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탈(脫)이념’이 옳은 길인가
안철수 안랩이사회 의장은 자신을 “상식파”라고 여러 번 말했다. 2012년 7월 23일 밤 SBS TV ‘힐링캠프’에 등장해 ‘진보·보수 여부’를 묻는 질문에 그는 “굳이 얘기하면 상식파”랬다. 시골의사 박경철과 함께 연 2011년 ‘청춘콘서트’에서도 자신을 ‘상식파’로 규정했다.
안 의장이 말하는 ‘상식파’는 ‘탈(脫)이념’한 결과로 보였다. 즉 진보·보수 이념에서 벗어나 추구하는 방향이라 하겠다. 실제로 그는 청춘콘서트를 통해 “지금 좌파 우파 논쟁하면서 허송세월할 만큼 우리나라 상황이 녹록지가 않아요. 굉장히 소모적이에요. 미래를 이야기해야 한다”며 “굳이 나누어야 한다면 보수와 진보가 아닌 상식과 비상식으로 나누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제 누군가 물어보면 ‘저는 상식파인데요’라고 말하려고 해요”라고 목소리를 돋우었다.
2012년 5월 30일 부산대 경암체육관에서 열린 ‘안철수 원장 초청 강연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에서도 좌우에 모두 실망한 그의 인식이 잘 드러났다. “한쪽에서는 10년 째 어떤 분(박정희)의 자제(박근혜)라고 공격하고, 그리고 한쪽에서는 지난 5년, 10년 내내 싸잡아서 좌파 세력이라고 공격하고, 벌써 지금 뭐 이런 것들이, 뭐, 뭐, 강한 표현으로 구태가 이어지고 있거든요”라고 말했다. 이에 앞선 4월 3일 전남대 용봉포럼 ‘광주의 미래 청년의 미래’ 특별 강연에서도 안 의장은 “사회적으로 청년 실업 등 불균형에서 비롯된 문제가 있는데, 이를 두고 산업화와 민주화, 보수와 진보의 이념으로 접근하는 경향이 있으나 (한국 사회가) 진보와 보수의 이념으로 해결할 수 없는 시점에 와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그런 이념은 필요 없고 융합적인 사고와 출발과 경쟁의 공정성 보장, 실패자에 대한 배려 등에 눈을 돌릴 새로운 이념과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청춘콘서트’와 부산대·전남대 강연에서 내보인 그의 세상 보는 눈은 SBS TV ‘힐링캠프’에도 고스란히 이어졌다. “우리나라가 낭떠러지로 굴러떨어져 버렸다. 지금 이대로는 안 된다”고 위기임을 강조한 뒤 시대적 과제라는 ‘정의’와 ‘복지’와 ‘평화’를 징검다리 삼아 ‘상식파’에 다시 닿은 것. “보수와 진보 이전에 상식과 비상식을 판단해야 한다. 굳이 얘기하면 나는 상식파”라고 맺었다.
상식. 사람들이 보통 알고 있거나 알아야 하는 지식. 보고 들어 깨달은 지식과 함께 사리 분별 따위가 상식에 들어 있다. 안철수 의장이 스스로 ‘상식파’라 칭하니 일의 이치(사리)에 맞게 말하고 움직이리라 믿는다. 적어도 시민을 총칼로 제압하거나 거짓말을 밥 먹듯 했던 몹쓸 권력자의 전철을 좇지는 않으리라.
허나 나는 여전히 ‘탈이념 상식파’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겠다. 이상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생각이나 견해가 ‘이념’이기에 안 의장이 말하는 ‘탈이념 상식파’도 이념의 범주에 들 수밖에 없지 않은가. 나는 그가 ‘이념’에서 벗어날 게 아니라 두 팔로 힘껏 안아야 한다고 본다. 더 힘껏. 피하지 말고.
물론 쉽지 않을 거다. 안철수 의장이 좌우 이념 논쟁에 예민한 걸 감안하면 쉬 껴안기 어려우리라 헤아려진다. 특히 그는 좌우 이념 다툼을 ‘준동(蠢動)’으로 여겼다. “비유를 들어볼게요. 평온한 평지에 어느 날 벽을 만들어서 그늘과 습지를 조성하면 거기에는 벌레들이 많이 살게 되잖아요. 벽을 없애자고 할 때 그것을 가장 싫어하는 존재는 누구일까요? 바로 벌레들이에요. 멀쩡한 사람들을 억지로 나누는 사람들은 담 밑에서 자기 나름의 이익을 얻기 위한 사람들인 것”이라 했다. 벌레 따위가 꿈적거리는 걸로 본 것 아닌가. 이념 논쟁을 불순하거나 보잘것없는 무리가 법석을 떠는 것으로 치부했다.
혹시 안 의장과 그의 가족에게 ‘좌우 이념 다툼의 상처’ 같은 게 있는 걸까. ‘벌레’에 빗댈 정도로 격렬했다. 이렇다면 두 팔 벌려 껴안기는커녕 그가 너무 단단히 닫히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그에게 투정 좀 부리자. 벌레는 살 만한 곳을 찾아갔을 뿐이라고. 벽 아래 그늘과 습지가 살 만했다고. 먹이 구하기가 쉬웠고, 쉬 번식할 수 있는 등 자기 생태에 걸맞았다고. 자연스레 그곳에서 오래 살게 됐다고.
안철수 의장이야 전지적(全知的) 시선으로 한낱 벌레를 내려다보며 미간을 찡그릴 수 있겠지만, ‘벌레 취급’받는 나 같은 벌레는 사실 기분이 나쁘다. 적확하게는 안 의장이 벌레가 아닌 벽을 세운 사람을 ‘벌레 취급’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모종의 사익을 위해 벽 세우기를 악용하는 몹쓸 집단에 초점을 맞추라는 말씀이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이 자기주장을 논하여 다투는 건 권장할 일 아닌가. 왜? 옳고 그름을 따져 말하기도 전에 총칼 휘두르면 곤란하니까. 그가 곰곰 따져 본 뒤 ‘벽과 벌레와 벽을 세운 이’를 뒤섞지 않는 게 좋겠다. 애꿎은 벌레는 더 잡지 마시길.
지나친 이념 충돌이 빚는 사회적 부작용을 염려하는 안철수 의장의 본뜻을 느끼지 못하는 건 아니다. 공연히 말꼬리 물고 늘어지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늘과 습지에 사는 ‘벌레’도 매우 소중한 우리 삶의 동반자라는 걸 그가 알아주기를 바란다. 간절히.
한반도엔 이념 다툼이 빚은 민족 상처(트라우마)가 깊다. 뼛속 깊은 곳에 아픔이 남았다. 그렇다고 상처를 그냥 덮어 둘 건가. 덮어 두면 사라지거나 시간이 해결해 줄까. 아니, 반드시 다시 들추게 된다. 덮어둔 게 곪아 더 심각한 지경에 맞닥뜨리고 만다. 하니 더 절실하고 더 진지하게 상처를 빨리 들추는 게 낫다. 그리하는 게 옳다. 상처와 냄새가 싫어 덮어 둔 자리를 외면한 채 마르고 닳도록 코를 틀어쥘 건가? 생각(이념) 없이? 되레 이념과 이념 다툼이 빚은 상처와 치열하게 맞서는 게 그토록 바라는 탈이념의 지름길일 수 있다. 매사에 신중한 그가 ‘이념’ 또는 ‘탈이념’을 끌어안고 더 깊이 고민하길 바란다. 진심으로. 더불어 ‘본바탕 그대로 고스란한 보수가 한국에 단 한 번이라도 존재했는지’를 다시 고찰해 보기를 바란다.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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