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월드 피난

2012.05.25. 08:48 ㅡ 참여의 희망

eunyongyi 2020. 6. 27. 16:29

■참여의 희망: 광장에서 민주주의를 만나다
김만권 지음. 한울 펴냄. 2009년.

 

이 책. 눈이 번쩍. 2009년 십일월 이일 밤 11시 30분 마지막 쪽을 덮은 뒤 가슴에 가득 차오른 그 든든함. 그 뿌듯함. 세상엔 통찰력 뛰어나고 올곧게 말하는 지은이 같은 이가 있어야 한다. 많아야 한다. 나, 이 책, 곁에 두고 소중히 여긴다.

 

올바른 판단을 하기 위해서 다른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것은 오래된 지혜다. 밀은<자유론>에서 잘못된 이견까지도 귀담아 들어야 한다고 충고한다(163쪽).

다른 목소리를 관용하지 않고 ‘정의’가 아닌 집단 내부의 만장일치만을 위한 행동을 반복함으로써 스스로 ‘사이좋은 우물 안 개구리’가 되는 것이다(161쪽).
카스 선스타인, 우리가 사는 사회에는 많은 견해와 입장이 있는 듯하나 자유로운 사회조차 개인에게 사회적으로 널리 공유된 생각이나 행위패턴에 순응할 것을 강요하는 현상이 있다고. 특히 개인들이 순응할 것을 요구하는 대상에 대해 정보가 없을 경우 개인들은 다른 사람의 말을 그대로 따라간다고. 사회는 순응을 요구하는 대상에 관한 정보를 차단하는 경우가 있는데, 정보 차단을 통해 더 많은 순응을 얻어낼 수 있기 때문. 이런 순응에 대한 압력이 지나치면, 사회가 순응하기를 요구하는 대상에 대한 특정한 정보가 있어 이런 요구가 합리적이지 않다거나 합당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이들조차도 순응하지 않을 때 생길 불이익 때문에 이런 사실을 밝히지 않고 따라가는 쏠림현상이 나타난다. 게다가 사회의 많은 집단들이 자신이 속한 집단의 구성원들이 이미 다 공유하는 정보만을 놓고 논의하는 경향이 있을 뿐 아니라 어떤 특정한 사람이 가진 다른 정보는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때 집단 극단화현상이 나타난다(159, 160쪽).
진정한 권력은 다양한 목소리를 인정하고 그 목소리를 듣는 데서 시작한다.……중략……다양한 견해가 있으면서도 하나의 공적 사안에 대해 함께 행동하는 시민의 수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권력은 점점 더 커지고 확장된다. 2008년 미국 쇠고기 수입 반대 집회가 그러했다.……중략……주권자로서 시민들은 다양성을 수용하는 비판적 집단으로 행위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우리 시민은 낡은 권력 개념을 버리고 새로운 권력 개념을 만들어내고 있었던 것이다.……중략……다양한 견해를 지녔으면서도 공적인 문제를 두고 조화롭게 서로 함께 행동할 수 있는 광장과 거리라는 공간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던 것이다(107, 108쪽)
청계천 개발 때문에 생계를 잃은 이나 삶 터전에서 내쫓긴 철거민의 고통을 쉽게 잊고, 개발의 열매를 탐닉하는 상황에서) 다른 목소리를 내는 이는 “참 특이한 친구도 다 있네”라든가 “잘난 척은 혼자서 다하네”라는 소리를 듣게 마련이고, 운이 좋으면 “생각이 깊구만” 정도의 동정을 얻을 뿐이다(165쪽).
존 롤스는 헌법 질서를 옹호하는 비폭력적 시민불복종 운동이 사회를 무질서에 빠뜨린다면, 그것은 그 운동에 참여한 이들의 책임이 아니라 그 유인을 제공한 권력에 있다고 말한다(145쪽).
