낱말 또는 세상, 종편
종편. ‘종합편성 방송채널사용사업자’를 줄여 부르는 말. 종합편성은 보도·교양·오락을 포괄하는 방송 프로그램을 엮어 모아 채널을 짠다는 뜻이죠. SBS·KBS·MBC 같은 기존 지상파 방송사업자가 종합편성을 합니다. 2011년 12월 1일 조선일보·중앙일보·동아일보·매일경제신문이 유료 종합편성 방송을 일제히 개국한 탓에 ‘조중동매 방송’이라고 따로 일컫기도 했지만 ‘종편’이 여럿의 입에 익었습니다. 2011년 12월 1일 앞뒤로 대여섯 해 동안 ‘종편’이라는 단어가 워낙 자주 언론 매체에 등장했기 때문이기도 할 텐데, 그리 입에 익을 만큼 그들의 방송이 우리 생활 주변을 자꾸 건드리네요.
어디 생활 주변뿐이겠습니까. 종편은 ‘5·18 광주 민주 항쟁’을 무참히 짓밟았습니다. 시청률 1%에 겨우 턱걸이한 현실을 타개하려고 마구 악을 쓰는 것에 지나지 않을 터이나 광주 시민의 가슴에 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어디 광주 시민뿐이겠습니까. 초에 켠 불 같았던 1980년대 민주주의를 지키려 몸 던진 모든 시민의 가슴에서 피가 철철 흐릅니다. 잊힐 만하면 튀어나오는 일본 극우익의 망언을 대했을 때처럼 종편의 역사 왜곡에 분개하는 시절이네요. 한때 더러운 무엇 피하듯 종편을 대하자는 주장이 있었고, 실제로 그리 움직이고 말하는 이가 많았죠. 저도 얼마간 같은 가락을 탔습니다. 구린 냄새 날 것 같으니까 피하고 말았던 거죠. 개국하지 말았어야 할, 막았어야 할 종편을 대하는 것 자체가 매우 불편했거든요. 헌데 종편이 개국한 뒤 1년 7개월쯤 흐른 지금(2013년 7월), 이래선 안 되겠다 싶습니다. 더 늦기 전에 “옳지 않다”고 말할 근거를 찾고, “그릇됐다”고 논할 태세를 갖춰야 할 것 같아요. 대하기에 거북하고 괴로운 게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종편에 대해 뜨뜻미지근한 한국 사회의 모양새에 시비를 걸 때가 됐습니다. 더 늦기 전에!
■종편, 한국 사회의 중심을 노리다. 억지로.
2013년 3월 2일. 토요일이었죠. 그날 밤 8시 30분 이후로 TV 보며 심경 복잡한 사람 많았습니다. 대만 타이중 야구장에서 열린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World Baseball Classic)’ 한국과 네덜란드의 예선 1라운드 중계방송 때문이었어요. 한국이 한 점도 얻지 못한 채 네덜란드에 다섯 점을 내주며 지고 말았죠. 내심 우승을 바랐던 여러 야구 애호가에게 적잖은 충격이었습니다. ‘아니, 어떻게 한국이 네덜란드에게 질 수 있지?’ 하는 생각들이었을 겁니다. 사실 뭐 질 수도 있는 게 운동 경기이지만 속마음은 매번 여유롭지 않게 마련이잖아요.
그날 밤 많은 이의 심경이 복잡했던 건 네덜란드에 진 상황을 두고 울거나 웃지 못할 노릇이었기 때문이었죠. 한국 야구가 약해진 것 같아 울고 싶은데 중앙일보의 종편인 jtbc가 독점한 WBC 중계방송의 가치가 크게 떨어질 것이니 웃고 싶기도 했다는 사람 제법 많았습니다. 저도 입가에 스멀스멀 번지던 웃음이 금세 경직되더니 미간이 곧추서더군요. 고약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사실 이런 고약함은 쉬 예상할 수 있었죠. 전조도 있었고요. “종편은 보지 말자”는 제 권유에도 불구하고 아내가 jtbc의<무자식 상팔자>(극본 김수현)를 즐기기에 이거 뭔가 심상치 않고 왠지 찜찜하다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2013년 1월 26일 그 드라마가 기어이 시청률 7.9%(AGB닐슨미디어리서치코리아 조사)를 넘겼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2011년 12월 1일 종편 4사가 일제히 개국한 뒤 2012년 11월까지 1년간 월평균 시청률 0.303~0.489%(TNmS 조사)에 머물던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어요. 2013년 들어 시청률 1%대를 유지하는가 하면 2%로 올라설 때도 있었습니다.
