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노르딕 모델: 북유럽 복지국가의 꿈과 현실
메리 힐슨 지음. 주은선·김영미 옮김. 삼천리 펴냄. 2010년 사월.
20세기 스칸디나비아 문화가 독자의 미학적 가치관을 갖고 있다면, 그것은 무엇보다도 건축과 디자인에서 기능주의 운동으로 표현되었다.……중략……특히 노르딕 기능주의는 건축물의 아름다움과 실용적 사회정책을 결합했다. 새로운 ‘인민의 집’은 비유적으로뿐만 아니라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도 구성되었고, 스웨덴 사회민주주의 가족 정책의 창시자인 알바 뮈르달(1902~1986)은 새로운 형태의 공공주택을 설계하기 위해 건축가 스벤 마르켈리우스(1889~1972)와 공동 연구를 했다(32쪽).
국가 건설과 의회 민주주의를 향한 경로에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노르딕 국가들 사이에는 중요한 유사성이 있었다.……중략……핀란드를 제외하면 눈에 띄게 평화로웠다.……중략……새로 결집한 사회집단의 정치적 요구가 잇따른 정치적 타협과 개혁을 통해 수용됨으로써 정권을 폭력이나 혁명으로 무너뜨릴 필요성이 약해졌다. 국가는 아예 위로부터 사회·경제·정치 개혁을 실행함으로써 스스로의 생존을 보장받고자 했다. 1780년대 덴마크 왕의 토지 대개혁, 1849년 덴마크 헌법 개혁, 1866년 스웨덴 의회제 개혁 등이 그런 예이다. 이런 개혁은 국가를 사회에 최선의 이익이 가도록 기능할 수 있는 온화한 기관으로 바라보게 하는 데 기여했다. 특히 국민적 정체성의 등장과 결합될 경우 더욱 뚜렷했다. 따라서 스칸디나비아에서 국가 민족주의는 무엇보다 농민을 시민으로 바꿔 내기 위한 교육 프로젝트였다(49쪽).
193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노르딕 정치체제는……중략……다당제 안에서 사회민주당이 우세했다.……중략……스칸디나비아 민주주의는 ‘합의 민주주의’라고 일컬어진다. 다수결 원칙이나 적대적인 정치보다 광범위한 합의를 이끌어 내는 메커니즘을 선호했으며, 사회적 분열은 ‘두루 아우르는 연대의식’에 의해 완화되었다(55, 56쪽).
스웨덴 사회민주당은 1932년부터 1976년까지 무려 44년 동안 집권했다(59쪽).
스웨덴 ‘하르프순드 민주주의’는 사용자·정부·노동조합 지도자들이 하르프순드에 있는 총리 별장에 모여 비공식 협상을 통해 중요한 정책 사항을 합의한 행위에서 나온 말이다.……중략……자본과 노동 사이의 새로운 협력 정신을 보여 주는 본보기가 되었다(62쪽).
1960년대 중반까지 스칸디나비아 사회민주당은 모순적인 입장에 처해 있었다. 기록적인 경제 성장과 번영을 구가했지만, 동시에 좌파로부터 사회민주당은 사회주의적 개혁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헌신을 포기하고 자본주의를 개혁하기보다는 그저 관리하는 데 만족한다는 비판을 점점 더 많이 받았다. 사회민주주의 노동운동은 점점 더 기성 정치제도의 일부가 되고 있었으며 노조 지도자들은 풀뿌리 노동조합원의 일상적인 관심사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스웨덴 라플란드에 있는 국영회사 광부들이 1969년 12월에 ‘살쾡이 파업’을 전개하자 그저 묵살될 수 없는 사회민주주의적 계층화에 대한 경고로 해석하게 됐다(70쪽).
1980년대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를 비교한 연구는 이 나라들이 세 기준에서 여전히 합의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 있음을 발견했다. 정치 행위의 기존 규칙에 반대가 적다는 점, 권력 행사를 둘러싼 충돌 수준이 낮다는 점, 정책을 만드는 데 조정 수준이 높다는 점이다(75쪽).