한나 아렌트, 권력은 언제나 많은 수의 사람이 그 ‘권력의’ 편에 서 있어야 할 필요가 있는 반면 폭력은 많은 사람들의 지지 없이도 유지될 수 있다. 폭력이 의지하는 것은 도구이기 때문. 폭력은 도구 없이 절대 가능하지 않다(151쪽).
정부는 시민의 지지 없이도 공권력을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순간 권력의 본질은 폭력이 된다. 폭력으로 얻은 권위는 그 폭력이 다하는 순간 사라져버린다. 사실상 권위가 아닌 것이다. 우리는 그런 권위를 공포라고 부른다. 우리 사회에서 정부가 공권력이라는 도구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시민의 지지로 유지되는 모습을 보고 싶다(151, 152쪽).
시끄럽고 복잡한 민주정부가 목소리가 하나인 독재정부보다 번영하고, 제2차 세계대전에서 보듯 전쟁이라는 위기 상황에서도 파시즘, 나치즘, 일본 제국주의 체제에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까닭은 사회 안에 다른 목소리가 있었고, 이런 다른 목소리들이 정보의 폭을 넓혀주고, 중요한 사안을 결정할 때에도 일방적이지 않고 좀 더 신중할 수 있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173쪽).
시민의 건강과 바꿀 수 있을 만큼 중요한 국익은 없다. 그런 상황에서 “위험하면 안 사먹으면 되는 것 아닌가”라는 발언은 생각 없는 관료주의를 상징한다. “빵이 없으면 고기를 먹으면 된다”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말보다 나은 구석이 없다(175쪽).
통신 기술 발달은 다양한 욕구를 반영한 결과다. 다양한 욕구가 있다는 건 다양한 정보가 있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모두가 자신의 욕구에 적합한 정보를 찾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 이런 정보가 교환되고, 논쟁이 되고, 걸러지면서, 인터넷 광장이 때로 시민 간 연대를 형성하는 긍정적 기능을 할 것이다. 잘못된 정보가 줄 수 있는 부정적 기능을 과장하는 순간, 신고자도 없는 정보에 대해 정부가 나서서 정보를 거르고 정보를 퍼뜨린 이를 적극적으로 체포하는 순간, 긍정적 기능을 살려야 한다는 말은 그저 화려한 수식어로 남을 뿐이다(185쪽).
인터넷 광장에서 비밀스런 감찰이 테러나 지능범에 대항한다는 명목으로 가능하게 된다면, 우리 사회는 푸코의 판옵티콘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감시하는 권력이 있다는 걸 알되 그 권력이 실질적으로 나를 바라보는지 모르게 됨으로써 자신을 스스로 강제로 규율하게 된다(190쪽).
실용주의와 같은 발상을 추구할 때 이론적 뒷받침이 중요한 건 명확한 기준이 없을 경우 단순한 도구주의 또는 결과지상주의로 환원되기 쉽기 때문이다(201쪽).
우리 사회 보수 세력의 본질은…… 대개 자유시장을 옹호하는 경제적 자유만을 강조할 뿐, 시장이 규범을 잃지 않고 작동할 수 있도록 돕는 정치적 자유는 원하지 않는다(214쪽).
권위적 정부가 등장해 표현의 자유를 거부하더라도, 공권력이 다른 목소리를 억압한다 해도, 정치 엘리트들이 시민 권력을 무시한다 해도, 시민이 이성과 감성으로 지지하는 민주적 헌법은 변함없이 그 자리에서 공정한 삶의 조건으로 규정한 표현의 자유, 이견의 권리, 시민 권력을 옹호하고 시민이 부정의에 맞서 저항할 정당한 정치적·법적 근거와 도덕적 토대를 제공한다(257쪽).
대표자들은 인민집단이 부여한 권력을 잠시 운용할 뿐이다. 권력을 부여한 인민집단이 사라지는 순간, 그 권력도 사라진다(107쪽).