제 아내처럼 여러 시청자가 기존 지상파 방송 채널(6~11번)로부터 가까운 곳(15·16·18·19번)에 놓인 종편의 덫(채널)에 걸린 결과로 보였죠. 이런 덫을 놓을 수 있게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과 최시중의 방송통신위원회가 큰 역할을 했고요.
덫에 걸린 시청자는<무자식 상팔자>같은 족쇄를 찼고, 그게 결국 종편을 웃게 했습니다. 종편의 웃음은 개국을 막지 못한, 보수 진영에 정권을 내준 비애의 화살이 되어 진보의 가슴에 깊이 꽂히고 말았어요. WBC 중계방송에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어색함과 불편함에 부르르 몸서리치고 얼굴 근육이 떨리더니 급기야 가슴에까지 고통이 닿은 것이죠. 아마 2012년 12·19 제18대 대선에서 맹활약(?)하던 종편의 잔상까지 겹치는 바람에 화살이 뇌리에도 아프게 꽂혔겠지요.
인정하기 싫지만 종편은 그렇게 세상에 착근했습니다. 시청자의 웃음은 물론이고 진보 진영의 울음을 들이마시며 한국 사회에 찰싹 들러붙은 거죠. 그렇게 종편이 존재하게 됐으니 손석희 같은 이가 jtbc로 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후유… 참으로 안타까워 절로 한숨이 흘러나오네요.
2013년 5월. 종편이 세상에 뿌리를 내렸다 싶더니 기어이 사고를 쳤습니다. 줄기 내고 가지 뻗어 햇빛 더 받으려고―시청률 높이려고―‘5·18 광주 민주 항쟁’에 큰 상처를 냈어요. 조선일보의 종편 TV조선<장성민의 시사탱크>와 동아일보의 채널A<김광현의 탕탕평평>이 ‘북한군 개입설’로 억지를 부렸죠. “(광주) 시민군이라기보다 북한에서 내려온 게릴라”라는 둥 “무장폭동”이라는 둥 터무니없이 떠벌렸어요.
시청률 자극해 광고 수익 올리려는 옐로 저널리즘의 전형적 행태였습니다. 2012년 TV조선이 매출 513억 원에 순손실 554억 원이 났고, 채널A도 매출 480억 원에 순손실을 619억 원이나 냈으니 광고주 유혹할 시청률에 눈멀었겠죠. 프로그램 제작비를 낮추는 게 수익 제고에 도움이 될 테니 돈 적게 드는 시사 토론 프로그램으로 ‘5·18 북한군 개입설’ 같은 걸 내지르고 보는 것일 테고요.
언론으로서 마땅히 맡아야 할 바를 외면하고 수익 사업체로 자세를 바꿔 주주의 경제 가치에 더 매이다 보니 ‘1980년 5월 광주에 북한군이 있었다’는 몰상식한 말을 서슴없이 한 것 아니겠습니까. 아니, 역사를 왜곡했으니 ‘상식이 없다’기보다 ‘못됐다’고 하는 게 더 마땅하겠습니다. 뭘 알아야 왜곡할 수 있는 것일 테니까요. TV조선·조선일보, jtbc·중앙일보, 채널A·동아일보는 일제강점기를 왜곡하는 일본 우익 정치인의 발언을 두고 ‘망언(妄言)’이라 지적할 때가 많았죠. 종편이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잘 알면서 그릇되게 말하는 것과 일본 우익의 망언을 어찌 갈라놓아야 할까요.
이런 부조리를 눈감은 채 ‘우린 정론하고 직필하는 언론입네’ 하는 것은? 더하고 뺄 것 없는 ‘억지’입니다. 시민 뜻, 시청자 마음을 외면한 채 기어이 한국 사회의 중심에 서고야 말겠다는 아집인 거죠. 시민·시청자의 멱살을 틀어쥐고 자기들 마음대로 이끌려는 욕심이기도 하고요.
