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월드 피난

2014.10.13. 10:43 ㅡ 정부조직법

eunyongyi 2020. 6. 26. 15:47

낱말 또는 세상, 정부조직법

■정부조직법은
국가행정기관을 꾸릴 기준과 기관별로 맡을 일의 대강을 정한 법. 1948년 7월 17일 이 법을 ‘공포한 날로부터 시행한다’는 제1호 부칙을 낸 뒤로 각 정권의 뜻에 따라 법령을 바꿨습니다. 그때그때 정부 조직을 고쳐 새로 편성한 거였죠.
‘기획재정부 장관은 중장기 국가발전전략 수립, 경제정책 총괄·조정, 예산 편성·집행 등 이러쿵저러쿵한 사무를 맡는다’는 형태로 죽 나열했습니다. 이명박 정부(2008년 2월 25일~2013년 2월 24일)를 기준으로 볼 때 맨 앞 기획재정부 뒤로 교육과학기술·외교통상·통일·법무·국방·행정안전·문화체육관광·농림수산식품·지식경제·보건복지·환경·고용노동·여성가족·국토해양부가 잇따랐죠. 모두 15부였고, 각자 할 일을 법으로 정했습니다. 법제처와 국세청 등 2처 18청을 어느 부 밑에 두고, 차관·처장·청장을 몇이나 둘지도 정했죠. 2013년 박근혜 정부는 이를 17부 3처 17청으로 바꿨습니다. 부와 처를 하나씩 늘리고, 청을 하나 줄였습니다.
1987년 6월 시민 항쟁으로 쟁취한 ‘5년 단임(單任) 대통령 직선제’에 따라 5년마다 법령을 손질하는 게 무슨 규칙적인 일이 된 듯하네요. 말이 좋아 ‘손질’이지 사실 5년마다 정부조직을 손바닥 뒤집듯 개편했죠. 적잖은 정력과 비용이 들어간 것은 물론이고 손바닥 뒤집힌 방향에 따라 여러 공직자가 자리에서 우수수 떨어지고는 했습니다. 특히 조직 짜임새를 거의 그대로 유지한 이명박 정부의 ‘행정안전부’를 박근혜 정부의 ‘안전행정부’로 바꾸느라 6000만 원쯤 필요했다죠. 현판, 서식, 로고, 명함 따위를 바꾸느라 돈을 들인 겁니다. ‘안전’에 행정의 곁점을 찍기 위해서였다고 하네요. 하, 끝내 웃음이 툭 터져 나옵니다. ‘안전’보다 ‘행정’을 중요시하는 정권이 등장하면 또다시 6000만 원쯤을 들여야 할까요. 혈세 생각하면 그저 허탈할 따름입니다.
웃음 터지는 얘기, 좀 더 해 볼까요. 이명박 정부가 출범할 때 현판을 내린 과학기술부와 정보통신부가 박근혜 정부에서 ‘미래창조과학부’로 거듭났습니다. 이명박 정부 때 과학기술부는 교육과학기술부로 흡수됐고, 정보통신부는 방송통신위원회·지식경제부·행정안전부·문화체육관광부로 쪼개졌죠. 그리 흩어 놓았던 걸 불과 5년 만에 박근혜 정부가 다시 주섬주섬한 겁니다. 여러 곳에서 정책 기능과 조직을 그러모아 새 행정기관을 만들다 보니 ‘미래창조과학부’ 같은 오묘한 이름이 탄생했어요. 헌데 기관 이름 줄여 부르기를 즐기는 관가 습성에 미래창조과학부를 맞추려니 좀 난감했습니다. 엄밀히는 ‘미창과부’라고 해야 할 텐데 이 말을 거꾸로 유추할 때 오해나 곡해를 부를 수 있을 것으로 보였죠. 띄어 읽는 곳에 따라서도 곡해를 부추길 만했습니다. 일부러 ‘미친’ 무엇이라 비꼴 여지도 많았고요. ‘미창부’나 ‘창과부’도 느낌이 좀 그렇고 해서 ‘미래부’가 입에 익는 추세였죠. 허나 ‘미래부’도 무엇하는 곳인지를 명확히 나타내 보이지 못한다는 지적이 일었습니다. 미래? 앞날 내다보는 곳? 중앙행정기관이 무슨 점집도 아니고 흐리터분하다는 의견이 많았어요. 안전행정부를 ‘안행부’로 부르거나 지식경제부에 통상기능을 붙여 만든 산업통상자원부를 ‘산통자부’나 ‘산통부’로 일컫는 것도 어색하기는 매한가지. 산업·통상 행정에서 산통 깨질 일이나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모두 잦은 조직 개편이 부른 겸연쩍음이라 하겠습니다.
