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월드 피난

2012.03.30. 08:53 ㅡ 쿠웅. '구럼비' 터지는 소리. 쿵. '세계 7대 자연경관' 내려앉는 소리. 쿠웅 쿵. 제주가 깨지고 가라앉는다.

eunyongyi 2020. 6. 27. 17:15

제주의 다음

 

쿠웅. 제주 강정 ‘구럼비’ 터지는 소리. 화약내. 노리쇠가 탄피를 가늠자 오른편으로 퉁겨 낸 뒤 약실에서 피어오른 냄새. 고폭탄이 포구를 떠난 뒤 사방을 무겁게 내리누른 바로 그 냄새. 회피할 수 없는 죽음의 냄새다.
쿵. ‘세계 7대 자연경관’ 내려앉는 소리. 위산내. 명치끝이 타는 듯 따갑다가 울컥 목구멍을 역류한 냄새. 기침을 일으킬 정도로 묵은 데다 때론 알코올까지 섞인 바로 그 냄새. 어찌할 수 없는 통증의 냄새다.
쿠웅 쿵. 제주가 또 깨지고 가라앉는다. 고려 삼별초 항쟁이 끝난 1273년부터 무려 100년 동안 몽골 직할을 견딘 곳. ‘4·3 피눈물’ 흘린 그곳이 다시 아프다. 한국에서 오직 하나밖에 없는 특별 자치 지역이나 스스로 다스릴 환경을 제대로 꾸리기나 한 건지 의문시되는 바로 그곳이다.
엎치고 덮친 고통에 시름시름 앓는 제주에도 곧 사월이 온다. 제철 맞은 꽃이 제주를 조금이나마 위로할 수 있을까. 섣불리 “위로가 될 것”이라 말할 수 없되 주시할 ‘뜻있는 출발’이 사월에 시작된다. 다음커뮤니케이션이다. 제주에 새 터전을 마련했다. 제주의 특별한 자치, 새로운 미래를 향한 작은 지표이자 동력이다.
생색내듯 제주에 건물 한두 개 짓고 마는 게 아니다. 2003년 3월부터 8년간 차분히 준비했다. 회사 중심(본사)을 옮긴다. 제주에서 일할 사람만 650명쯤 된다. 이재웅 다음 창업주가 제주를 “미래 가치가 잘 보전된 곳”으로 여겼듯 미래를 캐러 그곳에 간다.
호들갑을 떨지 않았다. 낮게 엎드린 채 제주에 들어갔다. 이런 자세가 한라산을 베고 누운 ‘선문대 할망’ 지평선에 건물 윤곽을 맞추는 노력으로 이어진 듯하다. 다음글로벌미디어센터를 건축한 이도 “(다음이 새 터를 다진 제주) 중산간 지역을 장바닥처럼 만들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사람을 낮추면서 (자연을 유지하고 복원하는 개발을) 세련되게 할 수 있음”을 내보이려 했다. 엊그제 다음이 일본 사회단체에 매각될 위기에 처한 ‘제주평화박물관’을 살리려 모금 운동을 시작한 것도 제주에 동화하려는 노력으로 나는 읽는다.
지역 속으로 깊이 배어드는 사람과 기업이 아쉬운 때다. 국가 경제·교육·문화 자원이 수도권에 밀집하는 현상을 언제까지 감내할 수 있겠는가. 큰 변화가 필요하고, 제주로 간 다음처럼 뜻있는 시도가 귀중하고 요긴하다. 겉모양만 번드르르한 건물 몇 개 짓고는 ‘국가균형발전을 다 이룬 양’ 어깨를 추어올려선 곤란하다. 가뜩이나 지방자치단체 재정이 위태로운 터다. 지역균형발전 지원 혜택이나 부동산 투기를 노린 꼼수를 쓰지 말라는 얘기다.
‘제주의 다음’은 성공적이어야 한다. 기업·기관 이전뿐만 아니라 지능형 전력 생산·관리, 과학기술단지, 자연과 어울리는 삶처럼 크고 넓은 도전이 펼쳐지는 곳이어서다. 제주의 다음이 곧 한국의 미래다. 소탐대실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