■미디어 카르텔, 깊고 오래갈 상처
종편이 빚은 시민의 괴로움, 세상의 아픔은 생각보다 더 깊은 것 같습니다. TV 앞에 앉아 웃을까 말까 하는 불편함 정도로 눙치고 말 게 아니죠. 종편의 탄생을 막아 내려고 오래전부터 목청 돋운 이가 참 많았는데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모두 지르밟았잖아요. 뜻이 짓밟혔으니 원통하여 응어리지게 마련이고, 또 그게 어디 한두 사람이었습니까. 여러 시민이 상처를 입었죠.
상처…! ‘조중동매’라고 싸잡아 불러야 할 만큼 종편이 한국 사회에서 카르텔을 이룬 결과라고 저는 봅니다. 언젠가 서로를 지르밟아야 하겠으되 시청률 1%에 허덕이는 요즈음(2013년)엔 미디어 시장 독점을 함께 암중모색하는 동료인 거죠. 이른바 ‘미디어 카르텔’이라 하겠네요.
2013년 6월 12일 최민희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이 ‘네 개 종편이 미디어 분야 현안에 공동 대응하기로 했다’는 종편 간 짬짜미 회의 자료를 공개했습니다. 이게 사실이라면 전형적인 카르텔 사례겠네요. 당시 쟁점이었던 종편 수신료 배분 문제, 미디어랩 적용 유예 연장 따위를 위해 조선이 방송통신위원회·미래창조과학부, 중앙과 매경이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방송공정성특별위원회, 동아가 청와대 비서실·미래수석실 로비를 분담하기로 했다죠. 바로 이런 게 억지이고 몽니이자 폭력 아니겠습니까. 자기들끼리 다 해먹겠다는 얘기이되 과점(寡占)이 무르익은 시점의 궁극에는 다시 ‘자기만 살겠다’며 서로 다투겠죠. 실로 눈물겨운 동지애입니다그려.
사실 불길한 카르텔의 조짐은 진즉 나타났습니다. 제가 2010년 12월 출간한<미디어 카르텔: 민주주의가 사라진다>(마티)에 담긴 여러 나쁜 낌새가 2008년 2월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분출했으니까요. 올곧은 논객과 정치인, 결국엔 많은 시민의 목 핏대에까지 피가 몰렸죠. “종편을 허용해 민주주의 망치지 말라”고!
<미디어 카르텔>이 세상에 나온 것도 핏대 세워 목청 돋울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입 다물고 모른 척해선 곤란하겠다’는 마음, ‘이러다간 조·중·동이 즐거운 세상이 올 것 같다’는 두려움에 휘말렸죠. 끔찍했어요. ‘조·중·동 세상’이. 하여 ‘기록으로 남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음 굳게 가다듬었죠. 특히 최시중을 중심으로 활개 치던 ‘보수 우익 미디어 카르텔’의 실체에 근접할 작지만 소중한 실마리라도 남겨 둬야 한다고 여겼어요.
결과는? “비참했다”고 말할 것까진 없겠습니다. 일단 “씁쓸했다”고 해 두되 결코 “굴복할 순 없었다”고 말하렵니다.
씁쓸했던 건 ‘그자’ 때문이었죠. ‘그자’…, 안하무인이었습니다. (저는 지금 삼인칭 대명사인 ‘그자’를 권력을 가진 이와 그자에게 기댄 자, 종편을 포괄해 가리키는 말로 씁니다.) 방자하고 교만한 끝에 시민을 우롱했죠. 목에 핏대 돋운 여러 시민의 뜻 외면한 채 이명박 정부의 종편 감싸기 바통을 천연덕스레 박근혜 정부에 넘겼잖아요. 하긴 ‘그자’가 ‘그자’였으니 못할 바, 거리낄 것 없었겠죠.
■최시중 또는 이경재, 이 불편한 데자뷰
“나도 기자 생활을 했지만 어디까지 뉴스고 해설이고 보도냐 이 차이가 간단치 않다.”
2013년 5월 13일 이경재 제3기 방송통신위원장(2013년 4월~ )이 기자 간담회에서 한 말입니다. 예를 들어 증권 전문 방송(채널)이 증시와 연계된 정치·경제 상황을 전하는 게 위법인지를 판단하는 게 어렵다고 덧붙였다고 하더군요.