이런 현상을 그저 허탈해하거나 우스개쯤으로 넘겨야 할까요. 아니, 곤란합니다. 헛돈, 피 같은 세금이 줄줄 셀 수 있으니까요. 정신 바싹 차려야합니다. 헛품, 여러 해 땀 흘린 수고를 훌훌 날릴 수 있으니까요.
함께 더 깊이 살펴보시죠. 관가가 5년마다 와글와글합니다. 정권이 바뀌어 우수수 떨어진 자리를 채우러 여러 사람이 우르르 몰려들기 때문이죠. 대표적인 사례가 정무직(政務職)이겠네요. 부·처·청 머리, 장차관 말입니다. 대통령 선거에 얼마나 기여했느냐에 따라 굵직한 장차관 자리를 몫몫이 별러 나누는 거죠. 이때 부·처·청 수족, 공무원들은 장차관을 각자의 꼭짓점으로 삼아 힘겨루기에 나섭니다. 자리 쟁탈전. 직제 하나하나를 두고 맡을 일과 자릿수를 정하느라 치열하게 싸웁니다. 업무와 조직을 다른 기관에 내줄 때엔 되도록 적게, 가져올 때엔 많이! 그야말로 ‘이기(利己)’가 판치죠.
어쩌면 ‘내준다’는 말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할 수도 있겠어요. 정부조직법이 바뀌어 다른 행정기관에 기능과 조직을 내줬다 하더라도 자기 조직 안에서 자생할 씨앗을 뿌릴 틈을 찾습니다. 씨앗은 다른 행정기관에 내준 기능을 그대로 품었거나 당장은 왜소하지만 장차 큰 조직으로 거듭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준비하죠. 내줬으되 같은 일을 다시 시작하는 셈입니다. 기능과 조직을 떼어 간 기관에선? 당연히 “이제 우리 일이니 너흰 손대거나 신경 쓰지 말라”고 합니다. 이후엔 어찌 되겠어요? 두 기관의 정책이 겹치거나 기능이 거듭되죠. 중복! 정책과 기능이 중복된다는 건 곧 조직이 겹친다는 얘기 아니겠습니까.
예를 들어 볼까요. 이명박 정부가 정보통신부 밑에 뒀던 인터넷 문화진흥 기능을 행정안전부로 옮겼습니다. 정보통신부 산하 한국정보문화진흥원(KADO)이 하던 일을 행정안전부 산하 한국정보화진흥원(NIA)이 새로 맡았죠. KADO에서 NIA로 일과 사람(조직)이 그대로 옮겨 갔습니다. 헌데 2008년 2월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뒤 정보통신부 후신인 방송통신위원회의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에서도 비슷한 일을 벌였어요. 일을 맡을 조직(인터넷문화진흥단)도 꾸렸습니다. 새로 일을 시작했으니 새 조직도 필요했던 거죠. 두 조직의 일은? 비슷했어요. 그렇다 보니 문패도 비슷해졌습니다. NIA 정보문화사업단과 KISA 인터넷문화진흥단. 정보와 인터넷, 사업과 진흥… 몇 글자가 서로 다르긴 했으되 그저 눈가림에 지나지 않았죠, 뭐. 사정이 이랬으니 어떤 일이 벌어졌겠습니까. 중복!
