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인 이야기 7, 8
■로마인 이야기 7 — 악명 높은 황제들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한길사 펴냄. 1998년 12월 30일 1판 1쇄. 2003년 10월 20일 1판 28쇄.
“우상숭배를 금지하고 있는 유대교 신전에는 성소 안에도 아무것도 놓여 있지 않았다. 신전에서 나온 폼페이우스의 감상은 ‘아무것도 없더라’는 것이었다. 악의로 한 말은 결코 아니었다(279쪽).”
그 무엇이고 있을 리 없지. 마땅히. 사람이 만들어 ‘신전’이요 ‘성소’라 여긴 것뿐인데, 뭐. 색깔 없고 냄새도 없는 공기만 있었겠지.
음. 티베리우스 칼리굴라 클라우디우스 네로 갈바 오토 비텔리우스 베스파시아누스 티투스 도미티아누스. 싸우고 죽여 가며 바뀐 사람들. 7, 8권 내내. 큰 틀 바뀌지 않은 채. 지루… 했다.
덧붙여 여럿.
로마군 졸병 페르켄니우스. “우리는 30년이고 40년이고 계속되는 병역을 견디고, 노화를 견디고, 온몸에 박힌 상처를 견뎌왔다(42쪽).”
백인대장들은 한 사람씩 총사령관 앞에 불려나와 이름과 소속 백인대, 출신지, 근속 햇수, 전공(戰功) 유무 등을 신고한다. 그런 다음 직속상관인 대대장이나 소속 군단병들이 이 백인대장의 근면성과 정직성을 인정하면 계속 근무하게 하고, 반대로 탐욕스럽고 잔인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면 해임했다(63쪽).
체력, 지력, 정신력이 모두 쇠퇴한 뒤 노망이 든 상태로 목숨만 부지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 로마 지도층에서는 음식을 끊고 스스로 죽음을 맞은 예가 드물지 않다(205쪽).
<황제열전> 속 티베리우스는 “음탕한 성행위를 개발해 실제로 그런 행위를 시켰다는 것. 각지에서 모아들인 소년소녀들을 한 쌍씩 짝짓고, 거기에 그 방면의 대가를 한 사람씩 붙여서, 티베리우스가 보고 있는 앞에서 이들 세 사람에게 성행위를 시켰다고 한다. 각 팀마다 다른 체위의 성행위를 하도록 되어 있었다. 수에토니우스의 설명에 따르면 그 목적인 티베리우스의 쇠퇴한 성욕을 자극하는 데 있었다고 한다(209, 210쪽).”
칼리굴라의 발안으로 프로 검투사의 1 대 1 시합이 프로 검투사와 아마추어인 중죄인의 대결로 바뀌었다. 칼싸움 기술을 전혀 훈련받지 않은 사람이 시합에 나서면 경기는 더욱 잔혹해진다. 시민들이 여기에 열광한 것은 당연했고, 그 경기의 후원자는 칼리굴라였다(248쪽).
신권 정치의 가장 큰 특징은 종교인이 사법에까지 개입하는 데 있다(284쪽). 신이 내려준 율법에 따라 인간이 재판을 받는다는 유대교의 입장에서 보면, 이것은 지극히 당연하다(285쪽).
그리스어에서 조국을 떠나 외국으로 이주하는 것을 의미하는 ‘디아스포라(diaspora)’는……중략……기원전 1천 년 전에 시작된 그리스 민족의 이주로 지중해 세계에는 서방과 동방을 막론하고 곳곳에 그리스인 도시가 건설됐지만, 유대인이 건설한 도시는 전혀 없다고 해도 좋다(289쪽).
“칼리굴라는 느닷없이 우리 쪽으로 질문의 화살을 돌렸다. ‘왜 너희는 돼지고기를 안 먹느냐?’……중략……칼리굴라는 큰 소리로 웃은 뒤에 말했다. ‘거기에 대한 대답은 간단하다. 맛이 없기 때문이다(301쪽).’” ‘우리’는 필로를 비롯한 유대인 사절단.
로마를 짊어지고 있다고 자부하는 이들은 (클라우디우스의) 비서진 중에서도 특히 거만한 나르키소스와 팔라스와 칼리스투스를 ‘해방노예 3인방’으로 부르며 증오하게 됐다(367쪽).
황후는 밤마다 황궁이 있는 팔라티노 언덕에서 내려와, 이 언덕 옆에 세워진 대경기장의 관람석 밑에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매음굴에서 손님을 받았다고 역사가들은 말한다(375쪽).
어쨌든 클라우디우스 황제는 친아들보다 네 살 위인 의붓자식을 양자로 삼고, 그 양자와 친딸 옥타비아를 약혼시키겠다고 공표했다.……중략……네로는 클라우디우스 씨족의 출신 부족인 사비니족의 말로는 ‘과감한 사나이’라는 뜻으로, 클라우디스 씨족 남자들의 전형적인 이름 가운데 하나였다(423쪽).
건설과 재원 확보를 통한 네로 황제의 로마 재건책은 시민들에게 좋은 평판을 얻었다(550쪽).
■로마인 이야기 8 — 위기와 극복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한길사 펴냄. 1999년 11월 10일 1판 1쇄. 2003년 7월 15일 1판 24쇄.
“유월절을 예년처럼 예루살렘에서 보내라고 장려하기까지 했다. 유일신이 지켜주는 예루살렘이 이교도 로마의 손에 떨어질 리는 없다고 단언하면서.……중략……많은 사람들이 신이 살고 계시는 예루살렘은 절대로 침몰하지 않으리라 믿고 그곳에 남았다(226쪽).”
무너져 내려앉았다.
“그가 손을 대자마자 장님은 눈을 뜨고 앉은뱅이는 벌떡 일어났다. 기적이다! 사람들은 환성을 지르고, 장님과 앉은뱅이는 고마워서 어쩔 줄을 모르며 베스파시아누스의 발등에 키스를 퍼부었다(244쪽).”
짬짜미. 마땅히.
덧붙여 여럿.
붙잡혀서 살해되고, 잘린 머리는 창끝에 꽂히고, 그 창을 치켜든 병사들이 포로 로마노를 누비고 다닌다. 시민들은 그 목을 향해 돌멩이를 던진다(81쪽).
‘소맥법’이 존재했기 때문에 인구 백만의 도시 로마에서 굶어죽는 사람이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도 무시할 수는 없다. 또한 제국의 경제력이 향상되면서 지방도시나 속주에도 이와 비슷한 사회복지가 보급되었기 때문에, 그 광대한 로마 제국에서 기아로 인한 집단 사망이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은 특기할 만하지 않을까(292쪽).
로마 사회에서는 교육 수준의 높낮이가 경력에 별로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역대 황제들 중에도 당시 최고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던 아테네나 로도스 섬에 유학한 사람은 없다(295쪽).
로마 황제 가운데 수명을 늘리려고 기를 쓴 사람은 하나도 없다.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는 고령자가 병으로 쓰러져 더 이상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으면, 치료를 거부하고 곡기를 끊고 자실을 선택한 경우가 적지 않다(296쪽).
로마식 목욕탕에는 원래 남탕과 여탕은 구별돼 있지만 신분에 따른 구별은 없었다. 원로원 의원과 서민이 한데 어울려 목욕을 했다(33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