삼삼하다(8권 316쪽).’ 시절은 일제 강점기. 화전은 땀 흘리지 않던 자들 모여 놀던 자리.

 

도환으로부터 사천왕 얘기 듣던 강호. “동경은 동경이고, 오늘은 이 공부가 더 긴합니다(9권 110쪽).” 닭살 돋는 어색함. 작위.

 

강호. 귀신도 중생에 든다는 도환 설명에. “하아, 몰랐습니다(9권 142쪽).” 불교에서 말하는 하늘과 귀신과 중생 따위를 제대로 아는 사람 몇이나 될까. 나도 몰랐다. 새로 알게 된 터라 잘 읽긴 했으되 머리에 새겨 두려 땀 흘리진 않았다. 지루했고.

 

도환. “이 적극적이고 활달한 백성들이 바로 우리 민족, 우리 조상, 우리 선조들인 것입니다. 땅으로 하늘을 끌어와 버리는 그 역동성이 얼마나 벅찹니까(9권 168쪽).”

 

강호가 사천왕 왼발에 밟힌 여인상을 보며 ‘속으로 머리를 흔들었지만, 강실이가 어느결에 이 사천왕의 발 아래 무릎 꿇고 앉은 여인의 몸을 빌어 그 안에 스며들면서, 꼭 저 모양을 하고 앉는 것이 보여(9권 189쪽)’ 당황했다는데 이건 좀 억지 아닐까. 강실에게 일어난 일을 보거나 듣지 못한 강호가 아주 잠깐, 그 말도 안 될 신내림이라도 받았을 거라 여겨야 하나. 음.

 

옹구네 집 방에서 강실이와 마주한 공배네에게 ‘엉뚱하게도 춘복이 얼굴이 번개처럼 떠오르면서 뒤꼭지를 탁 치는 것 같았다(9궐 211쪽)’는데. 지은이 느낌처럼 ‘엉뚱’한 것 맞다. 공배네도 아주 잠깐 이른바 신내림이라도 받았을 성싶다고 여겨야 할까.

 

‘머? 옹구네? 하이고오, 지랄허네. 이 꼬라지를 허고 자빠져 있어도 저는 양반이다, 이거지? 오냐, 잘났다. 어따 대고 옹구네여, 옹구네가. 그리여, 옹구네. 어디 말씀을 해 보시겨. 왜 그러싱고(9권 237쪽)?’

 

기표. “거기서 그친 것이 아니에요. 이 선생이 민재한테 양동이에 머리를 박으라 하고는, 뒷모가지에 칼을 댄 모양입니다(9권 297쪽).” 이 말에 기채도 몹시 화를 냈다지만 그냥 거기서 멈추고 말았다. 음.

 

심진학. “밀고하면 상금으로 한 돈 반을 준대서 ‘돈반짜리’라고 하는 밀대들이 앞집이고 옆집이고 길거리에고 쫙 깔려, 더럽고 비루한 개같이 두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 터에(10권 17쪽).”

 

강태. “세상은 말이다. 항상 거꾸로 볼 줄을 알아야 한다. 그곳에 새 길이 있거든. 새 길이 아니면 새 세상으로 갈 수가 없어(10권 101쪽).”

 

“썩어빠진 봉건 지주 양반 계급의 지배 논리와 착취 근성이, 무지몽매한 인민들을 영원히 노예로 묶어 두고자 날조해 낸 거짓말, 조작된 이데올로기(10권 118쪽).”

 

옥란 언니. ‘나는 이 다음에 죽더라도, 이 못 살았던 세상을 절대로 원망하지는 않을 테다. 왜냐하면 세상에, 그, 나를 부르던 멋쟁이 아가씨는 우리 옥란이, 필녀였던 것이다. 이런 일을 누가 믿어. 누가 이런 일을 믿을 수 있어(10권 269쪽).’ 음. 맞아. 나는 도무지 믿지 못하겠다.

 

기미년 삼월에 독립만세 운동이 거국적으로 벌어졌을 때, 사람들은 이 용머리 고개를 하얗게 넘어오며 목메어 만세를 불렀지(10권 296쪽).

 

옹구네. “저 속에 든 것이 춘복이 씨요(10권 316쪽).” “말 났잉게 다 말허제. 자, 인자 저 뱃속으서 나올 거이 양반이요오, 쌍놈이요? 안 그러먼 양반 쌍놈 딱 합쳐서 보태 갖꼬 반으로 쪼개서, 없던 시상을 새로 낼 그 누구요(10권 31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