2010년 6월 5일. KISA 인터넷문화진흥단이 ‘한국인터넷드림단’을 발대했습니다. 16개 시·도에 사는 800여 초·중등학생을 단원으로 뽑았죠. 건전한 인터넷 이용 문화를 꾸리고 확산하기 위한 디지털 교육·체험·봉사가 단원의 임무였어요. 늦게 시작한 인터넷 문화 진흥 사업의 영향력을 키우기 위한 사업이었습니다.
2011년 6월 14일. 이번엔 행정안전부와 NIA가 정부중앙청사에서 제24회 ‘정보문화의 달’ 기념식을 열어 ‘디지털행복나눔봉사단’을 발대했습니다. 200여 단원이 정보 소외 계층을 찾아가 봉사해 행복한 디지털 세상을 만드는 게 목표였죠.
봉사단이야, 뭐 많으면 많을수록 좋겠죠. 더 많은 정보 소외 계층에게 더 좋은 정보·인터넷 이용 환경을 제공하고, 건전하고 행복한 디지털 세상을 만들자는 데 반대할 이유도 없겠고요. 하지만 KISA 인터넷드림단원과 NIA 디지털행복나눔봉사단원이 함께 활동하는 사진을 볼 수 없었습니다. KISA의 건전한 인터넷 이용 문화 확산 의지와 NIA의 행복한 디지털 세상 만들기가 맞물리지 못할 까닭이 없는데도 말이죠. 이건 두 기관이 마주 보고 ‘웃는’ 사이가 아니라 서로 ‘노려보는’ 사이라는 얘기일 터. 겉으로야 협력하고 상대를 격려하는 듯하나 속으로는 심히 불편한 겁니다. 비슷한 일을 영위하되 상대보다 예산을 더 많이 따내려 경쟁하고, 자리(조직)도 더 크게 늘려야 하기 때문이죠. 이런 행태가 만연합니다. 관가 스스로 살(조직)을 찌워 시간이 지날수록 뚱뚱해집니다. 비대해지죠. 어찌 보면 체중을 늘리는 게 모든 행정기관의 실질적인 업무이자 목적인 듯합니다.
본디 한 가족(정보통신부 산하)이었던 KISA와 NIA가 이런 형편이니 정부조직법의 중요성이 새삼스럽네요. 법 제1조에 ‘국가행정기관의 설치·조직과 직무범위의 대강을 정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했는데 ‘대강’을 ‘명확히’로 바꿔야 하지 않을까요. 대강, 즉 두루뭉술하니 어슷비슷한 문패를 내걸고 같은 일을 벌이는 일이 만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저는 제 피 같은 세금을 ‘겹친 일’에 쓰라고 놓아둘 용의가 없습니다. 복지 사업이 겹쳐 시민이 행복하다면 누가 뭐라 하겠습니까. 그렇지 않으니 문제죠. 어느 기관이 어떤 일을 얼마나 맡을지 명백하고 확실하게 정하라고 제 목울대를 돋우렵니다.


■원수 갚는 문화
5년마다 조직을 이랬다저랬다 하니 여기저기서 ‘다음 정권에서 두고 보자’는 심사가 나는 것도 문제죠. 빼앗긴 것(사업·조직·예산)을 그대로 되찾는 데 그치지 않고 5년 전 굴욕을 더 크게 갚아 주려는 마음이 곳곳에 도사립니다. 중앙행정기관(부·처·청)이든 준정부(공공)기관이든 상처를 입은 곳이라면 어디나 대동소이할 것이되 노무현 정부의 방송위원회, 정보통신부, 과학기술부가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연거푸 옷을 갈아입은 사례가 매우 극적인 것 같아요.
