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지음. 해냄 펴냄. 2007년 1월 30일 제4판 1쇄.
사오륙칠팔 권을 동네 도서관에서 빌려 삼켰다. 1994년처럼. 음. 도서관. 고마운 곳이다. 9, 10권 마저 삼킨 뒤 읽을거리도 겨눠 뒀다.
한국전쟁. 몹시 분하고 억울해 한스러운 때. 특히 미국 때문에. “항구도시 인천은 갈가리 찢기고 불타면서 죽어가고 있었다.……중략……저건 민간인들마저 적으로 취급해 버리는 초토화작전이었다. 풍부한 물량을 이용해 모든 것을 불 질러 태워 가루로 만들고, 재로 만들어 버리는 작전 — 인천은 위로 불바다가, 아래로는 피바다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7권 162쪽).” 다들 진저리 쳤다. “몰르겄이유, 안직도 불 질를 공장이 남었는지유, 닥치는 대로 폭탄 퍼부서대는 저눔에 쌕쌔기만 보면 진절머리가 나느먼유(7권 73쪽)”라는 논산역 앞 국밥집 아주머니처럼.
석구 엄마가 부르르 떨며 한 말. “올라가문서 개지랄, 내레가문서 개지랄, 난리가 따로 웂어. 양코배기들이 그 개지랄 치는 것이 바로 난리제(8권 161쪽).” ‘개지랄’은 미군이 저지른 강간. “요건 또 무슨 변고여. 인민군허고 싸우겠다고 이 땅에 들왔으면 쌈이나 고이 할 일이지 어째서 그 악독한 일본놈들도 안 하던 짓을 즈덜은 하는 것인지 몰라. 이 땅 여자들이 즈덜 첩도 아니고 종도 아닌 세상에(7권 268쪽).”
김범우. “그런 강압적 월권이 어디 있소. 난 미국인이 아니라 한국인이오. 한국인!” 살집 좋은 미군 소령. “그래요? 설마 이 전쟁의 작전권이 누구한테 있는지 아직까지 모르고 있진 않겠지요? 우린 언제든지 필요한 인력을 징집하고, 필요한 물건을 징발해서 쓸 수 있는 권한이 있다 그거요(7권 249쪽).” 김범우. ‘썅놈의 영감탱이, 작전권까지 넘겨가지고……(7권 249쪽).’ 영국 병사 주리안 토스들이. “빌어먹을! 작전권을 외국군에게 넘겨주다니, 그건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있을 수 없는 넌센스고, 코메디요. 물론 맥아더가 요구했다는 말도 있고, 이 대통령이 넘겼다는 말도 있지만, 어쨌거나 요구했다고 넘겨준 사람이나, 넘겨준다고 받은 사람이나, 둘 다 똑같이 미친 사람들이오(8권 57, 58쪽).” ‘똑같이 미친 사람들’ 때문에 여태 한국군 작전권은 미군에게 있다. 코미디 맞지.
세균전마저. “김복동의 식어버린 몸을 피해 밖으로 도망 나오는 이들이 때 절고 헐어빠진 옷 위에서 깨알을 흩뿌린 것처럼 수없이 꼬물거리고 있었다(8권 325쪽).” “그 재귀열이란 전염병은 미군 비행기가 뿌린 병균으로 퍼지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건 바로 병이 발생하게 된 원인규명인 동시에 미군이 세균전을 감행하고 있다는 중대한 사실을 지적하고 있었다(8권 336쪽).”
덧붙여 여러 토막.
서울의 식량난은 심각해져 가고 있었다. 춘궁기만이 아니라 추궁기라는 것도 있는 이 땅에 계절적으로 쌀이 바닥나기 시작할 때가 되었는 데다가, 전쟁으로 인한 기존 시장의 파괴와 양쪽의 군량미 확보로 이 땅은 추궁기를 좀더 빨리 맞고 있었다(7권 22쪽).
“자네넌 홍어맛인가? 나넌 조청맛이시. 요리도 간딴허고 재까닥 되는 일얼 갖고 이승만이 시상에서는 워찌 그리 똥 싸서 지지뭉기는 꼴 혔는고잉.” “아, 몰라서 고런 소리 혀? 그 영감탕구가 노망들게 늙어빠진디다가, 그 나이에 권세 누릴 욕심으로 지주고 부자눔덜헌테 부자지럴 잽혀 옴지락달싹 못혔응께 그렇제.”……중략……“긍께로 백성 중헌 줄 알고 실인심허덜 말았어야 허는 것이여. 아그덜도 아는 그 뻔헌 이치럴 안 지킨께 그 꼬라지 됐제(7권 104쪽).” 그랬던 이승만을 두고 ‘국부(國父)’라 일컫는 가여운 자가 여태 있다.
