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월드 피난

2011.04.01. 19:37 ㅡ 통신요금에 "웬 문화비?"

eunyongyi 2020. 6. 28. 21:59

[내 노오란 취재수첩] 통신비 소고 ① 문화비?

 

자꾸 헛웃음을 쳤습니다. 어처구니없어서요. 처음엔 담담히 지나칠 생각이었는데, 답답하고 짜증이 솟쳐 자판에 손 올려놓게 됐죠. 손가락 놀리다 보니 ‘지나가던 소가 웃을 일’로도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건 너무 심하겠다’ 싶어 그저 ‘소고’로 정리해보기로 했죠. 특히 취재, 즉 작품이나 기사에 필요한 재료와 제재를 조사해 얻는 것. ‘통신비’에 관해 적어도 그 정도는 수첩에 정리해야, 잘 두었다가 쓸 만할 때 쓸 게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매사가 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리하여 먼저 “난데없이 웬 문화비?”
올(2011년) 2월 28일이었죠. 최시중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과 이석채 KT 회장, 이상철 LG유플러스 부회장, 하성민 SK텔레컴 사장이 한데 모인 자리에서 “통신요금에 문화비 개념을 넣어 통계 기준을 다시 짜야 한다”는 얘기가 나왔습니다. 통신비에 대한 기본 인식을 바꾸자는 주장이었죠. 휴대폰, 아니 요즘은 여러 ‘똑똑한’ 기능이 추가됐다며 ‘스마트폰’이라고 부르죠. 여하튼 똑똑해진 휴대폰으로 그냥 목소리 통화만 하는 게 아니라 인터넷에 접속해 음악·영화·공연 정보를 얻고, 은행 일까지 하니 “이제 통신요금에 문화비 개념을 포함해 이해해야 한다”는 얘기였습니다.
몇몇 언론, 아니 제법 많은 미디어가 ‘그럴 수도 있겠다’고 여겼는지, 이를 옳게 여기는 듯한 기사를 쏟아 냈죠. 이런 흐름에 자신감을 얻은 건지 최시중 위원장은 ‘통신요금에 문화비 더하기’에 연거푸 힘을 실었습니다. 3월 8일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에 나가 “스마트폰 활성화 이후 통신비(요금)에는 문화, 교통, 금융 등 다양한 비용이 포함된다. 통계청과 협의해 가계 통신비 항목을 ‘복합문화비용’ 등으로 개념을 (새롭게) 정립하겠다”고 말했어요. 국회에 방송통신위원회가 올해 할 일을 보고하는 자리였습니다. 따라서 ‘아, 방송통신위원회가 통신요금에 복합문화비를 더해 새로운 기준을 세울 모양’이라고 알아듣게 된 거죠.
최시중 위원장은 4월 13일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또 ‘통신요금에 문화비 더하기’를 언급했습니다. 단어가 ‘복합문화비용’에서 ‘문화콘텐츠’로 조금 달라지기는 했지만 “새로운 기기와 용도가 나오면서 문화콘텐츠 개념의 비용을 통신비에 포함하면 (가계 통신비) 20% 인하는 불가능하다”고 말했어요.
이 발언은 ‘가계 통신비 인하 공약’을 둘러싼 저간의 논쟁이 부른 변화 때문으로 풀이됩니다만, 지금은 일단 ‘문화비 더하기’에 집중해야겠습니다. 음… 이쯤에서 ‘통신비’와 ‘통신요금’을 풀어 정리해둘 필요도 있겠네요. ‘통신비’는 통신에 드는 비용을 말합니다. ‘통신요금’은 통신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자로부터 관련 상품을 쓴 대가로 치르는 돈이죠. 집 전화, 이동전화, 인터넷 등 여러 상품을 쓴 뒤 치르는 ‘통신요금’을 모두 합한 게 ‘통신비’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래서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2007년 대통령 선거에서 내건 ‘가계 통신비 20% 인하’ 공약은 여러 통신요금을 모두 내리겠다는 뜻으로 이해됐습니다.