케이블TV 같은 유료 방송사업자 가운데 ‘증권’이나 ‘생활 정보’ 등을 전문 영역으로 삼는 채널은 전체 방송 시간의 80%를 해당 분야 프로그램으로 짜야 합니다. 법에 그리 정해 뒀어요. 나머지 시간 20%는 전문 분야와 상관없이 시사 토론 프로그램 같은 걸 편성할 수도 있는데 이를 두고 ‘보도 비슷한 것 아니냐’고 이경재 방송통신위원장이 시비를 건 거였죠. 보도 프로그램을 짤 수 있는 종편과 보도 전문 채널은 사전에 방송통신위원회의 방송채널사용사업 ‘승인’을 얻어야 하는데, 다른 분야를 전문으로 삼는 방송채널사용사업자가 무단으로 ‘보도 비슷한 것’을 TV에 내보내면 곤란하다는 뜻입니다.
뭐, 나름 일리가 있어 보이죠. 헌데 한 꺼풀 들추면 조금 구립니다. 박근혜 정부에 눈엣가시일 듯한 몇몇 방송 프로그램을 두고 ‘보도 비슷한 것 아니냐’고 시비했거든요. 사실 ‘눈엣가시일 듯하다’느니 ‘보도 비슷한 것 아니냐’느니 어느 것 하나 또렷하지 않습니다. 애초 이 이야기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이기 때문이죠. 따라서 정치적 이해가 스며들기에 딱 좋은 이야깃거리예요. 저는 상황이 이렇다면 망치로 머리를 두드리기보다 ‘표현의 자유’를 살리는 게 옳은 선택이라고 봅니다. 방송 프로그램이 내게 불편한 이야기를 쏟아낸다손 치더라도 차분히 들은 뒤 반론을 제기하거나 반성하거나 무시하거나 하면 되니까요. 한국 사회가 달리 까닭이 있어 민주공화국이라고 치장하겠습니까. 자유로이 말할 권리를 모든 시민에게 허용하겠다는 뜻이잖아요. 허니 당연히 망치를 들기 전에 귀부터 열어야겠죠.
안타깝게도 이경재 방송통신위원장을 비롯한 박근혜 정부 사람들은 망치(규제)부터 들었습니다. “어디까지 뉴스고 해설이고 보도냐 이 차이가 간단치 않다”면 쉬 판단하기 어렵다는 얘긴데 망치부터 들면 곤란하죠. 더구나 망치가 향한 곳이<뉴스 타파>와<고발뉴스>처럼 정부 여당이 느끼기에 불편한 매체였으니 미심쩍은 눈길들이 쇄도하는 것 아닙니까. 여기서, 한국에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보도와 보도 아닌 것을 어떻게 구분해? 큰 문제인 것 같은데…….”
2008년 7월 25일 최시중 제1기 방송통신위원장(2008년 3월 26일~2011년 3월 25일)이 그해 제22차 방송통신위원회 회의에서 한 말입니다. “승인 없이는 (방송채널사용사업자가) 보도나 종합편성을 못하게 되어 있는데 이렇게 되면 보도하지 못할 게 없겠다”고 덧붙이기도 했어요. 그가 말한 ‘이렇게 되면’은 승인을 받지 않고 ‘보도 비슷한 것을 방송하면’이라는 뜻이었죠.
데자뷰. 맞지요? 이럴 때 ‘데자뷰’라는 말 쓰는 거. 짜증이 나고 씁쓸하여 조금 피곤하기도 하지만 입 터진 김에 말할 건 제대로 해야겠습니다.
어쩜 그리 최시중과 이경재의 생각이 서로 닮았을까요. 같은 신문사(동아일보)의 정치부 기자로서 비슷하게 삶을 갈고 닦았기 때문? 두 사람이 한나라당(새누리당) 같은 보수 여당에 늘 가까웠기 때문?
망치(규제)로 노린 대상도 비슷했습니다.<오마이 경제 TV>와<쿠키 TV>처럼 당시 이명박 정부에게 껄끄러웠던 매체였어요. 그해 이명박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를 막무가내로 수입하는 바람에 일어난 ‘촛불 정국’을 열심히, 또 생생하게 전했죠. 어쩜 그리 예나 지금이나 비슷한 매체를 골라 망치를 드는지… 과연 대단들 하십니다그려.
