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설공주는 왜 자꾸 문을 열어 줄까 ㅡ 동화로 만나는 사회학
박현희 지음. 뜨인돌 펴냄. 2011년 6월 30일 초판 1쇄.
“바른 대로 말하는 것은 그 자리에서는 불편해도 결국은 제일 쉬운 방법일 때가 많다. 거짓말하려면 그 순간에 머리를 굴려야 하고 이후에도 계속 앞뒤를 맞추기 위해 안 돌아가는 머리를 혹사해야 하는 상황이 이어진다. 거짓말이 생각보다 비용이 많이 드는 방식이라는 것을 깨닫고 난 뒤에는 (대체로 거짓말의 비용을 치르면서 어른이 되니까. 어른이 되면 깨달을 수밖에 없다.) 정직을 선택하게 된다. 그러니까 거짓말이 습관이 된다는 말이 100퍼센트 진실이라고 볼 수는 없다(28쪽).”
이롭고 생각해 볼 게 많은 책인데 눈길이 자꾸 28쪽으로 되돌아가는 건 ‘거짓말이 습관이 된 놈’을 내가 알기 때문. ‘대체로 거짓말 비용을 치르면서 어른이 되니까’ 이미 깨달았을 만한 나잇살임에도 밥 먹듯 거짓말하는 버릇 못 버린 놈 있고, 그놈 거짓말하는 거 잘 알면서도 예뻐라 놔두는 놈도 있지.
책 속 생각거리 여러 토막.
학교는 ‘물론’이 난무하는 곳이다. 수많은 금지의 규범과 그보다 더 많은 강제규범들이 학교를 지배하고 있는데, 그 규범들의 공통점은 왜 그래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4쪽).
학교가 너에게 맞지 않을 뿐이야. 그러니 주눅 들지 말고 당당하게 너의 행복을 찾아가렴(8쪽).
우리는 싫어할 이유가 충분한 누군가를 싫어할 권리가 있다. 용서하고 싶지 않은 누군가를 용서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화해는 무조건 좋은 것이라는 우리의 관념이 때로 누군가의 가슴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계속해서 문제를 유발시킨다. 모두와 사이좋게 지내겠다는 것은 얼마나 무모한 욕망인가. 또 모두와 사이좋게 지내라는 것은 얼마나 무리한 요구인가(22쪽).
산업 혁명으로 사회가 밑바닥부터 재편되면서, 농사를 짓던 사람들은 이제 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하게 됐다. 농사일은 아버지를 따라 밭에 나가 일하면서 전수되지만, 공장 일은 그런 식으로 배울 수 없었다. 공장주들은 기본적으로 읽고 쓰고 셈하기를 할 수 있는 일꾼들을 원했다. 노동자의 자녀에게 읽고 쓰고 셈하기를 가르쳐 내일의 노동자로 준비시킬 제도가 필요하다는 사회적 요청에 따라 생겨난 것이 근대적인 학교였던 것이다(39쪽).
학교는 온전한 자기 삶의 주인이 되는 데 필요한 것보다는 사회가 필요로 하는 것을 가르친다. 이것은 정해진 시각에 출근해서 정해진 자리에서 정해진 일을 하는 산업 사회의 일터 모습과 놀랍도록 닮았다. 이때 사람들이 하는 일은 자신의 필요를 충족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 필요를 충족하기 위한 것이다(41쪽).
부당한 규제에도 묵묵히 따르는 순종적인 인간을 키워 내는 것이 자본주의 세상이 학교에 바라는 것이라면, 학교는 복장 규제를 통해 세상의 요구에 답하고 있다. 부당한 규제를 별다른 불만 없이, 혹은 불만이 있더라도 속으로 삭이며 참고 견디도록 길들여진 아이는 자라서 기업의 부당한 방침에도 묵묵히 일만 하는 노동자로 최적화될 것이다. 이때 규제가 부당한 것일수록, 그리고 강제하는 방식이 억압적일수록 효과는 더 커진다(115쪽).
만약 일을 안 해도 좋을 정도로 충분한 돈을 얻는다면 그래도 계속 일을 하고 싶은가?
① 예. 생활 수준을 더 높이기 위해
② 예. 일이 돈 이상의 의미가 있으므로
③ 아니오. 여가를 즐길 것
120, 121쪽. 강수돌의 <일중독 벗어나기>에 따르면 2003년부터 2005년 사이에 이뤄진 설문조사라는데 한국 24.7퍼센트, 일본 10.4퍼센트, 미국 59퍼센트, 독일 43.1퍼센트인 것은 몇 번일까요.
문명화된 사회 전반에 확산된 ‘모성애’ 신화는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 하여금 감히 ‘육아가 너무 지겹다’는 생각을 인정하는 것조차 금기로 한다. 그러니 몸의 피로는 물론이고 정신적 결핍에 대해서도 감히 말하지 못하는 것이다(138쪽).
묻지 마 이불 공주에게 필요한 것은 꿈이다. 꿈을 꾸는 것을 허락하는 사회이다. 그에게 관심을 갖고 소중하게 여겨 주는 누군가의 존재이다(180쪽).
라푼젤은 사실 혼전에 온갖 규범에 갇혀 사회적으로 유폐된 모든 처녀들에 대한 은유이다.······중략······내가 라푼젤이라면? 길고 탐스러운 머리카락에 대한 애착을 집어던질 테다. 길고 탐스러운 머리카락의 용도가 수컷을 꼬드기는 데 있음을 직시하고, 수컷을 꼬드겨서 내 운명이 바뀔 것이라는 헛된 꿈 따위는 내던져 버릴 테다(191쪽).
누구든 계획되고 예정된 길, 세상 사람들이 기대한 길에서 벗어나 오직 욕망에 충실해지는 순간을 열망한다. 그게 사랑이다(199쪽).
204쪽. 유엔 어린이·청소년 권리 조약 제31조. ‘우리에게는 쉬고 놀 권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