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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를 위하여

eunyongyi 2018. 6. 25. 21:57

김형경 지음. 창비 펴냄. 2013년 11월 25일 초판 1쇄. 2014년 1월 14일 초판 3쇄.


내 눈에 씽(싱)글맘이란 자기 행동을 스스로 책임지는 여성, 한 생명에 대한 사랑을 끝까지 지켜 내는 사람, 예측 불가능한 삶을 떠안고 묵묵히 걸어가는 용감한 사람이다(32쪽).


대부분의 남자들은 적어도 중년의 시기가 되어야 자식이 책임이나 부담이 아니라 축복이라고 느낄 수 있다. 그제야 아버지라는 역할을 맡게 된 것을 행운이라 여기고, 아버지 역할에 필요한 것은 딱 두 가지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넘치는 배려와 우정. 하지만 그때는 이미 자식들이 충분히 상처받으면서 다 자란 이후일 때가 많다(49, 50쪽).


예전의 가부장제하에서 아버지들은 가족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지는 조건으로 무한 권력을 누렸다. 가족들의 복종과 존경은 당연한 것으로 여겼고, 가족에게 폭력을 행사할 권리도 있었다. 능력만 되면 첩을 얼마든지 거느려도 좋았다. 결혼제도의 본질은 예나 지금이나 교환이어서, 다른 생존법이 없던 그 시절의 여자들은 경제력 있는 남자의 다섯째 부인이라도 되어야 했다. 그런 관행 속에서 가장을 제외한 모든 가족들의 가슴은 논바닥처럼 갈라졌다(65쪽).


미국 역사학자 크리스토퍼 래시는 1970년대에 미국 사회에서 이혼이 증가하는 현상을 개인들의 나르시시즘 때문이라고 진단한 바 있다. 어느 집에서나 자녀들을 금쪽처럼 키우는데 결혼 후 여자들은 성장하는 동안 배운 적 없는 헌신, 배려, 시중들기를 해야 하니, 그것을 잘해 낼 리가 없다(71쪽).


사물에 수집 취미를 갖는다는 것은 사람에게 사용해야 할 리비도를 엉뚱한 곳에 허비한다는 의미다. 그저 편의를 위해 사용하는 물건을 모시고 숭배한다면 자칫 사물들을 물신의 자리에 세울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런 이들은 대체로 내면 어딘가에 결코 채워지지 않는 심리적 구멍이 있어 그것을 메우려는 노력으로 사물들을 끌어모은다. 사람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사물을 사랑하는 이들이고, 사람과 나누어야 할 애착을 사물에게 쏟는 것이다(111쪽).


‘본다는 것’은 현대 남성들이 대놓고 자유롭게 누리는 쾌락으로 보인다. 사진이나 영화는 모두 관음증에 부응하여 발전해 가고 있는 문화적 산물이 아닐까 싶다. 걸그룹에 열광하는 우리나라 삼촌 부대 역시 본다는 것의 쾌락을 즐기고 그것에 길들여지고 있는 이들일 것이다(122쪽).


우리 사회는 여자를 상대로 하는 각종 폭력이 범죄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데 오래 걸리는 중이고, 그러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낸 것도 최근의 일이다(144쪽).


가끔은 완력으로 길을 막는 이도 있는데, 손목이 잡힌 채 대치하면서 내 힘으로는 이 손아귀의 힘을 이겨 내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 때면 슬며시 공포심이 스치기도 한다. 물론 남자들은 내가 느끼는 두려움은 상상도 못한 채 떼쓰는 아이 같은 태도를 견지한다(165쪽).


아버지가 아들을 패면 그 아들은 돌아서서 동생을 패거나 밖에 나가서 후배들을 팬다. 그것도 하지 못하는 아이는 자기 자신을 죽인다. 육체에 폭력의 경험이 전혀 없다면 그 어린 청소년들이 자기 몸에 대해 그토록 가혹한 행위를 하지 않을 것이다(206쪽).


저스틴 A. 프랭크의 <부시의 정신 분석(Bush on the Couch)>을 읽어 보면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불안한 인물의 대표 격으로 보인다. 그는 불안감으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알코올, 약물, 종교 등에 차례로 매달린다. 그는 아내가 곁을 지켜주기를 간절히 바란 것으로도 유명하다. 1988년 아버지의 대통령 선거 유세 기간에 이틀 이상 부인 로라와 떨어져 지내는 것을 거부했을 정도였다(209쪽).


조지 부시는 자기 내면의 공포를 외부 탓으로 돌리기 위해 외부에 적을 만들어 낸다.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고 시민들의 마음에 두려움을 주입한다. 겁이 난다는 사실을 겁내고, 또 겁이 난 것처럼 남에게 보이는 것을 겁낸다. 저자는 부시가 미국인 중에서 가장 겁이 많은 사람 가운데 하나일 거라 말하면서 그를 ‘불안을 외부로 투사하는 싸(사)디스트’라고 정의한다(210쪽).


지나치게 남자인 척하는 남자, 힘자랑하는 남자, 마초인 남자와는 관계 맺기가 불편했다. 그런 이들과 마주 앉아 이야기 나누면 십 분도 지나지 않아 내면에서 울컥하는 감정이 올라왔다. 그들의 남성답다는 정의에는 여자를 무시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듯했다(29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