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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표 고전 소설전

eunyongyi 2017. 4. 24. 23:31

김혜숙 지도. 안치경 엮음. 번양사 펴냄. 1993년 2월.

 

한 달 전 어머니 아버지 계신 곳에서 <태백산맥> 1권 뽑아 올 때 함께 가져왔다. 이걸 언제 왜 샀는지 도무지 모를 일. 내가 사긴 산 것일까. 누군가 책 안에 밑줄을 많이 그어 뒀던데 그게 나였는지… 내가 그은 듯 아닌 듯. 장서인(藏書印) 같은 건 있지도 않았을 때였는데 1993년 무렵 버릇인 ‘책 산 날짜 써넣기’도 없고. 내가 산 듯 아닌 듯.

옛 소설 스물둘. 얼쑤, 뚝딱. 주섬주섬 한 편씩 삼키다 보니 내 모르던 것 — 좋은 느낌 ― 여기저기 자잘하게 박혔네.

<춘향전>에 “전라도로 이르면 태인의 평양정, 무주의 한풍루, 전주의 한벽루(152쪽)”가 좋다 하니 내 어릴 적 ‘한풍루’에서 웃고 뛰어놀 때 생각나 입가에 웃음. 이몽룡이 서리(胥吏) 불러 “너는 좌도(左道)로 들어 진산, 금산, 무주, 용담, 진안, 장수, 운봉, 구례로 이 팔 읍을 둘러 아무 날 남원으로 대령(174쪽)”하라니 ‘무주’에 눈길. <흥부전>엔 “충청‧전라‧경상의 삼도가 만나는 어름에 사는 연생원(232쪽)”이 둔 아들 형제가 흥부와 놀부라니 이 또한 ‘무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 그곳에 신라‧백제 사람들 오가던 굴 문 — 나제통문(羅濟通門) ― 있고, 그 굴 너머 무주군 ‘무풍’엔 경상도 사투리 쓰며, 그 굴 이쪽엔 충청도 말인지 전라도 사투리인지 몰라 ‘이게 대체 어느 동네 말일까’ 싶기도 했으니까.

거북하기로는 <사씨남정기> 속 “사씨 부인이 임씨 대하기를 동기처럼 아끼고 임씨 또한 사씨 부인을 형님같이 극진히 섬겼으며, 보통 처첩 간의 투기 같은 감정은 추호도 없었다(468쪽)”는 따위. <흥부전>에도 제비가 가져다준 마지막 박 속에서 “꽃 같은 한 미인이 나와 흥부에게 나붓이 큰 절(241쪽)”을 하더니 ‘강남국 제비왕’이 그 미인더러 흥부의 첩이 되라 했다며 “흥부는 좋은 집에서 처첩을 거느리고 향락으로 세월을 보내게 되었다(242쪽)”는 거. “살려 주오! 제발 덕분에 살려 주오. 돈 바치라면 돈 바치고 쌀 바치라면 쌀 바치고 계집 바치라면 바칠 것이니 남은 목숨 살려 주오(246쪽)!”라며 제 놈 살자고 같이 사는 사람 바치겠다는 놀부까지. 음. 옛 소설이고 ‘그땐 그랬다’ 하겠지만, 그때 그런 것 때문에 수백 년 괴로운 한반도 여성. 그쯤 읽을 땐 종이 삭은 냄새마저 싫어지더이다. 씁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