인민군에서는 어떠한 경우에도 절대로 구타가 있을 수 없다. 위반사항은 규율에 따라 처리한다. 군관이나 하사관은 언제나 전사에게 존대를 쓴다. 전사의 군관의 명령에 절대복종하며, 군관은 어떠한 경우에도 사적인 일을 전사에게 시킬 수 없다(7권 115쪽).
가난한 사람들은 양식이 떨어지는 겨울 막바지에 이르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고구마 한 개씩으로 하루살이를 해냈다. ‘고흥놈들 고구마똥’이라는 말이 있었다. 섬이나 다름없는 고흥은 밭이 태반인데다 땅이 거칠어 생명력이 강한 고구마농사가 자연히 성행했다. 세 끼를 고구마만 먹다 보면 그 똥도 ‘고구마똥’이 될 수밖에 없었다. 곡식 없이 겨울나기를 해야 하는 고달픈 삶을 일컫는 말이었다(7권 148쪽).
“엄연히 주인이 있는 땅을 침략하고 강탈하면서 ‘발견’이니 ‘개척’이니 하는 말로 인류사를 왜곡한 자들(7권 247쪽).” 미국 권력 틀어쥔 자.
“아이고메, 징허고 징헌 눔에 시상. 일정 때넌 일정 때라고 끌어가고, 인공 때넌 인공 때라고 끌어가고, 대한민국은 대한민국이라고 끌어가고, 나라라고 생긴 것은 해주는 것 암것도 웂음시로 못 묵고 못 입고 보존해온 생목심덜 끌어다가 쥑이는 일만 헌당께로. 냄편이고 아덜이고 열썩이라도 못 당허겄다, 요런 징글징글헌 눔에 시상(7권 286쪽)!”
이학송은 그때서야 비로소 상인들이 갖는 기회주의적 속성이 무엇인지를 실감나게 깨달을 수가 있었다. 공산주의가 노동자‧농민은 믿되 왜 그들을 믿지 않는가도 구체적으로 납득할 수 있었다. 그들은 노동생산물의 이윤추구만을 일삼는 중간착취자일 뿐만 아니라, 그 목적달성을 위해 끝없이 거짓말을 하는 속에서 기회주의가 골수에 박혀버린 구제불능의 부류들이었던 것이다. 그들이 자본주의를 내세운 남쪽으로 짐을 챙겨 떠난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결과였다(7권 293쪽).
하대치의 아들 하길남. “대못칼은 소화 아주머니네에 살 때 철길 위에 대못을 놓아 기차가 서너 번 갈고 지나가게 해서 납짝하게 한 다음, 숫돌에 갈아 날을 세운 칼이었다. 철길이 가까운 회정리나 칠동리 아이들은 그 대못칼을 거의가 갖고 있었다(7권 324쪽).” 1981년 중학교 1학년이던 내게도 대못칼 하나 있었다. 전주 진북동 철길 옆에 살던 친구가 늘 만들던 대로를 따라 내 것도 함께 만들어 봤다. 장난감. 날을 세우진 않았다.
대령이 소령의 철모를 지휘봉으로 내려갈기고, 대위가 소위의 장딴지뼈를 연거푸 걷어차는 것이 예사로운 군대에서 장교가 사병들에게 행사하는 폭력은 폭력이 아니라 규율이었다. 그건 일본제국 군대의 잔재가 아니라 일본제국 군대 자체가 생존하고 있는 모습이었고, 일본 군대의 물이라고는 먹어본 일이 없으면서도 양효석은 선배장교들의 경력을 순식간에 전수한 모범이었다(7권 337쪽).
압록강변 작은 도시 만포 장터. “그렇게 찾아낸 사람이 소설가 이태준이었고, 배우 문예봉이었다. 이태준은 정지용이며 박태원이며를 떠올리게 했고, 문예봉은 최승희를 연상시켰다.……중략……그들의 과감한 선택에서 이학송은 역사의 정당성을 다시 확인하고 있었다(8권 26쪽).”
심재모. “우리 군대는 일본 군대가 아닙니다. 우리 군대는 체제는 미국식이면서 운영은 일본식으로 하고 있습니다. 체제가 미국식이고, 무기도 미국 것이면 그 운영도 미국식으로 해서 폭력행위를 없애야 합니다. 언제까지 일본식으로 폭력을 쓸 것입니까. 미국 군대는 폭력 없이도 잘만 돼나가고 있습니다.” “장병들은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하려고 군대에 왔지 구타당하려고 군대에 온 건 아닙니다. 엄연히 군법이 있는데 법대로 통솔하고 다스리면 될 것 아닙니까. 그리고, 일선에서 싸우는 군인이 인민군에서는 일체의 폭력행위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과연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그래도 이게 심각한 문제가 아니란 말씀입니까(8권 47쪽)?” 내가 군대에 있던 1989년 5월 31일부터 1991년 8월 1일까지도 그랬다. 2017년 5월 무렵에도 말끔히 바뀌진 않은 성싶다.
