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에노 지즈코 지음. 이선이 옮김. 현실문화 펴냄. 2014년 7월 21일 1쇄.
일본에도 제대로 생각하려 애쓰는 이가 있다. 일본군 성노예로 끌려갔던 분들 괴로움과 아픔과 뜻 짓밟은 박정희나 박근혜보다 훨씬 나은 사람일 터. 음. 옛 대법원장 양승태와 사법부가 정말 일본군 성노예 손해배상 관련 판결을 두고 박근혜와 함께 ‘기각’이나 ‘각하’ 따위를 꾀했다면 두고두고 무거운 짐 져야 한다. 당신, 양심 있는 법관인가.
책 속 여러 토막.
단지 사실이라는 점에서 ‘위안부’의 존재는 누구나 알고 있었으며, 감춰지는 일조차 없었다. 변한 것은 사실을 받아들이는 방식이다. 어느 누구도 범죄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위안부’ 제도가 성범죄로 재구성된 것이다(27쪽).
프랑스 혁명의 인권선언은 글자 그대로 남자와 시민의 권리에 지나지 않는다. 이 남자와 시민에는 여성과 노동자가 배제돼 있다. 그런 권리를 누리려면 ‘문명화’된 ‘공적 시민’의 자격이 필요했던 것이다(37쪽).
국민화 프로젝트가 처음부터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다. 메이지 5년(1872년)에 학제*가 성립된 후에도 취학률을 높이기 위해 오랫동안 노력했으며, 메이지 6년(1873년)에 징병령**이 실시되자 각지에서 농민 폭동이 일어났다(38쪽). *학제 ㅡ 초등학교까지를 의무교육으로 하는 제도. **징병령 ㅡ 신분에 관계없이 모든 남성에게 3년 동안의 현역 복무와 4년 동안의 보충역 복무를 의무화했다.
1937년에는 대일본연합부인회 여자청년단이 ‘여자 의용대’를 결성하는 운동을 시작해 여성들 사이에서 종군 지원자가 속출했다고 보도됐으나 당국은 이를 허가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44쪽).
분리형 젠더 전략 아래에서 국가가 ‘후방’에 있는 여성에게 기대한 것은 ‘출산 병사’ 역할과 ‘경제전의 전사’로서의 역할이다. 전문적인 용어로 말하자면 재생산자(생식) 및 생산자(노동) 역할, 즉 다산 장려와 근로 동원이다. 거기에 소비자로서의 역할, 즉 생활 개선(이라는 명목의 절약과 공출)을 덧붙일 수 있다(74쪽).
베트남 전쟁 후 1973년에 미국은 국민의 병역 의무를 면제해 지원병 제도로 바꿨다. 그와 동시에 여성 병사들이 증가해 여성의 전투 참가가 과제가 됐다(82쪽).
권인숙의 고발을 통해 강간을 둘러싼 패러다임의 전환 ㅡ 피해자의 ‘치욕’에서 가해자의 ‘범죄’로 ㅡ 이 준비됐다(100쪽).
가부장제 패러다임은 여성의 주체성을 부정하고, 여성에 대한 성적 인권 침해를 가부장제 아래서 남성 간에 벌어지는 재산권 싸움으로 환원한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피해자에게 침묵을 강요해 온 ‘이중 범죄’의 원인이다(102쪽).
보스니아에서의 ‘강간 캠프’가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그것이 단순히 우발적이며 통제되지 않는 전시 강간이 아니라 군에 의한 조직적인 성범죄라는 것, 나아가 강간에 의해 임신한 여성을 중절이 불가능한 시기까지 구속해 둠으로써 ‘민족 정화’를 꾀하고자 한 놀랄 만한 인종 말살적인 전략이라는 측면에서 더욱 충격적인 일이었다(117쪽).
점령군을 맞이한 일본 정부는 재빨리 ‘점령군 위안소’를 설치한 다음 패전과 점령이라는 미증유의 국난을 맞이한 국가를 위해 일본 여성에게 ‘정신 보국’을 요구했다(131쪽).
나는 피해자 측이 성희롱 사실을 입증하는 책임을 부담하는 것이 아니라 소추당한 가해자가 반증하는 책임을 지도록 논리를 다시 세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성희롱 역시 처음부터 권력 차이가 있는 당사자들 사이에서 강자가 약자에게 행하는 범죄이기 때문이다(146쪽).
전승국인 미국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자기편 미국인’에 의한 세계 지배 도구로 사용해 점령 정책을 위해 전쟁 책임자였던 천황을 면책했으며, 731부대의 생체 실험 결과를 독점하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대한 원폭 투하를 정당화했다(166쪽).
네이션(nation)의 어원은 ‘태어남’을 의미하는 ‘natio’다(167쪽). ‘patri’는 원래 ‘향토’나 ‘태어난 고향’이라는 뜻이며, 페트리어티즘은 ‘향토애’라는 의미에 불과하다. 애국심이 향토애의 동심원적인 연장선에 있다고 여기는 것은 ‘향토’를 ‘국가’에 연속시키고자 하는 욕망 ㅡ 더욱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면 ‘음모’ ㅡ 의 결과일 뿐이다(168쪽).
우리는 이미 사회주의 부인 해방론에서 노동자 계급 해방이 여성 해방에 우선한다는 논리에 충분히 착취당해 오지 않았는가(171쪽)?
그녀들은 이야기를 통해 남성 지배적인 거대 서사에 대한 대항적 역사를 내민 것이다. 그녀들의 이야기는 공공의 기억에 단순히 보완물이 되기를 거부한다(222쪽).
전후 일관되게 일본군 ‘위안부’의 존재는 알려져 있었으며 1970년대에 논픽션 책이 출판되고 1980년대에는 성폭력 피해자 운동이 일어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1991년에 피해 당사자의 충격적인 증언이 등장하기까지 일본 국내의 여성 운동이 전무하다고 할 정도로 이 문제에 착수하지 않았다는 것은 반성할 일이다(231쪽).
‘자신이 속한 정치 공동체’에 ‘참정권자’로서 속해 있을 때 국민의 한 사람으로 책임을 나눠 지는 것은 당연하며, 정부가 내 뜻에 반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을 때 그것을 바꿀 수 없는 자신의 무력감과 무념, 그런 사태가 계속되고 있다는 점에 대해 부끄러워하는 것 또한 당연하다(234쪽).
“오늘날 모든 분야에서 젠더만으로 대상을 분석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동시에 젠더 없이 분석하는 것도 불가능하게 됐다(252쪽).”
제1부 1장 미주 21. 스웨덴 정부가 단종법에 근거해 1935 ~ 1976년에 걸쳐 ‘열등 인간’ ‘다산 독신 여성’ ‘정신 이상자’ ‘집시’ 등 6만여 명에게 불임 수술을 강제한 사실이 입증됐다. 그것은 ‘국민이 더욱 건강해지면 사회보장이 필요한 사람들이 그만큼 적어진다’는 경제적 이유 때문이었다고 하지만, 복지국가가 ‘생식 관리국가’임을 분명히 보여 주고 있다(274쪽).
제1부 1장 미주 71. ‘하우스 키퍼’란 공산당 활동가와 부부로 위장해, 가사 서비스나 경우에 따라서는 성적 서비스까지 제공한 여성 협력자를 말한다. ‘당을 위해’라는 명목으로 정당화됐지만 전후에 문제가 됐다(2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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