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8.27. 00:10 ㅡ 대답 1
[銀容사說] 어리석은 말과 행동에 대해 사리를 밝힌 대답 1
어려웠다. 늘. 어리석은 말과 행동을 두고 어질고 슬기로워 사리에 밝은 대답을 내놓는 거. 때론 끙끙 앓았다.
구원모 전자신문 사장의 말이나 행동에도 끙끙댔다. 어찌해야 이치에 맞게 제대로 대답해 줄 수 있을까 하여 몹시 부대꼈다.
하나. “150억 원 투자했다.” “연봉제 하자.”
“사장님이 회사에 대한 애정이 대단하시네요. 전자신문 공채 기자 출신이고 회사에 150억 원이나 투자하셨다면서요. 남들은 ‘그 돈으로 평생 놀고먹어도 될 텐데 왜 회사에 집어넣느냐’고들 했지만 전자신문을 정말 잘 키우고 싶어 투자하기로 결정하셨다더군요. 노동조합도 구 사장님의 회사에 대한 애정을 감안해 조금 유연하게 화답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2014년 2월 6일 전자신문 노사 임금 협상을 조정하는 회의에서 중앙노동위원회 한 위원이 김유경 당시 전국언론노동조합 전자신문 지부장과 이은용에게 그리 말했다. 노동조합을 향한 ‘유연한 대응’ 권유에는 150억 원과 맞바꾼 구원모 사장의 전자신문 사랑을 믿고 “회사가 제안한 호봉제의 연봉제 전환도 노사 상생 차원에서 고민하고 논의해 보시라”는 것까지 포괄됐다.
이은용은 “사실과 다르다”고 대답했다. 경영권을 잡는 데 필요한 지분을 가지려고 “150억 원을 썼으되 그 돈을 혼자 태운 게 아니라 4분의 1쯤만 댄 것”이라고 바로잡았다. 사실은 액수가 150억 원을 밑돌았고, 구원모 사장이 댄 4분의 1쯤도 은행에서 꾼 거였다고 덧붙였다. 나머지 4분의 3을 댄 주주는 따로 있고, 전자신문 경영권을 가지려는 구원모 사장의 뜻을 좇아 돈을 같은 비율로 보탰을 뿐이라고도 밝혀 말했다. 함께 돈을 들인 주주가 셋이나 더 있었던 걸 밝히지 않은 채 그냥 “150억 원을 투자했다”고만 말하니 ‘구 사장의 회사 사랑 깊이에 대한 중앙노동위 위원들의 오해’를 부른 것 아니겠는가.
이은용은 ‘150억 원’을 앞세워 애정으로 꾸민 ‘연봉제 제안’이 전자신문 노동자에게 매우 해로울 것 같다고 말했다. “구원모 사장이 전자신문에 합류하기 전에 계열사인 전자신문인터넷을 경영했는데, 그곳 모든 노동자가 연봉제 사원이었음에도 구 사장은 성실히 연봉 협상을 벌이지 않아 스스로 불신을 키웠다”고 알렸다. 전자신문에서도 수년째 일부 연봉제 노동자들과 협상 없이 마음대로 임금을 동결했던 터라 “믿지 못할 제안”이라고 덧붙였다. 연봉 협상은 말할 것도 없고 아예 근로계약서를 체결하지 않은 채 노동자를 부리다가 내쫓은 일도 있으니 구원모 사장의 ‘연봉제 전환 제안’을 믿고 따를 만한 상태가 아니었던 거.
구원모 사장은 올해 단체 교섭에서도 연봉제를 내밀었다. 노동 조건 밑바탕을 송두리째 흔드는 걸(연봉제) 탁자에 툭 던지고는 받아들이라 하다니 이건 억지 아닌가. 노동조합이 연봉제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기자를 새로 뽑거나 임금을 올릴 생각이 없다고 했단다. 이런 강다짐은 대체 어디서 비롯됐을까. 음. 지나치다, 지나쳐.