중공군 포로. “당은 우리를 해방시켰고, 실제로 모든 것을 우리가 원하는 대로 해결하기 때문에 믿는 것이다(8권 71쪽).”
이근술. “아니요, 몰르시는 말씸이요. 거그서 맘고상허는 것보담이야 요 몸고상이 훨썩 편허고 좋소. 거그서 하로하로 사는 것이 죄만 쌓는 것이제 워디 사람 사는 것입디여(8권 86쪽)?” ‘거그’는 일제와 한국전쟁 때 경찰서. ‘요 몸고상’은 장터거리에서 튀밥 튀기는 일.
이근술. “그 예비검속이라는 것이 경찰들이 그리 헐 짓입디여?……중략……우리 경찰찌리 잊는다고 그 일이 잊어질 성불르요? 그 피해자가 을매고, 그 가족이 을맨디 그 일이 잊어지겠소?……중략……우에서 시키는 일잉께 워쩔 수가 웂다 허겄지요들. 고것이 워디 사람으로 헐 소리요? 웃대가리덜이야 권력 잡겄다고 못된 일 억지로 시킨다 허드락도 현지에서 일허는 사람덜이 정신 채리고 허먼 그리 기가 차게 쌩사람덜 죽이지는 안 혔을 것 아니겄소?……중략……빨갱이 아닌지 뻔허게 암시로도 우에서 죽이라고 헌께 쌩사람덜 그리 무작시럽게 죽여라?……중략……그 사람덜이 참말로 공산당이라고 생각허시요? 나넌 그리 생각허덜 않소. 못헐 말로, 나라가 공산당으로 몰아치고 있소. 그 사실을 몰르는 경찰이 워디 있소. 다 암시로도 자기덜이 저질른 죄 눈가림허니라고 나라허고 항꾼에 그 사람덜 공산당 맹글고 나스는 것이제라(8권 88, 89쪽).”
안창민. “여러분들은 지금까지는 자기의 잘못을 많은 사람들 앞에 숨김없이 드러내는 일을 거의 해본 적이 없을 것입니다. 그만큼 남들도 속이고, 자기 자신도 속이는 생활을 해왔다는 증거입니다. 앞으로는 그래서는 안 됩니다(8권 103쪽).”
서로 몸을 사리는 일도 없고, 서로 다투는 일도 없고, 서로 도와가며 자기가 맡은 일을 다 해내며, 함께 목숨을 내걸고 싸우는 그들 — 그건 같은 목적을 두고 자각한 사람들만이 지어낼 수 있는 아름다운 모습이고, 신선한 감동이었다. 나만이 아닌 모든 사람들의 삶을 위해 나선 자각과 그 행동(8권 207쪽).
외서댁. “냄편이 젼디고 헌 일인디 워찌 나라고 못 젼딜랍디여. 냄편허고 항꾼에 농새 지었디끼. 고런 맴으로 헌다면야 무신 고상이라도 못 이길 것 있겄는가요.” “동무덜 잘 있으씨요. 나넌 인자 총얼 쏘는 여자 빨갱이가 된당께라(8권 222쪽).”
하대치. “그런 날이 기엉코 오기넌 와야 허는디……(8권 319쪽).” 그날. 모두가 “별들처럼 또록또록 빛을 내면서 살게 되(8권 318쪽)”는 날.
하대치. “부대 안에 여자들은 많았지만 그들은 ‘여자’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부하’고 ‘전사’일 따름이었다(8권 321쪽).”
그들은 미국사람이고, 작전권이 그들에게 있으니까. 국군 장성들이 미군 중령이나 대령인 고문관들한테 쩔쩔매는 것도 마찬가지였다(8권 354쪽).
쓰레기 최서학. “겨울이면 으레 머슴이 학교까지 업고 다녔고, 공부는 줄곧 1등만 해온 그로서는 인간은 평등하며, 평등해야 한다는 논리가 도대체 허무맹랑하고 가당찮았던 것이다. 그가 확실하게 알고 있는 바로는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그 종류가 다르고, 그러므로 능력도 달라 절대로 평등할 수 없게 되어 있다는 점이었다(7권 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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