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월드 피난

2011.03.11. 13:21 ㅡ 편지

eunyongyi 2020. 6. 28. 22:07

친구에게

 

“색깔이 보여.”
친구, 네가 그렇게 말했지. 내 책꽂이에 꽂힌 책들을 보면서……. 그때 책꽂이에 어떤 책이 얼마나 어떻게 꽂혀있었는지는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건 너도 마찬가지일 테고. 며칠 전 답답한 마음에 책꽂이 앞에 서보기도 했는데, ‘색깔’ 같은 건 잘 안 보이더라. 그저 과학책 몇 권, 방송통신 관련 책 등속만 보였어.
친구, 그때 내 책꽂이에 서린 색깔이 뭐였니. 오랜만에 네게 글 띄우면서 안부 인사도 없이 대뜸 ‘색깔’부터 다그치는 것은 내가 요즘 그걸 화두로 끌어안았기 때문이야. 불현듯 내 삶에 색깔 같은 게 있었는지 매우 궁금했다.
그동안 그런 걸 잊고 자시고 할 게 없이 살았는데, 최근 어느 형이 나에게 “너는 색깔이 너무 강해”라더군. 갑작스레 귓전을 울린 ‘색깔’이라는 단어를 휘감은 물음표 하나가 가슴 안에서 싹을 틔우더니 날로 조금씩 자란 게지.
이거 “색깔~, 색깔” 하니까 무슨 ‘정치권 색깔 공방’이라도 일컫는 것으로 오해를 받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리 거창한 것은 아니고… 다만, ‘색깔’이라는 단어가 자신을 돌아볼 실마리가 된 거야.
내 색깔은 과연 무엇일까. 색깔이 있기나 한 걸까. 되레 ‘회색분자’나 ‘기회주의자’로 욕을 먹지나 않을까 하는… 뭐 그런 고민이지. 책꽂이 앞에 서듯 거울 앞에 서본 이유였다.
“어느 날 보니, 선배가 승냥이처럼 혼자 싸우고 있었어요.”
2009년 가을 밤이었다. 한 후배가 나에게 그렇게 말했지. ‘승냥이처럼’이라고. 요즘 가을이 매우 짧게 왔다 가고는 하기에 추웠는지, 더웠는지 애매하기는 했는데…, 10월 중순께였던 게 분명해. 내가 형태근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과 ‘인터넷 게시물 임시조치’를 두고 격돌해 뜨거운(?) 늦여름을 보낸 뒤 숨 좀 돌리던 무렵이었으니까…, 아마 시월 이십 며칠 언저리였을 거다. 그 후배는 내게 ‘승냥이처럼 혼자 싸우는 건 잘못하는 일’이라고 충고했어. 혼자 싸우다 매를 모두 떠안을 거라나. 나를 걱정해준 거지. 참 고맙긴 하더라만, 글쎄 뭐랄까……. 가슴이 답답했다.
내가 도대체 뭘 어쨌기에 ‘싸우는 승냥이’처럼 보였는지 정말 궁금해졌어. 그 후배가 그날 명확하게 말해주지 않았거든. 그 무렵에 비슷하게는 한 선배로부터 “너 지금, 무슨, 투쟁이라도 하는 거냐”는 말도 들었을 정도였어.
곰곰이 되새겨보니 그때 나는 ‘정론(正論)’과 ‘직필(直筆)’을 고민했다. 광고주(기업) 외압에 쉽게 흔들리고, 정론보다 수익에 관심을 더 기울이는 언론의 행태가 안타까웠거든. 특히 시민으로부터 시작하거나 시민을 향하는 말길(言路)을 트거나 막을 수 있는 규제기관인 방송통신위원회의 눈치를 보거나 아예 권력에 빌붙어 벼슬이라도 한 자리 하려는 언론인도 눈에 띄었고!
꼿꼿이 서지 못한 그 붓 여러 개 때문에 스스로 많이 창피했다. 몇몇 선배에게 직필을 종용했으되, 그리 못하게 끝까지 막아내지 못해 더 낯 뜨거웠지. 제대로 견제하지 못한 나머지 “언론의 기본자세(비판정신)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것 같다”는 비판까지 들어야 했으니까.