방송위원회와 정보통신부 통합 논의는 김대중 정부로부터 노무현 정부에 이르기까지 10년쯤 묵었죠. 그 오랜 고민과 토론을 제대로 매조지하려고 2007년엔 국회에 방송통신특별위원회까지 만들었어요. 방송과 통신이 융합하는 큰 흐름에 걸맞은 규제·진흥 정책 기구를 구성하는 게 목표였죠. 궁극적으로 두 기관을 합쳐 누가 당선되든 제17대 대통령의 조직으로 쓰자는 여야의 암묵적 합의가 있었던 겁니다. 헌데 10년쯤 땀 흘린 끝에 어렵사리 도출한 국회 방송통신특별위원회의 기구 통합 방안이 그대로 실현되지 않았어요. 그때 정권을 잡은 이명박·한나라당의 이해가 국회 여야 합의안 여기저기에 생채기를 냈습니다. 그들은 이런 행태를 집권 철학을 구현하려는 것으로 설명했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기존 국회 합의안을 무시한 거였죠. 방송위원회·정보통신부의 기능과 조직 그대로를 합쳐 ‘방송통신위원회’를 만드는 게 국회에서 이룬 여야 합의였는데, 정보통신부를 정권 입맛에 따라 찢었습니다. 정보통신기술(ICT) 진흥 기능을 지식경제부(옛 산업자원부)로 떼어 주고, 국가 정보화 전략 수립 기능을 행정안전부(옛 행정자치부)에 주는 식이었어요. 문화체육관광부(옛 문화관광부)도 콘텐츠 진흥 기능을 정보통신부로부터 넘겨받았습니다.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이렇게 정보통신부의 산업 진흥 기능을 찢을 때 관가에 ‘구원(舊怨) 풀이 풍설’이 떠돌았어요. 노무현 대통령의 총애를 받은 아무개 정보통신부 장관에게 여러 차례 굴욕을 당한 아무개 전직 산업자원부 장관과 그의 주변 사람 몇몇이 정보통신부에 앙갚음한 결과라는 거였죠. 당시 정보통신부 공무원들은 “조직이 그야말로 발기발기 찢겼다”며 울분을 토했습니다. 넘치는 심증은 물론이고, 눈으로 보았으되 제대로 반발하지 못한 채 밀려나야 했던 관가 힘겨루기 현장 그대로가 분한 마음으로 전이됐어요. 앙갚음에 따른 새로운 굴욕이 탄생한 거였죠, 뭐. 특히 정보통신부 공무원들의 분함은 ‘우정사업본부’를 내줄 때 정점에 닿았습니다.
2008년 2월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정부조직 개편 작업이 한창일 때 정보통신부 밑 우정사업본부를 호시탐탐한 중앙행정기관이 많았어요. 행정안전부(행정자치부)와 지식경제부(산업자원부)가 빼앗으려 했고, 정보통신부 후신인 방송통신위원회는 당연히 붙잡아 두려 했죠. 당시 우정사업본부는 자산이 48조 원에 달했고, 연간 매출도 4조 원이나 됐습니다. 덩치가 크다 보니 일자리도 넉넉했어요. 2008년에만 실·국장급 공무원 15명, 3·4급 이하 3만1638명 등 무려 3만1653명이 우정사업본부에서 일했죠. 넉넉한 일자리는 상급 중앙행정기관의 인사(人事)에 숨통을 트는 데 매우 유용했습니다. 서울 본부와 8개 지방 체신청, 정보통신공무원교육원, 지식정보센터, 정보통신부조달사무소장 등 3·4급 팀장 자리만 해도 63개였죠. 4급 상당 우체국장도 전국에 118개나 있었어요. 이렇듯 매력적이고 알토란 같다 보니 우정사업본부를 빼앗고 지키기 위한 다툼이 치열했습니다.
