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용의 삐(B)끕 안철수 보고
“나는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것부터 명확히 해 둬야겠습니다. 이 책이 박근혜와 그를 지지하는 이에게 악용되는 걸 바라지 않기 때문이죠. 나는 한국에 ‘보수다운 보수’가 집권한 적이 없다고 봅니다. 사실은 ‘보수다운 보수’가 아예 존재한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저 일본 제국주의를 본뜬 군사정권과 그 잔당만 남았다고 여깁니다. 하니 ‘민정당’ 후신인 ‘한나라당’이나 ‘새누리당’을 지지하지도 않죠. 특히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사법 살인 사건(1975년)’을 두고 2012년 9월 새누리당 안팎에서 일어난 소동엔 그저 기함할밖에 달리 할 말이 없더군요.
‘안철수’를 끌어안고 뒹군 밤이 많았습니다. 끙끙댔어요. 관심 밖 사람이었던 그가 2012년 12월 19일에 있을 제18대 대통령 선거를 향한 힘 있는 주자로 등장해서죠. 유권자 마음을 크게 흔든 그가 어떤 사람인지 몹시 궁금했습니다. 어찌 살았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떻게 살아갈 건지 등등. 옛 책 더듬고, 새 책 펼쳤어요. 그가 직접 쓴 게 네댓 권이었고, 그를 지켜본 이가 쓴 게 포함됐습니다. 그에 관한 이런저런 기사와 소식에 귀를 기울이기도 했죠.
알고 싶었어요. 왜 여러 시민의 마음 한가운데에 안철수가 자리 잡았을까. 도대체 뭘까. 무엇이 시민의 마음을 움직였을까. 결국 ‘그에게 국정을 맡겨도 될까’를 끌어안았습니다.
열심히 눈과 귀 가다듬은 건 ‘안철수의 선택’이 그만큼 무거워서죠. 그의 결정에 따라 이른바 ‘표심’이 이리저리 몰려다니지 않겠습니까. 시민 마음(표심)이 올발랐으면 좋겠어요. 올바르기로야 사람마다 정도가 다를 것이되 최소한 ‘몹쓸 잔재가 득세하지 못할 선택’에 한뜻이리라 나는 여깁니다. 물론 세상 부(富)를 지나치게 많이 가진 1%쯤의 자본가는 생각이 다르겠죠. 허나 그깟 1%쯤이 두렵거나 걱정돼 시민 99%에게 해를 끼칠 선택을 할 수는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1%에게 매몰찬 표심이 더욱 단단히 영글 수 있게 ‘안철수 불쏘시개’가 잘 쓰였으면 합니다. 안철수 전 안랩이사회 의장이 스스로 불쏘시개로 쓰일 뜻을 굳게 다지기를 나는 바랍니다.
안철수 의장이 직접 대통령이 되려는 상황은 엄연히 느낌이 달랐습니다. 걱정부터 솟았어요. 모든 이가 그리 느끼진 않았겠죠. 내 ‘안철수 독후(讀後)’가 그렇다는 얘깁니다.
분에 넘칠 말일 수 있겠으나 내 독후로는 “그의 세상 보는 눈이 온전히 여물지 못한 것 같습니다.” 옛 가치관에 매여 제자리걸음을 치는 듯한 모습이 투영된 언행 때문이죠. 대학 때부터 히로나카 헤이스케가 쓴<학문의 즐거움>으로부터 얻은 한 구절을 생활신조로 삼았고, 회사가 한창 어려운 시절엔 서울 서초동에서 삼성동까지 무조건 걸었으며, 어릴 땐 매사에 호기심이 많은 아이였다는 얘기를 끝없이 반복하듯 그가 아직 ‘기업인 안철수’에 매인 듯했습니다. 2012년 9월 19일 안철수 의장이 18대 대선 출마 선언을 하며 밝힌 여러 생각도 ‘오랜 시간 잠행하며 국민의 소리를 들은 결과’로 보기엔 약했어요. ‘융합적 사고’와 ‘디지털 마인드’와 ‘수평적 리더십’ 같은 낱말 묶음을 여러 차례 내세웠으되 발전 없이 그냥 그 자리에 머문 듯했죠. 잠행하기 전이나 <안철수의 생각>(김영사, 2012년 7월)에 이런저런 걸 내보였을 때나 느낌이 매한가지였던 겁니다. 물론 두 달여 만에 생각이 크게 발전하길 바라는 게 무리라는 걸 나도 잘 압니다. 맞아요. 지나치죠. 허나 어쩌면 그가 예상과 달리 자기중심적 생각이 센 사람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걱정이 자꾸 꿈틀댑니다.
어떤 이는 안 의장의 쉬 바뀌지 않는 사고방식과 원칙을 “말과 행동을 일치시켜 일관성 있게 살아온 삶의 방증”으로 보더군요. 도덕적으로 살았다는 평가도 나왔죠. 그리 보고 안심하거나 안 의장을 더욱 굳게 믿는 이가 있듯 편하지 않고 조마조마한 이도 많다는 걸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그나마 <안철수의 생각>에서 이런저런 세상사를 보는 눈이 예전과 달리 얼마간 발전한 것 같아 위안으로 삼을 만했으되 나는 여전히 그가 믿음직하지 않아요.