흔히 투표나 선거를 통해 결정된 사안에 대해서 왜 그렇게 반대하고 말이 많으냐고 말하지만 이런 발언은 민주주의에서 다수자 지배의 원리만을 강조하는 것일 뿐, 다수자의 독재에 반대하는 민주적 발상을 무시하는 것이다(53쪽).
대개 도시국가의 시민에겐 자신의 일생 동안 시민 자격으로 공직에 직접 간여할 수 있는 실질적 기회가 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공직자를 선출하는 방식이 ‘추첨’이었기 때문이다(40쪽).
드워킨은 현대의 정치이론이 인간을 올바른 방식을 처우한다면 근본적으로 평등을 지향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54쪽).
아렌트는<공화국의 위기>(1972)에서 현대 대의 정부가 위기에 처했다고 주장하는데, 그 중요한 이유로 시민의 실질적인 정치 참여를 보장하는 모든 제도적 장치의 상실, 정당의 관료화, 시민들의 모든 의사를 정당이 대표해줄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을 든다(54쪽).
1960년대 무렵까지 민주적으로 발전한 국가에서조차 시민들이 정책을 결정하는 데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소통의 제도적 장치가 사라지고 있었다. 그 중심에는 거대 정당의 등장이 있었고, 아렌트가 지적하듯 정당 조직의 관료화가 있었다(55쪽).
조직이 관료화하면 아무리 민주적인 조직도 결국 몇몇 사람이 조직 전체 의사를 결정한다(56쪽).
정당이 시민들의 의사를 잘 대변할 수 있으니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정치활동을 할 필요가 없다거나 삼가야 한다는 주장은 달리 보면 결국 공적인 기구에서 시민들의 의사표현 통로를 정당이 독점하겠다는 의미다. 이런 의사표현 통로의 독점현상은 정당이 시민들의 의사를 대변해줄 것이라고 시민들 스스로 강하게 믿으면 믿을수록 심화된다. 아렌트는 발전된 대의 민주주의에서 사회 구성원들의 이런 믿음이 너무 깊어 질병 수준에 이르렀다고 지적한다. 이런 깊은 믿음 때문에 시민 스스로 적극적인 정치 참여라는 시민의 덕을 잃어버렸던 것이다(57쪽).
사회에서 경제에 대한 관심과 관료적 행정이 심화할수록 체계는 복잡한 소통과정보다는 간결하고 명료한 효율성 원리를 선호하게 된다. 이런 체계의 작동방식은 상호 이해라는 생활세계의 기반을 무시하고 자꾸 침범하게 되는데, 이런 현상을 생활세계에 대한 체계의 식민화라고 한다. 국가가 이런 체계를 대표하는 기구다. 이런 식민화 현상에 맞서 체계와 생활세계가 상호작용하는 보완관계가 되려면 생활세계가 지속적으로 저항해야 한다.……중략……바로 시민이 주도하는 환경운동, 반핵운동, 여성운동, 권리운동 같은 시민사회운동이다(64, 65쪽).
정치가 시장을 통제해야 하며, 이런 통제를 통해 자본주의적 구속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본다(65쪽).
미국 불법 이민자는 정치적 권리 없이 세금을 내고 살아온 게 사실이다. 이들이 미국 땅에서 구입하는 모든 것에 세금이 붙어 있기 때문이다. 실제 미국 역사를 보면 18세기 말 최초 열세 개 주가 영국과 대립할 때, 이 열세 주가 반발했던 것은 자신들이 영국에 세금을 내고 있지만 어떤 정치적 권리도 없다는 것이었다. 영국이 끝내 요구를 들어주지 않자 이들은 미합중국 독립선언으로 맞섰다(94쪽).
“9만6000명이 넘는 시민이 미국 쇠고기 수입 정부 고시가 헌법 정신에 위배된다고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낸 것 자체가 이들의 정신이 헌법 정신에 근거한다는 증거(103쪽).”
권력을 가진 이들이 법과 제도를 파괴하는 행위가 진정한 반란(10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