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nyongyi 2017. 9. 3. 20:16

이문구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1977년 12월 15일 초판 1쇄. 2017년 1월 16일 3판 41쇄.

 

이문구 소설 두 번째. 특히 이제야 <관촌수필>을 읽었으니. 내 소설 읽기가 그다지 넓지 않다는 걸 방증할 터.

“야, 너 잘 들어봐. 우리의 처지를 약진의 발판으로 삼어 창조의 힘과 개척의 정신을 기르며 공익과 질서를 앞세워 능률과 실질을 숭상허구, 경애와 신의에 뿌리박은 상부상조의 전통을 이어받는다— 너 이게 뭔지 잘 알지(374쪽)?”

이게 뭔지 알겠으니. 음. 입안에 쓴 맛 가득 고였다. 어릴 적 어느 몹쓸 놈이 그걸 초등학교 교실에 던져 주고는 외우라 했으니까. 사십 년쯤 지난 지금도 그게 뭔지 대번 알 지경이니. 내 어린 날 그것 외우라 억누른 놈, 참 나쁜 자였다.

“전우의 시체를 넘고넘어 앞으로 앞으로…… 우리 학교 전교생은 목통이 터져라고 노래를 부르고, 호루라기 소리, 경찰관의 고함과 호통 소리, 떠난다고 울어대는 기적 소리, 젖먹이 아이들 우는 소리, 중고등학생들이 불고 치는 북소리 나팔 소리…… 동이 트는 새벽 꿈에 고향을 본 후 배낭 메고 구두끈을 굳게 매고서…… 노래를 불렀다(167쪽).

나도 목청 돋워 “전우의 시체를 넘고넘어 앞으로 앞으로”와 “동이 트는 새벽꿈에 고향을 본 후”를 부른 적 있으니. 음. 나는 아무래도 내 아버지뻘 지은이가 산 삶에 가까운 사람이런가. 하긴 그렇지. 지은이와 나이가 같은 내 아버지는 스물아홉 살에 나를 봤고, 나는 서른세 살에 같이 사는 벗이 낳은 아이를 봤으니까. 그나마 나는 “배낭 메고 구두끈을 굳게 매고서”와는 조금 달리 “외투 입고 투구 쓰면”이라 노래했으니 삶은 그리 흘렀다. 흐르고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