‘위인전에 비칠 자신’을 아주 오래전부터 준비한 것 같은 느낌이랄까. 은근히 자신(안철수)을 앞세우는 태도도 걱정스럽습니다. 어떤 이는 이를 안철수 의장의 권력의지가 투영된 긍정적인 현상으로 보았죠. 하지만 ‘권력의지’와 ‘권력욕’ 사이가 매우 가깝지 않던가요. 호흡 한 번 가다듬는 것만으로 욕심이 쉬 부풀 수 있습니다. 욕심이 지나쳐 추악해지는 것도 한순간 아니던가요. 내가 ‘안철수’를 끌어안고 밤새 끙끙대는 이유입니다. 그의 언행을 끝까지 지켜볼 이유이기도 하고.
‘1·독후(讀後)’는 내가 안철수 전 안랩이사회 의장을 알아 가려고 들인 첫 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를 읽은 경로라고도 하겠네요. 아예 몰랐던 건 아니지만 큰 관심을 두지 않았던 이가 갑자기 대통령 주자로 나선 터라 유권자로서 당연히 안철수를 알아보려 꼼지락대기 시작한 거였죠. 특히 박근우의 <안철수 히(He), 스토리(Story)>는 내게 “교조적(敎條的)이지 말아야 한다”는 화두를 품게 했습니다. 이 책을 쓰게 한 큰 계기 가운데 하나이기도 했어요. 큰 선택(대선)을 앞둔 우리는 냉철해야 합니다. 교조적이어선 곤란하죠. 침착히 사리에 밝게 미래를 함께 열고 싶은 마음을 담아 “안철수뿐만 아니라 그 누구에게든 교조적이지 말자”고 청하고 원합니다.
안철수 의장이 직접 쓴 <CEO 안철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과 <CEO 안철수, 영혼이 있는 승부>등은 기존 인식과 달리 그에게 ‘기업인 옷’이 참 잘 어울렸다는 느낌이었어요. 그가 안랩을 통해 공익을 고민하고 지향했으되 ‘실체는 결국 기업 최고경영자’가 아니었나 싶었죠. 뭐랄까요. 눈감아 줄 수 없는 구조적 체계? 이윤을 추구하는 주식회사(안랩)가 공익을 말하는 구조적 모순? 물론 사람마다 안랩을 보는 시각이 다르게 마련이고, 안철수 의장이 욕심 사나운 재벌 총수보다 상대적으로 착한 경영자이기도 했죠. 그렇다 해서 안랩의 구조가 사회적 기업으로 바뀌진 않습니다. 이런 관계를 차분히 들여다보아야 유권자의 큰 선택에 ‘교조적 잡음(노이즈)’가 섞이지 않으리라 생각해요. 더불어 <안철수의 생각>은 일종의 공약(公約)집 아니겠습니까. 공약(空約)이 되지 않는지 늘 지켜보기 위해 표지(標識)로 삼아야겠습니다.
‘2·안철수 안랩’은 ‘안철수 의장과 안랩이 과연 하나(일심동체)였을까’ 하는 질문에서 출발했습니다. 모르거나 의심나면 머릿속에 물음표부터 그리잖아요. ‘안철수 독후’가 점점 깊어져 그와 그의 회사 이력에 시선이 닿은 거라 말할 수 있겠습니다. 안 의장이 안랩을 더 큰 목표를 향한 도약대로 이용한 건 아니었는지, 안랩이 안 의장 이름에 기대어 살을 찌우거나 주식가격이 떠오르게 하지는 않았는지 따위를 살폈죠. ‘독후’로부터 감정 같은 게 솟구치지 않도록 차분히 들여다보고, 좀 건조하게 표현하려 노력했어요. 궁극적으로 오늘의 안철수를 있게 한 가장 큰 틀인 ‘안랩 시절 안철수’에 초점을 모았다고 하겠습니다.
‘3·믿어도 될까’엔 2012년 12월 19일 제18대 대통령 선거 투표소로 달려가는 내 마음을 그대로 내보이려 했습니다. 매우 조심스러웠으되 유권자로서 마땅히 할 일이라 여겼어요. 무엇보다 ‘이념’에 지나치게 부정적인 그의 시각이 안타까웠습니다. 심지어 그가 무식해 보이기까지 했어요. 안철수 의장이 겸허히 ‘이념’을 둘러싼 자신의 발언을 돌이켜 보기를 바랐죠.
‘산업화’를 ‘민주화’와 대칭해 말한 것도 문제로 보였습니다. 그에게 감히 말하고 싶어요. 선거 운동으로 여념이 없겠지만 짬 날 때마다 “역사 공부를 좀 더 깊이 하시라”고. 그에게 감히 한 번 더 말하고 싶어요. 스스로 약속한 것처럼 ‘기업인 옷’을 완전히 벗으라고. ‘정치인 태’로 완전히 바꾸어 쓰라고.
왜? 대통령 되어 세상을 바꾸겠다고 했으니까. 제대로 바꾸겠다고 했으니까. 그를 믿어야 할지, 그에게 맡겨도 좋을지 잘 모르겠으니까. 불안하니까.
2012년 구월 이은용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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