승부는 방송통신위원회와 행정안전부(행정자치부)로 기우는 듯했어요. 우정사업본부를 방송통신위원회에 남겨 두거나 행정안전부로 옮길 개연성이 컸던 거죠. 헌데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정부조직법 개정 작업 막바지에 난데없이 지식경제부(산업자원부)로 방향을 틀었어요. ‘지식경제부 밑 우정사업본부’가 난데없었던 건 산업을 다루는 중앙행정기관 밑에 우편·예금·보험 사업을 두는 게 어색했기 때문이죠.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었을 뿐만 아니라 민간에 ‘금산(金産)분리’를 요구하고 규제하던 정부가 스스로 손에 떼를 묻힌 꼴이었습니다.
당연히 이치에 맞지 않았죠. 부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의 조직 개편 막바지 회의에서 왜 일이 그리 이루어졌을까요.
“당선인(이명박)의 뜻입니다.”
우정사업본부를 지키거나 빼앗으려는 기관의 공무원 간 논리 다툼을 끽소리 하나 없이 가라앉힌 제17대 대통령(이명박)직인수위원회 한 관계자의 한마디. 그 회의에 참석한 정보통신부 관계자는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습니다. 우정사업본부를 지식경제부에 보내는 것에 부정적이었던 한나라당 관계자조차 입을 다물었을 만큼 강력한 발언이었죠. 상대적으로 진보적이었던 정권(노무현 정부)이 강견한 보수 체제(이명박 정부)로 바뀌던 시절이었으니 누구라 할 것 없이 입을 다물고 말았던 겁니다. 그렇게 우정사업본부는 지식경제부(산업자원부) 밑으로 가야 했죠.
2008년 3월 5일 오후 1시 40분 서울 세종로 100번지(당시 주소) 옛 정보통신부 건물 뒷마당. 기어이 여기저기로 눈물이 번졌습니다. 지식경제부로 가는 사람 90여 명과 그 사람들 떠나보내는 이(방송통신위원회에 남는 사람) 모두 눈시울을 붉히더군요. 물론 “정말 바라던 곳, 스스로 지원한 곳으로 간다”며 기뻐한 이도 있었죠. 허나 떠나는 정보통신부 직원 90여 명은 헤비급 조직(지식경제부)에 안길 경량급 선수에 불과했기에 그날 그 뒷마당은 비통에 잠겼던 것으로 저는 기억합니다.
그해 3월 6일과 7일 사이에 정보통신부 직원 50명이 행정안전부(행정자치부)로, 9명이 문화체육관광부(문화관광부)로 더 떠났죠. 서울 세종로 100번지엔 방송통신위원회가 자리 잡았고, 현판 ‘정보통신부’는 정보통신박물관으로 갔습니다.
그리 마침표를 찍고 말았을까요. 아니, 정보통신부 후신인 방송통신위원회는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조용히 5년 뒤를 준비했습니다. 학계에 방송정보통신 행정기관의 변화를 중심에 둔 정부조직법 개정 관련 연구를 맡겼죠. ‘방송정보통신기술과 산업을 진흥하려면 독임(獨任) 행정 체제가 필요하다’는 여론을 조금씩 조성하기도 했고요. 궁극적으로 옛 정보통신부 같은 기관을 다시 만들자는 얘기로 들렸습니다.
실제로 이명박 정부 출범 2년 차였던 2009년 9월 방송통신위원회는 ‘차관급 사무총장 신설’과 같은 직제 개정을 포함한 조직 진단 연구 용역을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에 맡겼어요. 겉으로 내세운 조직 진단 목표는 정책기획에 필요한 적정 인력 규모를 찾고, 전문 인력 확보 방안을 마련하며, 일하는 방식을 바꿔 좋은 일터를 만드는 것이었죠. 속뜻은? ‘독임제 행정 기능 강화’였습니다. 사무총장을 신설해 힘(독임)을 늘리겠다는 거였는데, 이는 곧 옛날(정보통신부)이 그립다는 얘기였어요. 그때 용역을 맡긴 서울대 행정대학원에는 김동욱 정보통신방송정책과정 주임교수가 있었습니다. 김 교수는 정보통신부의 산업 진흥 기능을 분할한 이명박 정부의 조직법 개정 작업에 힘을 보탠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에 사실 그를 보는 방송통신위원회 직원의 시선이 곱지 않았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방송통신위원회의 독임 기능을 강화하는 연구 용역을 맡겨 결과물의 신뢰도와 실효성을 높이려 했죠. 실로 전율할 만하지 않습니까. 자신(정보통신부)을 짓밟는 데 일조한 사람에게 자기를 되살릴 타당성을 마련(연구)해 달라고 요청한 거예요. 방송통신위원회 조직을 진단할 때 쓸 사무실까지 지원할 정도로 단단히 준비했습니다.