전통적인 블록 구분은 21세기에도 어느 정도 유지되는 것 같다. 좌파 정당은 관대한 복지 시스템을 지키려 하고 다른 정당들은 경제 탈규제와 자유화를 추구한다(76쪽).
스칸디나비아 경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급속하게 성장했고 20세기 말까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생활수준을 누렸다. 이런 성장은 포괄적인 복지국가 유지와 경제에 대한 높은 수준의 정부 개입과 함께 이루어졌다.……중략……1930년대 바깥 세계의 관찰자들은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이 사적 영역과 사회적 재분배를 강력히 결합하면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간에 성공적인 타협을 이루어 냄으로써 ‘스칸디나비아 중도 노선’이라는 관념이 탄생했다고 보았다(82쪽).
(1990년대부터 노키아, 에릭슨 등이 주도하는) 정보통신기술 분야에서 성공을 거둔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과 공교육에 대한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의 결과로 형성된 고숙련 노동력이 큰 역할을 했다. 이런 풍토는 스칸디나비아 경제가 공유한 또 하나의 특징이다(83쪽).
(1950년부터 20년간 스칸디나비아 경제 정책에서 나타난 국가 간 공동 패턴은……) 모든 나라는 완전고용을 주요 정책 목표로 삼았다. 이 시기에 다섯 나라 모두에서 공공 부문이 확대됐고, 관련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조세 부담이 늘었다. 복지국가 확대가 바람직하다는 정치적 합의가 존재했고, 보건의료와 사회보장 부문이 급속도로 증가했다. 모든 국가에서 주택 건설을 위해 대규모 공적 자금이 투입됐다. 여러 도시와 도심이 새로운 설계를 통해 재건됐고 대중교통이 발전했다(103쪽).
1978년 노르웨이에서 이루어진 금융 부문의 효과적인 사회화, 스웨덴과 노르웨이에서 이루어진 산업민주주의 제안이나 임금노동자기금 조성 같은 조치들(109쪽).
사실상 전후에 모든 서유럽 나라들한테 복지국가는 자본주의 경제를 운영하는 통합적인 일부로 비쳤다. 즉 복지는 경제 효율성을 촉진하고 사회관계를 재배열하고 사회적 재생산을 보장하는 힘으로 여겨졌다. 노르딕 정부가 도드라져 보이는 지점은 복지국가를 향한 야심 찬 전망과 좋은 사회를 만들어 내는 스스로의 능력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다. 다른 어떤 민주주의 사회도 노르딕 국가들처럼 인간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국가 개입이 폭넓게 이루어지지는 않았다.……중략……사회는 개입을 향해 전진했고 때로는 막무가내였다.……중략……논쟁을 불러일으킨 개입 행위도 있었다. 논쟁거리였던 출산에 대한 권리나 우생학적 불임시술과 같은 쟁점들……중략……무엇보다 197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가 발흥했지만 복지국가에 대한 정치적 지지는 여전히 강했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해 볼 때, 다른 어느 때보다 오늘날 복지국가 개념이 사실상 노르딕 국가들의 정체성을 이루는 필수 요소가 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124쪽).
1930년대…… 알바 뮈르달과 군나르 뮈르달 부부는 공공 영역과 가족 생활을 사회화하자고 근본적인 제안을 했다. 이 제안은 가족에게 현금과 현물 형태로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공동 육아를 지원해 어머니들을 노동시장에 참여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었다. 이런 정책들은 아이를 갖는 일이 합리적이고 계획된 행동이어야 한다는, 출산 통제에 관란 교육 개선과도 결합하도록 되어 있었다(141쪽).
스웨덴 정부는 1939년 스톡홀름 박람회 이후로…… 밝고 편안하고 합리적인 (기능주의) 디자인을 갖춘 새 주택을 공급했다(144쪽). ‘인민의 집(folkhem)’이었다.