혹시 언뜻 ‘통신요금에 문화비를 더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셨습니까. 최시중 위원장이 말한 것처럼 이런저런 일들을 스마트폰으로 해결할 수 있으니 ‘복합적인 문화비용’을 줄인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으니까요.
제 마음이 자꾸 급해지는데요. 저, 저, 저는 그렇게 생각되지 않았습니다. 한국 내 통신시장의 속내를 ‘꿰뚫어’ 보며 ‘제대로 알고’ 요금을 규제하는 분들(공무원)이 그러면 안되죠. 그건 배, 배, 배반…! 배, 배신! 배신 같은 거예요. 고개가 갸우뚱하다 못해 기어이 피식 웃고 말았습니다.
음…, 숨 좀 돌리… 제가 생각해본 것 말씀드릴게요.
버스. 고속버스가 있고, 우등고속버스도 있습니다. 우등고속버스가 비싸죠. 우리가 돈을 더 내며 우등고속버스를 선택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널찍한 의자가 주는 편안함 때문입니다. 고속버스회사가 요금을 더 부과하는 기준도 널찍한 의자, 이동하는 거리, 기름값 등속일 겁니다. ‘얼마나 멀리 이동하느냐’가 요금 부과의 바탕이되 ‘상대적으로 안락한 정도’에 따라 가격에 차이가 납니다. 여기서 짚어둘 게 있습니다. 혹시 고속버스의 ‘안락한 정도’를 문화비로 이해하시나요. 제 생각엔 문화비라기보다 그냥 ‘조금 더 편안한 이동’에 불과합니다. ‘안락함’을 문화비로 여기시는 분도 계실 겁니다. 헷갈리죠. 적어도 기준이 모호해지기 시작한 것 같아요.
조금 더 양보해서 ‘문화비 더하기’ 쪽으로 접근해보겠습니다. 버스를 운전해주시는 분이 라디오를 켰습니다. 고속버스 라디오에서 들리는 음악과 우등고속버스의 것이 서로 다른가요. 같은 주파수(방송전파)를 선택한다면 같은 음악과 뉴스 등이 들리겠죠. 뭐 다른 주파수를 선택하더라도 ‘라디오 방송’이라는 큰 틀 안에 있습니다. 아! 고속버스보다 우등고속버스의 라디오 성능이 더 좋을 수도 있겠네요. 그럼 그게 ‘교통요금에 더할 문화비’인가요. 글쎄…, 저는 ‘그건 그냥 교통비’로 여겨집니다. “아니, 그게 아니라, 그건 교통요금에 문화비를 더한 것 같은데…”라고 말씀하실 분도 계시겠죠. 그래서 저와 달리 생각하시는 분들이 고속버스요금을 두고 문화비를 더하니 마니 다투게 될까요. 그냥 피식 웃고 말 가능성이 큽니다. 버스회사들이 애초에 ‘교통비에 문화비를 더한 요금’을 정하지 않은 데다 정부 기관도 그런 규제 기준을 세운 적이 없어서죠.
통신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고속버스(3세대 일반 휴대폰)와 우등고속버스(스마트폰) 요금 부과의 바탕이 ‘공간 이동’이듯, 통신은 음성·데이터 신호를 ‘전달하는 정도’가 기본이죠. 음성 전화, 문자 메시지, 인터넷 접속 등 ‘통(신)하는 길’을 이용한 양에 따라 요금을 물리는 겁니다. 인터넷에서 얻은 영화·공연 정보나 음악 같은 문화비? 그건 그냥 ‘부가서비스’ 이용료죠. 소비자가 이용한 양에 따라 요금이 서로 달라지는데요. 이것을 두고 ‘통신요금에 더할 문화비’라고 여길 요량이라면 영화제작자·배우·공연장·음악가·은행 등과 수익을 나눌 기준부터 세워야할 겁니다. 말이 쉽지, 사람(저작권자)·기관·기업 등 어디까지 얼마씩 쪼개야 할까요. 저작권자와 기관·기업 등이 그 돈을 받을 생각이나 할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계산하자치면 아까 버스에서 들리던 라디오 방송 청취료를 교통요금으로부터, 그것도 고속버스와 우등고속버스 간 편차를 고려해 문화비를 곁들이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겠네요. 한국에 라디오 방송사업자가 몇이나 되죠? 어디 라디오뿐인가요. 버스에서 TV방송도 보고 영화도 보던데, 어휴… 그 요금 부과의 어지러움을 도대체 어떻게 정리해야 할까요.
애초에 없던 얘기를 ‘굳이 요즈음에 하는’ 진짜 이유가 뭔지 궁금합니다. 그래서! “통신요금에 문화비를 더하자”는 얘기는 그저 ‘초점을 흐리려는 말장난’인 것 같습니다.
덧붙여 하나. 앞으로 더 생각해보겠습니다. 제 생각이 틀렸으면 틀린 대로, 옳았으면 옳은 대로 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