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먼지떨이] 도난당한 열정: 그들은 정말 산업스파이였을까
윤건일 지음. 시대의창 펴냄.
2009년이었… 아니, 언제였는지 잘 모르겠다. 2009년인지, 2010년인지조차 가물거린다. 단순한 웃음거리였기에 피식 웃고는 그냥 지나 버렸기 때문이리라.
집을 바라고 광화문역 5번 출구 자동계단(에스컬레이터)으로 내려가는 길이었다. 그다지 거나하지도 않았다.
“국정원이다아.”
왼쪽 귀에 바싹, 속삭이듯, 그러나 또렷하게 들린 한마디. ‘국가정보원인 내가 너를 지켜보고 있으니 조심해 임마’ 하는 느낌을 담은 속삭임이었다. 누구인지 모를 그는 그렇게 나의 귀를 핥듯 스쳐 지나갔다. 허, 그저 광인(狂人)으로 여겼다. 미치지 않고서야 어찌 생면부지인 나의 귀에 그런 말을 흘리겠는가.
객쩍되 그 순간이 기억에 매우 생생하다. 싱거운 이야기는 싱거운 대로 두자. 나는 다만 ‘국정원’이라는 단어를 끌어내고 싶었다. 이 책 곳곳에 국정원이 도사렸기에 기억을 되짚었다. 2004년 11월, 내가 ‘산업기술 유출 방지 및 보호지원에 관한 법률’에 관심을 가졌던 것도 이 책에 이끌린 이유 가운데 하나였다.
‘이미 다른 회사들도 제품을 만들어 경쟁하고 있었(19쪽)’는데 기술을 몰래 빼돌릴 가치가 있었을까. ‘이직이나 퇴사를 막는 악의적 수단으로 활용(33쪽)’했을 개연성이 크다. “기술유출 피해가 막대하다고 얘기하기 전에 실상이 무엇인지 밝혀져야 한다(85쪽)”는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의 장유식 변호사 같은 이의 지적에 더 귀 기울였어야 했다.
지은이는 1999년부터 2009년까지 11년 동안 이른바 ‘기술유출사건’의 연평균 기소율이 23%(98쪽)에 불과했음을 추적했다. 높이 칭찬할 일이다. 불기소율이 77%나 된다는 얘기이니 국정원과 검찰을 포함한 수사기관의 낯이… 거참, 없겠다.
지은이는 또 ‘기술에 대한 지식 부족과 성급한 범죄 사실 공표, 실적 우선주의식 수사 등으로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124쪽)’고 썼다. 성급한 범죄 사실 공표라니, 실적 우선주의식 수사라니…. 수사기관은 반성하고 있는 건가. 진심으로 사과한 적 있는가. 기술유출 혐의를 뒤집어썼다가 불기소 처분된 이 대부분의 삶에 큰 상처가 났다. 수사기관이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빌 일이다.
포스코가 신일본제철 보유 기술과 관련한 ‘서류를 어떻게 해서 가지고 있었는지 전혀 모른다(162쪽)’고 대답한 것은 거의 희극이다. 씁쓸한! 2008년 3월, 옛 산업자원부 차관을 지낸 뒤 하이닉스반도체 이사회 의장을 맡았던 김종갑씨가 “기업인을 만나도 겉핥기식 이해에 그쳐 기술도 모르면서 기술유츌방지법을 만드는 우를 범(182쪽)”했다고 고백한 것 역시 씁쓸하기 짝이 없다.
지은이는 “(수사기관이 기술유출사건 관련) 예상피해액을 밝히는 것이 때로는 자기 과시적 행태에서 비롯된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194쪽)”고 보았다. 특히 기술유출사건에는 “국가정보원이라는 막강한 조직이 든든한 ‘조력자’로 있다(195쪽)”는 점에 주목했고, “검증 없이 진술에 기대는 수사는 무리한 기소로 이어진다(211쪽)”고 꿰뚫었다.
좋은 책이다. 기자(지은이)로서 무엇을 저술해야 할지를 잘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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