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로
서울 지하철 5호선 영등포시장역 2번과 3번 출구 사이로 난 길. 양산로. 이 길 따라 영등포로53길과 만나는 곳까지 죽 걸으면 ‘영등포중앙시장’ 입구에 닿는다.
역 2번 출구로부터 왼쪽 인도로 70미터쯤 가면 ‘○○종합문기사’다. ‘문기사’라는 말뜻을 잘 모르겠으나 간판에 작은 글씨로 ‘제도(製圖)·사무용품 전문점’이라 써 두었다. 사업 규모가 제법 될 듯싶다. 이 점포 앞에 빗물 흘러내리라고 만든 작은 하수구가 있는데 늘 무언가를 태운 흔적이 보였다. 종이 등속을 태운 뒤 하수구로 재를 쓸어 낸 듯했다. 불꽃이 살아 있는 날도 있었다. 유심히 살피니 종이 등속이 맞았다. 냄새가 독한 그을음도 났다. 플라스틱 같은 게 섞인 것 같았다.
‘○○종합문기사’ 사장님이었다. 종이 등속에 불을 놓은 사람.
“뭘 태우시는 거죠?”
2012년 삼월 이십팔일 아침. 그 사장님께 물었다.
“주변 쓰레기 모아서 태우는 거예요.”
그의 대답. 신경 쓸 일 아니라는 듯한.
“쓰레기가 아니라 종이도 있고 플라스틱 같은 게 타는 냄새도 나던데 아닌가요?”
“쓰레기에 비닐 같은 게 섞여 들어가서 그래요.”
“종이나 플라스틱 같은 건 재활용할 수 있게 분리 배출하면 될 텐데 그걸 왜 굳이 태우시나요?”
“…….”
“이런 거 길에서 그냥 태우면 안 되는 거 아시죠.”
“…….”
그의 침묵. 기다렸다. 그의 대답을.
“안 할게요.”
그의 선택. 고마웠다. 그의 도덕을.
2012년 사월 이십오일 아침. 아…… 다시 잿더미. 이제 그와 싸워야 하는가.
체한 듯 답답하다. ‘○○종합문기사’를 지나 150미터쯤 더 가면 ‘보화당약국.’ 이곳으로부터 ‘영등포중앙시장’ 입구까지 150미터쯤 더 가려면 호흡부터 크게 가다듬어야 한다. 먹먹해서다.
그곳엔 식자재를 취급하는 도매점 여럿이 죽 늘어섰다. 온갖 양념과 음식 재료가 끊임없이 들고 난다. 작은 식당을 하는 듯 승용차를 타고 온 이, 여러 식당에 식자재를 배달하는지 큰 짐차를 쓰는 이 등등 삶 빛깔이 짙다. 그 빛깔에 절로 숙연하나…… 그곳 지나는 내 눈엔 자꾸 ‘공유지의 비극’이 솟구친다. ‘양산로 비극’일 터다.
어느 점포가 먼저 시작했을까. 물건을 인도에 내놓았다. 높이 쌓았다. 더 많이 내놓으려 고민한 탓인가. 인도가 찻길 끝으로부터 1미터도 채 되지 않을 만큼만 남았다. 물건이 사람을 찻길로 몰아낸 형국이다. ‘그래도 사람 하나 다닐 공간은 놓아뒀나 보다’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물건 내갈 짐차가 가게 앞에 섰을 때 짐 들고 이리저리 옮겨 다니기 위한 공간이었다. 너비가 삼사 미터쯤 될 인도를 사사로이 점유한 거다.
그래도 물건과 사람 틈을 비집고 걸어보기는 하는데 비 오는 날엔 온전히 찻길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인도에 내놓은 물건이 비에 젖으면 곤란하니 가게마다 천막을 치기 때문. 우산 들고 그 많은 천막 버팀 막대를 모두 피해 지나갈 도리가 없다. 가게마다 짐 내갈 차가 정차한 상태니 결국 사람은 찻길 한가운데로 내몰린다. 추석이나 설을 앞두고 물건이 그야말로 넘칠 때에는 인도가 아예 사라진다. 역시 사람은 찻길로 걸어야 한다.
오래되어 굳어진, 일하기에 편한(?) 줄은 잘 알겠으나 시민이 불편하다. 곤란한 것 아닌가. 밤이 되면 인도에 내놓은 물건을 지키려 천막으로 덮고 끈으로 묶은 뒤 도난 방지용 폐쇄회로(CC)TV까지 켜 둔다. 번거롭지 않은가. 비용까지 들여야 한다. 서글픈 ‘공유지의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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