그래서 거울 앞에 온전히 몸을 드러내고 서봤다. ‘색깔’과 ‘승냥이’와 ‘투쟁’을 끌어안은 채! 속까지 훤히 들여다보고 싶었지. 그렇게 세 화두를 끌어안고는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고는 했다. 내가 무엇 때문에 누구를 향해 어떤 말을 하는지 궁금했기에 말하는 나로부터 두세 걸음 뒤로 물러나와 상황을 엿보려 노력했어. 물론 어려웠지. 상황을 객관화하기가 쉽지 않았으니까. 그래도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윤곽이 잡히기 시작했다. 내가 ‘정론’을 말하고, 때로는 ‘직필하자’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가 점점 또렷해졌지.
내가 ‘기록하는 자(記者)’이기 때문이더군. 읽는 이, 즉 시민을 위해 제대로 기록하려 노력해야 하는 사람이기에!
지금 ‘내가 매우 잘 기록한다’고 자랑하려는 건 아니야. ‘제대로 기록하려 노력해야 하는 자’임을 곰곰이 되새기려는 것. 그동안 제대로 기록하지 못한 것을 자책하는 것. 그래서 늘 부끄러운 것. 앞으로 남길 기록에 부끄럽지 않으려는 것!
조지 오웰은 ‘나는 왜 쓰는가’라는 수필에서 ‘사람들이 이기심, 미학적 열정, 역사적 충동, 정치적 목적 때문에 글을 쓴다’고 풀어냈지. 내가 글을 쓰는 이유도 이 네 가지로부터 크게 벗어나지 않더군. ‘내가 많이 알고 있다’는 걸 드러내고픈 이기심과 읽는 이를 멋지게 유혹하고픈 미학적 열정 같은 것 말이야. 또 ‘모든 글쓰기가 정치적 목적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조지 오웰의 해석에도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나는 글 쓰는 이유 넷 가운데 일부러 ‘역사적 충동’을 뒤로 미루어놓아 보았어. 역사적 충동. ‘사물․사건을 있는 그대로 보고 진실한 사실을 발견하며 후대를 위해 이것들을 모아두려는 욕망’에 따른 글쓰기! 후일에 남길 목적으로 어떤 사실을 적는 것, 즉 ‘기록’ 말이야. 내가 기자(記者)로 사는 것. 바로 그거였어.
그동안 제대로 기록하고자 때로는 목소리를 높였고, 때로는 선배에게 무례했던 것 같아. 몇몇 선배께 “죄송했다”는 편지를 따로 드려야 할까봐. 그렇다고 해서 ‘그 많았던 논쟁의 알맹이, 즉 제대로 기록하려는 노력’까지 희석할 생각은 없다. 여러 선배도 나의 이런 마음을 이해해주리라 믿고 싶다.
이제 내 머릿속에서 ‘색깔’과 ‘승냥이’와 ‘투쟁’은 흐릿해졌다. ‘제대로 기록하려 노력하기’로 수렴된 거지. “제대로 기록하려 노력하겠다”고 말을 길게 늘이는 것은 사실 ‘은근히 숨을 곳을 남겨두려는 마음 때문’이야.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운 게 너무 많아서이지.
나, 앞으로 은근히 숨을 곳을 마련하려는 못된 마음을 극복하려 노력할 생각이다. 응원해주라. 머뭇거릴 때에는 혹독하게 욕도 좀 해주고.
기자로 살면서 알고 보이는 것만큼 기록하되 ‘얼마나 깊게 쓸 수 있느냐’는 전혀 다른 문제였지. 알고 보이는 그대로 쓰지 못했던… 그런 ‘흐릿함’ 말이야. 흐릿했으되 어금니 사려 물고 밀실에 기어들어 이것저것 냄새나는 거래를 하려들지는 않았던 게 그나마 작은 위안이다. 하지만 시민의 ‘알 권리’를 모두 채우지 못한 채 자기검열을 선택하거나 회유와 압박에 비굴했던 게 부끄러웠어. 결국 자판을 두드리는 손가락 끝까지 열정이…, 피가 닿게 할 수 있느냐 하는 게…, 늘 가슴 속 짐이 됐지. 앞으로 열 손가락 끝 모두에 열정이 돌게 더욱 노력할 테니 지켜봐주라.


2010년 11월 어느 날 영등포에서 은용.


※추신: “너를 보면 정말 물가에 어린아이 내놓은 심정”이라는 어느 선배의 걱정과 “선배를 보면 물가에 내놓은 아(어린이) 같아서 늘 불안하다”는 어느 후배의 우스개가 겹치기도 했지. 나, 키득대며 기쁘게 웃었다. 그 마음이 너무 고마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