최시중에서 이경재로 이어지는 ‘보수와 종편에게 편안할 방송 규제’의 증거가 곳곳에 널렸습니다만 유달리 저의 시선을 끄는 이가 있습니다.
김준상. 방송통신위원회 방송정책국장. 그는 ‘최시중·이경재의 방송통신위원회’를 온몸으로 웅변합니다. 궁극적으로는 ‘이명박근혜’ 방송통신 정책의 표상이라 하겠네요.
김준상은 행정고등고시 제31회 시험에 합격한 뒤 방송통신위원회 전신인 정보통신부에서 죽 공무원 생활을 했죠. 그는 동기들보다 승진이 늦었습니다. 그렇다 보니 본부(정보통신부) 외곽을 겉돌았다죠. 헌데 이명박 정부 아래 최시중의 방송통신위원회가 들어서면서 무겁게 쓰이기 시작했어요. 학교나 고향 후배에게 일을 맡기는 걸 좋아하는 최시중의 마음에 쏙 들 배경을 가졌기 때문이었죠. 김준상은 최시중처럼 대구에서 고등학교를 나왔고, 최시중처럼 서울대 정치학과를 다녔습니다. 최시중 무릎 아래에서 승승장구하지 못할 이유가 없었죠. 특히 ‘종편 출범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방송통신위원회에 내려앉은 최시중을 위해 방송 정책을 맡았어요.
2008년 9월 방송통신위원회 방송운영관이 된 김준상은 1년 만인 2009년 9월 방송정책국장 자리에 앉았습니다. 종편을 하루빨리 출범시켜 ‘아기 다루 듯 보살피려는’ 최시중의 바쁜 마음이 투영된 매우 빠른 승진이었죠. 이후로 종편이 출범하고 낮은 시청률에 허덕이다가 ‘5·18 광주 민주 항쟁 배후설 망언’으로 제재를 받은 2013년 6월까지 3년 10개월여 동안 방송정책국장 노릇을 했어요. 2008년 9월 방송운영관에 임명됐을 때부터 실질적으로 종편 정책을 다뤘으니 무려 4년 10개월이나 됐습니다. 이건 정말 기록적입니다. 승진이든 수평 보직 이동이든 2년을 넘기기 힘든 한국 중앙행정기관의 국장 자리 한 곳을 5년 가까이 틀어쥐고 있었으니까요. 아마 전에 없었고 후에도 없을 기록일 겁니다. 특히 최시중이 제2기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임기(2011년 3월~2014년 3월)를 다 채우지 못한 채 2012년 9월 법정 구속되는 와중에도 김준상은 그 자리(방송정책국장)에 그대로 있었으니 정말 대단한 생명력이죠.
저는 그가 생존한 까닭을 ‘이명박근혜 체계 덕’으로 봅니다. 서로 다른 척했으되 매한가지인 사람들이 정권의 바통을 이었으니 김준상을 다른 이로 바꿀 이유가 없었던 것 아니겠습니까. 하여 김준상은 여전히 그 자리에 앉아 있죠. ‘이명박근혜 방송 정책’을 온몸으로 내보이는 증거라 하겠습니다.
한나라당은 정권을 재창출했죠. 새누리당으로 간판을 바꿨으되 그 밥에 그 나물일 수밖에 없겠습니다. 최시중에서 이경재로 바통이 이어진 까닭도 매한가지이겠고요. 종편이 기세등등하고, 김준상이 같은 자리에 계속 앉아 있는 까닭이기도 하겠죠.
최시중과 이경재 데자뷰. 이런 데자뷰는 시민의 망각을 먹고 사는 것 아닐까요. 시민이 잠시 관심을 두지 않는 사이에 스리슬쩍 그 밥에 그 나물로 밥상을 차리는 거죠. 그리곤 자기들끼리 흡족한 나머지 맞보며 웃겠죠. 천연덕스레. 김준상 같은 이가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것도 시민의 망각 덕일 겁니다.
잊지 말아야 하고, 꼼꼼히 기록해 둬야겠습니다. 같은 일 되풀이하지 말아야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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