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사명(使命)
<현업 언론인 시국 선언문>언론의 사명을 다시 가슴에 새기겠습니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한 달이 넘게 지났습니다. 대한민국은 깊은 슬픔에 잠겼습니다. 온 국민이 바라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지난 한 달 동안 대한민국은 함께 침몰했습니다. 그리고 정확성, 공정성, 독립성을 생명으로 하는 언론의 사명 또한 침몰하고 말았습니다.
사건 당일 '전원 구조'라는 언론 역사상 최악의 대형 오보를 저질러 실종자 가족을 비롯한 전 국민을 충격과 분노에 빠뜨렸습니다. 취재를 통한 사실 확인보다는 정부의 발표를 받아쓰기에 급급한 나머지 오직 진실규명을 바라는 국민의 한결같은 바람을 저버리고 말았습니다. 슬픔에 빠진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에게 위로는커녕 망언을 내뱉는 공영방송 간부라는 사람들의 패륜적인 행태도 막아내지 못했습니다. 참혹하고 또 참혹한 심정입니다.
대한민국 언론은 죽었습니다. 세월호 참사는 이미 한참 전에 죽어버린 언론의 모습을 드러내는 하나의 계기였을 뿐입니다. 대한민국의 주인은 국민이고, 언론의 존재 이유는 대한민국의 주인인 국민에게 정확하고 공정하게 사실을 알려주기 위함이라는 지극히 당연한 상식이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언론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게 됐습니다. 공영방송의 간부가 사장을 일컬어 "대통령만 보고 가는 사람"이라고 폭로한 것처럼 '죽은 언론'의 주인은 대통령이고 '죽은 언론'은 오직 권력자를 향한 해바라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국민 여러분께 정말 죄송합니다. 막말하는 간부도, 대통령만 바라보고 가는 사장도 막아내지 못했습니다. 권력이 언론을 손에 쥐고 휘두르려 하는데도 목숨 걸고 저항하지 못했습니다. 국민의 눈과 귀와 입이 되지는 못할망정 국민의 눈과 귀와 입을 가리는 데 일조하고 말았습니다. 방송을 장악하지 않겠다는 대통령의 말도 지지부진하기만 했던 국회의 방송 공정성 논의도 이행하게 만들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다시 살려내겠습니다. 언론의 사명을 훼손하려는 모든 시도에 단호히 저항하겠습니다. 이미 사실로 드러난 권력과 언론의 유착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개선책이 마련될 때까지 우리는 가만히 있지 않고 행동할 것입니다. 그것이 세월호와 함께 속절없이 스러져간 희생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한번 희생자의 명복을 빕니다.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2014년 5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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