둘. “내가 전자신문 기자 공채 4기 선배.”
맞다. 구원모 사장은 1987년 상반기 전자신문 공개 채용에서 4기 기자로 뽑혔다. 1995년 11기 기자로 입사한 이은용보다 8년쯤 앞섰다. 그래, 그리 앞섰으니 선배였던 게 틀림없다. 중앙노동위원회 조정 위원들에게까지 자신이 ‘공채 출신’이라고 강조했을 정도니 구 사장의 전자신문 사랑은 얼마간 인정해야 할 터.
헌데 ‘선배다웠는지’에 대해선 갸우뚱. 구원모 사장의 “공채 4기 선배”라는 말씀에 깃든 이은용과 전자신문 후배들의 느낌은 그 말 그대로 가슴에 와 닿지 않는 듯하다.
누군가에게 “내가 기자 공채 4기”라고 툭 던지면 그 누군가는 구원모 사장이 ‘1987년부터 죽, 지금(2015년)까지 쭉 전자신문에서 땀 흘린 것’으로 알아들을 수 있지 않은가. 하지만 죽이나 쭉은 아니었다. 구 사장은 입사 13년 만인 2000년 1월 전자신문을 떠나 디지털타임스로 갔다. 9년쯤 뒤인 2009년 3월 전자신문에 전략기획실장(상무)으로 돌아와 지금까지 6년간 일했다. 근속하진 않았으되 19년쯤 전자신문에서 일한 거. 공백 9년은 크다. 스스로 전자신문을 등졌을 때와 공백 9년을 덮어 둔 채 “나는 기자 공채 4기 선배”라고 말하며 후배들이 자기를 좇을 걸 바란다? 음. 듣는 후배는 좀 거북할 수 있다. 구원모 사장이 전자신문 계열 전자신문인터넷에서 일한 6년(2003년 3월 ~ 2009년 3월)을 공백 9년에서 빼더라도 듣는 후배 느낌엔 그다지…다.
맞다. ‘기자 공채 4기 선배’라는 말. 거짓말 아니나 듣는 이에 따라 조금 찌뿌드드할 성싶다.
셋. “아직 기자인 줄 아나 보죠.”
2013년 12월부터 노사 단체 교섭 위원이자 2014년 노사협의회 근로자 위원으로 참석한 이은용에게 제법 시달렸던 탓일까. 구원모 사장은 탁자 건너편 이은용을 향해 “아직 기자인 줄 아나 보죠”라고 우물거렸다. 노동자 쪽 교섭 위원으로 나온 이은용에게 차마 반말을 하지 못한 채 시원스럽지도 않게 소심히 비꼬았던 거. 이은용은 구 사장의 그 말에 “16년(1995년 ~ 2011년) 이상 기자로 살았으니까 — 나를 기자로 알지 — 요”라고 대답해 줬다.
이은용은 굳이 “전자신문에 기자로 입사해 오랫동안 기자로 살았고 회사 밖 사람들도 지금까지 그리 여긴다”거나 “나는 여전히 한국기자협회 회원”이라거나 “내 뜻을 묻지도 않은 채 붓(기자직)을 빼앗더니 ‘아직 기자인 줄 아느냐’고 비꼬아 상처 줄 날을 노린 거였느냐”고 맞서진 않았다. 그 정도 빈정거린 걸 두고 화내면 노사 간 많은 대화를 온전히 품을 수 없을 테니까. 전자신문 노사가 함께 웃을 길을 제대로 트고 싶었기에 어금니 한 번 사리물고 말았다.
그렇다고 버릇 되면 곤란할 터. 사람을 대할 땐, 특히 단체 교섭이나 노사 협의를 할 때엔 사람 높낮이를 견주거나 누군가를 비비 틀어 꼬아선 안 되리라. 그게 아마 도리(道理), 바른길일 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