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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 1, 2

eunyongyi 2017. 7. 8. 19:43

■로마인 이야기 1 ―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한길사 펴냄. 1995년 9월 30일 제1판 1쇄. 2014년 2월 10일 제1판 103쇄.

 

“정치체제를 확립한 뒤, 로물루스가 수행한 두 번째 사업은 바로 이민족 여인들을 강탈하는 일(43쪽)”이었다고. “로물루스는 인근에 사는 사비니족을 축제에 초대했다.……중략……축제 기분이 고조됐을 무렵, 로물루스 명령에 따라 로마의 젊은이들은 사비니족 아가씨들에게 덤벼들었다(44쪽).……중략……서양에는 지금도 신랑이 신부를 안아들고 신방 문턱을 넘는 풍습이 있다. 이 사건 이후 시작된 로마인의 풍습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온 것(45쪽)”이란다.

신랑이 신부를 번쩍 들어 올린 채 신방에 드는 걸 보고 웃으며 손뼉 칠 일은 아닌 듯. 기원전 750년 무렵 이야기이니 2700년여 동안 다른 뜻 더 스며들기도 했겠지만 그 일 시작된 게 ‘사람 억지로 빼앗기’였으니. 씁쓸하다. 사람을 물건 다루듯 빼앗는 걸 보며 손뼉 칠 일은 아니니까.


덧붙여 아래로 여럿.

 

로마의 왕은 신의 뜻을 나타내는 존재가 아니다. 공동체의 뜻을 구현하고, 그 공동체를 이끌어가는 존재다. 죽을 때까지 왕위에 앉기는 하지만, 왕위를 세습하지도 않는다. 또한 선거를 통해 뽑힌다(48쪽).

 

로물루스 시절의 로마에서는 1년의 날수가 정해져 있지 않았다. 누마는 달이 차고 기우는 것을 기준으로 해 1년을 12달로 정하고, 1년의 날수를 355일로 결정했다(50쪽).

 

무정부 상태의 혼란과 계속되는 권력투쟁에 지친 아테네 시민들은 질서만 회복된다면 그 밖의 일은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하게 됐다. 이것을 스스로 실현할 능력이 없는 그들은 한 사람에게 질서 회복의 임무를 맡겼다(120쪽).……중략……독재정치는 그러나 독재자의 재능이나 성격에 좌우될 수밖에 없다.……중략……기원전 510년, 아테나 귀족들은 스파르타의 후원을 얻어 독재정치를 타도했다(122쪽).

 

페리클레스. “우리는 부를 추구하지만, 이것은 가능성을 유지하기 위함일 뿐, 어리석게도 부를 자랑하기 위함이 아니다. 또한, 일신의 가난을 일정함을 수치로 여기지 않지만, 빈곤을 극복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함은 깊이 부끄러워한다(155쪽).”

 

로마인은 표면에 나타난 현상만 보는 사람들이 모방의 민족이라고 경멸할 만큼 다른 민족한테서 많은 것을 배운 민족이었다(196쪽).

 

공화정 시대의 집정관은 이렇게 대단한 권위와 권력을 가진 자였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외무 공무원인 영사의 어원이 되어 버렸으니, 참으로 한심한 노릇이다(214쪽).

 

로마 안찰관(아이딜리스). “‘빵과 서커스’ (대중의 불만이나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기 위해 정부가 대중에게 제공하는 식량과 오락 — 역주) 양쪽을 모두 담당하는 관직이 된 셈이다(219쪽).”

 

로마에서는 집정관을 지낸 사람도 재무관에 선출되면 재무관으로 일했다. 정계나 관계만이 아니라 군대에서도 상위직에 있었던 사람이 하위직을 맡는 경우가 허다했고, 이것을 불명예스럽다거나 부적절하다고도 생각하지 않았다(224쪽).

  


■로마인 이야기 2 — 한니발 전쟁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한길사 펴냄. 1995년 9월 30일 1판 1쇄. 2003년 10월 10일 1판 47쇄.