땀 흘린 보람이 있었어요. 박근혜 정부가 ‘미래창조과학부’로 화답했죠. 지식경제부(산업자원부)와 행정안전부(행정자치부) 등으로 내줬던 많은 업무와 조직을 되찾았습니다. 우정사업본부도 도로 찾았어요. 5년 전 굴욕을 보기 좋게 갚아 준 거였죠. 그사이 우정사업본부는 매출 약 15조 원, 자산 100조 원대(이상 2012년 기준)로 중량이 늘었으니 기쁨 두 배!


■5년 뒤 다시
5년 뒤. 박근혜 정부가 임기를 마칠 때. 정부조직법이 다시 흔들릴까요. 십중팔구, 아니 열에 열, 모습을 바꿀 개연성이 큽니다.
미래창조과학부에 모은 옛 과학기술부와 정보통신부를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다시 찢을 수 있겠죠. 우정사업본부가 옛 정보통신부의 후신이 아닌 기관 밑으로 옮겨 갈 수도 있을 겁니다. 누가 압니까. 교육부가 박근혜 정부에서 5년쯤 옛 과학기술 진흥 기능으로부터 손을 뗐더니 아쉬워도 너무 아쉬운 나머지 과학기술부를 도로 찾아갈 수도 있겠죠. 설마? 설마가 사람 잡듯 산업통상자원부가 옛 과학기술부와 정보통신부를 통째로 삼킬 수도 있을 겁니다. 산업통상자원부의 뿌리인 ‘상공부’를 곱씹어 보면 터무니없는 얘기도 아니죠. 상업·무역·공업에 관한 일을 맡았고, 1993년 과학기술·에너지와 인접한 동력자원부와 합쳤던 터라 ‘과학기술·정보통신을 언제든 품을 수 있다’는 시각이 상공부 출신 공무원에게 매우 자연스러울 수 있거든요.
이게 대체 뭐하는 짓입니까. 정부조직을 또다시… 5년마다! 누가 그리하라 허락했습니까. 이러지 마세요. 세금 내는 시민, 등골 휠까 걱정입니다.
정치인들, 국가 대계(大計), 미래를 위한 큰 계획을 참으로 좋아하던데 정부조직은 어찌 그리 자주 유린하는 겁니까. 100년은커녕 10년도 내다보지 못하고 있잖아요. 대통령이 되려고 나선 사람들, 국가 대계, 미래를 위한 큰 계획을 참으로 좋아하던데 정부조직은 어찌 그리 쉬 뒤집는 겁니까. 10년은커녕 5년도 내다보지 못하고 있잖아요. 이게 될 말입니까. 안 될 말이죠.
5년 뒤. 박근혜 정부가 임기를 마칠 때. 미래창조과학부가 출범할 때 모습을 그대로 간직할까요.
박근혜 정부가 미래창조과학부를 만든 건 ‘창조경제’ 때문이었습니다. 헌데 ‘창조경제’ 개념이 흐리터분했죠. 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그 뜻이 산뜻하지 못했어요. 목표가 모호함에도 박근혜 정부 내 서열은 2위(기획재정부 다음)입니다. 본부에서 일하는 사람만 해도 1000명에 달하죠. 산하 우정사업본부에 4만5000명, 14개 정부출연연구기관에 1만 명. 그야말로 공룡이 됐어요.
