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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 5, 6

eunyongyi 2017. 8. 1. 22:43

■로마인 이야기 5 ― 율리우스 카이사르·하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한길사 펴냄. 1996년 8월 10일 1판 1쇄. 2003년 9월 30일 판 39쇄.

 

“진두지휘하는 사령관과 그 휘하에서 싸우는 정예 병사들은 고락을 함께하는 기간이 길면 길수록 신뢰도가 높아지는 동시에 친밀감도 강해지게 마련이다. 그런데 어떤 계기로 그것이 친밀감의 한계를 넘어 ‘어리광’으로 바뀐다. 어리광은 조금만 발전하면 ‘상대를 깔아뭉개고 기어오르려 하는 태도’로 바뀐다. 그렇기 때문에 거기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서는 단순한 파업이 반란으로 발전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79쪽).”

파업을 일으킨 카이사르 군단을 두고 지은이가 한 말. 늘 목숨 걸고 싸우니 언제 죽을지 모를 사람들이 참다못해 일으킨 파업을 한낱 ‘어리광’에 ‘기어오르려는 태도’로 여겨 짓밟는 지은이. 얕다. 전쟁터에 나가 누군가와 칼 들고 맞서 본 적 없는 자가 어찌 그리 쉬 말하나.

하나 더. 클레오파트라가 카이사르에게 몸을 줘 이집트 지배권을 얻은 것 아니냐는 이야기를 두고 지은이는 “카이사르는 일에서는 금욕주의자였지만 사생활에서는 쾌락주의자였다. 차려 준 밥상도 못 먹는 것은 사나이의 수치라는 말을 실천하는 데 망설임을 느낄 사람은 아니었다(205쪽)”고 썼다. ‘차려 준 밥상’은 클레오파트라요, 카이사르는 말할 것도 없고 누구나 ‘먹어야 사나이’ 아니겠느냐는 게 지은이 생각인 듯. 이 또한 얕다. 지은이는 누군가에게 자기 몸을 밥상처럼 차려 낼 수 있다는 건가.

 

덧붙여 여럿.

 

카이사르가 키케로에게. “내가 석방한 사람들이 다시 나한테 칼을 들이댄다 해도, 그런 일로 마음을 어지럽히고 싶지는 않소. 내가 무엇보다도 나 자신에게 요구하는 것은 내 생각에 충실하게 사는 거요. 따라서 남들도 자기 생각에 충실하게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오(29쪽).”

 

카이사르. 국고를 털어 전쟁 밑돈으로 쓰려는 자신을 비판하고 나선 호민관 메텔루스에게. “이보게 젊은이. 자네도 아다시피, 나한테는 자네와 이렇게 입씨름을 하는 것보다 부하를 시켜서 자네를 죽이는 편이 훨씬 힘이 적게 든다네(50쪽).”

 

“카이사르가 그들(10군단)에게 참전을 허락한 것은 마르스 광장에서 ‘단체교섭’이 있었던 날부터 두 달 가까이 지난 뒤였다. 물론 카이사르는 보너스도 주지 않고 급료도 올려주지 않고 제10군단을 참전시키는 데 성공했다. 게다가 제발 참전해 달라고 애원해서 참전시킨 게 아니라, 병사들이 스스로 원해서 따라온 형태로 참전시켰다(235쪽).” 잔꾀 대왕 카이사르.

 

‘포룸(forum)’ ― 이탈리아아로는 ‘포로(foro)’ ― 은 고대 로마인에게는 공공생활의 중심지를 의미했다. 포럼은 정치·행정·사법·종교·경제가 혼연일체가 되어 이루어지는 곳이다(331쪽).

 

카이사르는 “옥타비아누스에게 모자란 면을 보충하기 위해, 출신은 비천하지만 성실하고 군사적 재능이 뛰어난 아그리파라는 젊은 병사를 골라서 옥타비아누스에게 붙여 줬다. 아그리파는 옥타비아누스와 동갑이었다(390쪽).”

 

로마의 명문 귀족인 클라우디우스 네로는 옥타비아누스에게 아내를 양보했다.……중략……신부 들러리를 전남편이 맡은 색다른 결혼식이었다. 결혼식이 끝난 지 석 달 위에 리비아는 아들을 낳았다(469쪽).


 

■로마인 이야기 6 ― 팍스 로마나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한길사 펴냄. 1997년 8월 25일 1판 1쇄. 1997년 9월 5일 1판 3쇄.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인구는 고대 로마의 두 배인 일본의 경우, 자위대의 육군 병력은 15만 명이다. 이렇게 적은 이유는 헌법에 맞느냐 안 맞느냐 하는 것보다 다른 나라와 육지로 이어져 있지 않다는 사정 때문이 아닐까(216, 217쪽).”

지은이가 품은 생각. 아니, 섬인 것과는 상관없고 헌법 때문이다. 일본이 일으킨 전쟁 때문이요, 그때 애꿎은 사람 많이 죽였기 때문인 것. 15만 명도 많다. 모두 하사관 이상이잖은가. 지은이처럼 틈새를 엿보는 자 때문에 일본에서 “전쟁과 전력(戰力)을 포기한 헌법 9조를 바꾸자”는 새된 소리가 나온다고 나는 본다.

 

덧붙여 여럿.

 

로마군에서 병역을 치르고 있는 현역 병사들은 독신 의무를 지켜야 한다. 만기 제대할 때에는 마흔 살 안팎이 된다. 이 나이의 독신 남자가 이주해 현지 여자와 결혼하는 것이 로마의 식민 방식이다(74쪽).

 

로마의 유력자들은 옛날부터 외출할 때에는 ‘노멘클라토르’라고 부르는 노예를 동반하는 것이 관례였다. 유력자니까 포로 로마노를 걷고 있으면 다가와서 인사하는 사람이 끊이지 않는다. 그 많은 사람의 이름을 전부 다 기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저쪽에서 사람이 다가오는 게 보이면, ‘노멘(이름)’을 ‘클라토르(일러주는 자)’의 역할을 맡은 노예가 얼른 주인에게 상대의 이름을 속삭인다(99쪽).

 

기원전 1세기 말의 로마에서는 자식을 적게 낳는 풍조가 뚜렷해졌다.……중략……기원전 1세기 말의 로마가 가난하고 장래에 희망을 가질 수 없었던 것은 아니다. 아니, 그와는 정반대였다. 다만 자녀를 낳아서 키우는 일 외에도 쾌적한 인생을 보내는 방법이 늘어났을 뿐이다(159쪽).

 

라틴어에 기반을 두고 있는 이탈리아어에서는 영화배우를 지칭할 때 남자는 디보(divo), 여자는 디바(diva)라고 하는데, 이것은 ‘신과 같은 사람’이라는 의미다(175쪽).

 

로마인은 유산을 혈연에게만 물려주지 않았다. 로마인에게는 절친한 친구나 존경하는 사람에게 유산을 남기는 풍습이 널리 퍼져 있었다(240쪽).

 

아우구스투스가 제도화한 ‘유벤투스’는 신체단련과 협동정신 습득을 목표로 내건 9 ~ 17세 소년들로 구성된 단체 이름이었다(306쪽).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에 담겼다는, 디오메데스가 오디세우스를 평한 말. ‘그 사람과 함께라면,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도 둘이 함께 탈출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사람의 깊은 통찰력은 달리 유례를 찾아볼 수 없으니까(36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