1950년대 스웨덴 사회민주주의 정책이 보여 준 특징. 높은 수준의 안정적인 경제성장은 높은 수준의 복지를 위한 전제 조건이었지만 그 반대 또한 진실이다. 안정적인 경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포괄적인 복지국가가 필요했다.……중략……스웨덴 복지국가는 이른바 ‘기록적인 시기’에 얻은 운 좋은 부산물에 그치는 게 아니라 스칸디나비아가 빈곤에서 풍요로 접어드는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게 된다(145쪽).
핀란드의 1961~1962년 ‘문서 위기(Note Crisis)’…… 어떤 사람들은 핀란드 정치 엘리트들이 소련의 안보 전략에 순응하고 있으며 진실로 독립적이고 비판적인 언론이 없다고 지적했다. 1970년대까지 대중매체에 대한 광범위한 자체 검열이 실시됐는데, 참견과 경고의 수준을 넘어 아첨, 윤색, 진실 왜곡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핀란드의 정치·언론 엘리트들이 권력에 순응했다 하더라도 나머지 핀란드 사회는 ‘핀란드화’하지 않았다. 핀란드는 결코 철의 장막 아래에 놓여 있지 않았고, 검열받지 않는 문화적·정신적 생활을 유지했다(174쪽).
노르딕 국가들에서 유럽연합 가입을 지지하는 가장 강력한 세력은 기업을 대표하는 조직들, 특히 주로 수출품 생산 부문 기업 집단들이었다. 1991년 집권한 스웨덴 우파 정부는 과도하게 규제되고 조세 부담이 과중한 경제를 소생시키는 데 필요한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도입하는 수단으로 유럽연합 가입을 추진했다(190, 191쪽).
1930년대 이후 스칸디나비아는 평등주의와 연대를 추구해 왔다. 이는 서유럽 자본주의와 구별되는 복지 모델, 즉 ‘평등하고 사회민주주의적인 독특한 운명 공동체’와 관련이 깊다. 이러한 ‘복지국가주의’는 정치적 성향을 뛰어넘는 것이었다(193, 194쪽).
스웨덴 관료와 정치 엘리트들은 스웨덴과 유럽연합 정책을 무의식적으로 ‘융합’함으로써 점차 유럽화하고 있다(196쪽).
1945년 이후 경제적으로 ‘기록적인 시기’를 통해 완전고용의 조건이 만들어짐에 따라 노동력이 부족해졌고 많은 스웨덴 기업들은 해외에서 노동력을 충원할 수밖에 없었다. 독일(서독) 같은 다른 유럽 국가와 대조적으로 스웨덴에서 이주 노동자는 ‘임시 외국인 노동자’로 여겨지지 않았고 완전한 시민권 혜택을 받았다(214, 215쪽).
덴마크에서는 통합을 위한 기초로 경제적 자립을 강조하고 이를 달성해야 하는 부담이 이주자들에게 부과된 반면에, 스웨덴의 정책 입안자들은 노동시장과 사회에 흔히 존재하는 구조적 차별을 없애는 데 좀 더 초점을 맞췄다(224쪽).
우파 포퓰리즘 정당의 출현은 기존 이민정책에 대한 도전일 뿐만 아니라, 노르딕 정치 모델에 대한 전면적인 도전이라 할 만하다(238쪽).
대개 사회민주주의 좌파가 볼 때, 노르딕 국가들은 만인을 위한 평등과 번영이라는 사회민주주의 전망을 제시하는 ‘실존하는 유토피아’였다(241쪽).
노르딕 모델이 실제로 스웨덴 모델을 두고 하는 말인지 질문할 정도로 전형적인 노르딕 국가는 늘 스웨덴이었다. 강력한 사회민주주의, 보편적인 복지국가, 중립 외교정책, 계급 타협과 노동시장 합의라는 노르딕 모델의 모든 요소가 별문제 없이 스웨덴 안에 존재하는 것으로 보였던 것이다(2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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