덩치가 커 무거운 조직임에도 불구하고 나아갈 방향(창조경제)이 분명하지 않다니……. 이런 상황은 조직을 바꾸나 바꾸지 않으나 매한가지일 수 있다는 뜻 아닐까요. 겉치레만 번지르르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겉치레뿐이고 실속이 없다면? 혈세 토하는 시민의 불행을 불러오겠죠.
아무튼 미래창조과학부는 박근혜 정부를 바라보고 평가할 여러 시선의 한가운데에 섰습니다. 차관을 둘이나 둬야 할 정도로 방송통신위원회, 교육부(교육과학기술부), 산업통상자원부(지식경제부), 안전행정부(행정안전부),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가져간 게 많으니까요. 우정사업본부에, 국가 정보 기획에, 기초 기술 연구에, 콘텐츠 진흥 등등. 이것저것 내준 기능에 맞춰 산하기관까지 내줘야 했던 곳의 속이 편할 리 없을 겁니다. 허니 불과 5년 뒤의 미래창조과학부가 다시 불안한 거죠.
조금 더 들여다볼까요. 산업통상자원부(지식경제부), 안전행정부(행정안전부),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미래창조과학부로 옮겨 간 여러 기능의 실무를 맡을 과(課) 이름을 돋우어 봅시다. 미래창조과학부 정보화전략국 아래에 안전행정부(행정안전부)에서 옮겨 간 ‘정보화기획과’와 방송통신위원회에서 떨어져 나간 ‘네트워크기획과’가 모였죠. 제 눈엔 두 과를 굳이 나누어 운영해야 할 이유가 보이지 않습니다. 국가 정보화를 기획하는 것과 국가 기간 통신망(네트워크)을 기획하는 게 뭐 그리 다를 게 있겠습니까. 조금 더 포괄하자면 정보화전략국 아래 정보보호정책과·지능통신정책과·인터넷정책과도 옛 정보통신부로부터 다른 중앙행정기관으로 흩어졌던 기능(과)들이 덩치를 키워 다시 모인 것에 지나지 않아 보여요. 기능을 합쳐도 좋을 것이라는 얘기죠. 더 넓게 보자면 옛 정보통신부에서 산업통상자원부(지식경제부)로 갔다가 되돌아온 정보통신산업국 아래 정보통신정책과·정보통신산업과·소프트웨어산업과·소프트웨어융합과도 마찬가지입니다. 덩치를 키워 돌아온 그대로를 밑거름으로 삼아 앞으로 더욱 살을 찌우겠죠. 5년 뒤에 품에 계속 안고 있든 다른 곳에 빼앗기든 일단 살부터 찌워 두는 게 좋은 거예요. 어떤 형태로든 끊임없이 정부조직이 크고 뚱뚱해질 테니 걱정도 한걱정입니다. 시민이 제대로 감시하고 제재할 수 있을까요. 벅차죠. 제가 시민 가운데 하나로서 관가의 자성을 간절히 바라는 이유입니다.
박근혜 정부의 ‘17부 3처 17청’짜리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2013년 3월 22일 국회에서 의결됐습니다. 법률안을 국회에 낸 게 2013년 1월 30일이었으니 52일 만이었죠.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2013년 2월 25일로부터도 26일이나 지난 뒤였어요. 그만큼 정권이 이루고자 하는 바에 걸맞은 정부조직을 짜는 게 중요하다는 뜻인 건 잘 알겠습니다. 허나 그사이 공무원은? 손 놓고 국회만 바라봤죠, 뭐. 시간 낭비에 괜한 세금까지 드니 안타깝기가 그지없네요. 이 상태로는 5년 뒤 또다시 정부조직법을 바꾸자며 북새통을 칠 게 뻔하니 참으로 가슴 아프고 답답합니다.
이제 좀 ‘크으…게’ 호흡하고 ‘머얼…리’ 내다볼 때 아닐까요. 5년 너머 10년, 50년, 100년으로.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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