 

온통 싸움 얘기. 그때 그랬다니 — 역사였다니 ― 굳이 나무랄 건 아니겠으나 지은이는 “특히 나의 흥미를 끄는 것은 여기에는 승자와 패자의 구분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정의와 비정의의 구분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전쟁이 범죄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만약 전쟁 범죄자에 대한 재판이라도 열렸다면, 한니발이 전범 제1호가 됐을 것(369쪽)”이라고.

음. 전쟁 일으켜 수많은 사람 죽게 한 일본에서 태어난 사람이라 그럴까. 어찌 전쟁에 승자와 패자만 나뉘고 정의와 비정의가 나뉘지 않겠는가. 세상엔 정의로운 싸움이 있으되 일본이 일으킨 전쟁은 올바르지 않았다. 일본에 전쟁 범죄자가 많은 까닭이기도 하고. 음. 전쟁. 사람 죽이는 싸움. 더 말할 것도 없이 사람이 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승자와 패자의 구분밖에 없다”고 말해선 곤란하지 않나. 늘 승자 되어 웃으려 할 테고, 그 웃음 때문에 사람 여럿 죽는다.

 

덧붙여 아래로 여럿.

 

로마는 싸움터로 가기에 앞서 새점을 쳤단다. 말하자면 “풀케르는 트라파니를 공격하러 떠나기에 앞서 새점을 쳤는데, 로마군 지휘관이 출정을 앞두고 새점을 치는 것은 상례적인 행사였다(60쪽)”는 것. “닭이 모이를 쪼아 먹는 모양을 보고 길흉을 점치는 것이다. 로마군의 전략이 닭의 기분에 좌우되면 지휘관에게는 곤란하기 때문에, 종군하는 점쟁이는 대개 닭을 굶겨서 모이를 잘 쪼아 먹게(60쪽)” 했다고. 싸우러 가기에 앞서 닭 바라봤다는 얘기. 음. ‘이런 닭대가리 같은.’

 

카르타고 용병이었다가 반기를 든 사람들. “굶주림에 시달린 반란군은 급기야는 포로나 노예를 죽여 그 고기를 먹으면서 저항을 계속했지만, 필경은 항복할 수밖에 없을 터였다(78쪽).”

 

“속주민은 수입이나 수확의 10퍼센트를 세금으로 로마 정부에 납부했다. 농민은 현물로 납부했다. 이 직접세는 수입의 10분의 1을 바친다는 의미에서 ‘십일조’라는 별명으로 불렸다(91쪽).”

한국 교회에서 걷는 ‘십일조’라는 게 유대교나 기독교에서 온 게 아니었네. 로마였어. 음.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엔 ‘속주(屬州)’ 뜻매김 가운데 하나로 ‘이탈리아반도 이외의 로마 영토’라고 해 뒀다. 로마가 싸움을 많이 벌이긴 했나 보다. 한국 국어대사전에까지 올랐으니.

 

(로마) 군단 지휘관에게 귀족과 평민의 차별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것(100쪽).

 

(로마 군대가) 투구에 화려한 장식을 다는 것은 게르만족이나 갈리아인에 비해 키가 작은 로마인의 키를 조금이라도 커 보이게 하기 위해서였기 때문에, 군대의 주축인 중무장 보병한테만 허용됐다(108쪽).

 

로마인에게는 무엇이든지 체계화해야 할 이유가 있었다. 지휘관부터 병사까지, 군대 전체가 해마다 바뀌는 것이다. 그러니, 누가 해도 같은 결과를 낳기 위해서는 자세한 부분까지 미리 결정해 둘 필요가 있었다(112쪽).

 

천재는 그 개인에게만 보이는 ‘새로운’ 사실을 볼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누구나 뻔히 보면서도 그 중요성을 깨닫지 못했던 ‘기존의’ 사실을 깨닫는 사람이야말로 천재다(209쪽).

 

함락된 카르타고는 성벽도, 신전도, 집도, 시장 건물도 모조리 파괴됐다. 로마군은 돌과 흙밖에 남지 않은 지표면을 가래로 고른 다음 소금을 뿌렸다. 신들의 저주를 받은 땅에는 소금을 뿌리는 것이 로마인의 방식이다(45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