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처로운 내 ‘유리지갑’
지난 13일부터 2011년 치 연말정산 때 제대로 돌려받지 못한 세금에 대한 환급 신청이 시작됐다. 2006년 이후 정산에서 빠진 것도 신청할 수 있다.
귀가 번쩍 뜨였다. 지난해 원천징수분 정산 결과 6만원쯤을 더 냈기 때문이다. 2010년 치 정산에서도 12만원쯤 더 냈다. ‘혹시 돌려받을 게 있을까’ 하여 환급 신청을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가 이내 가라앉았다.
나는 이른바 ‘13월의 월급’이라는 혜택(?)을 수년째 놓쳤다. 게으른 탓이다. 이런저런 세금 공제 조건을 세심히 살피지 않았다. 공돈이 아니라 더 낸 세금을 돌려받는 것에 지나지 않기에 흥분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사회적 품앗이’에 얼마간 도움이 되기를 바랐다. 정부가 세금으로 나를 비롯한 여러 시민의 삶을 거들어 주리라 믿었다. 내가 품(세금) 들인 것 이상을 갚아 줄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분통 터질 일 많았다. 교통량 예측을 부풀려 적자를 내기 일쑤인 여러 민자고속도로 수익을 세금으로 보전하는 게 분했다. 재정이 곧 바닥을 드러낼 것 같은데 호화 청사를 짓는 몇몇 지방자치단체에 화가 치밀었다. ‘내가 그곳에 그걸 지었노라’는 치적 쌓기에 눈멀어 지역 재정을 나 몰라라 하니 마음이 쓰렸다.
눈요깃감에 허투루 혈세를 쓰는 중앙행정기관이나 지자체를 견제할 ‘납세자 소송제도’가 국회를 맴돌아 애석하다. 행정기관이 제 머리를 못 깎으니 납세자라도 나서야 할 것 아닌가. 특히 ‘유리지갑’을 가진 봉급생활자는 머리를 깎아줄 자격이 넘친다.
여야가 19대 총선 정책 지표를 ‘건설’이 아닌 ‘복지’로 잡아 그나마 다행이다. 앞으로 정당별 진의를 차분히 검증할 일이되 당장은 민의를 따르려는 자세만으로도 기껍다. 멀끔하되 실용성이 떨어지는 건물이나 도로를 더 만드느니 집 주변에 작은 공원을 많이 꾸려 도시 폐활량을 늘려 주기를 바라는 게 요즘 민심이다. 덩치 큰 원자력발전소를 지어 안전 불안을 떠안느니 정보통신기술(ICT)로 전력계통망을 디지털화하는 게 낫다는 게 민의다. 오랜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로 기반시설을 웬만큼 갖췄으니 이제 질 좋은 삶을 고민하자는 뜻이다. 더 이상 밑 빠진 독에 물 붓듯 도로·항만·철도 등에 세금 댈 마음이 없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국가와 사회의 심부름꾼인 정부가 이런 흐름을 두고 ‘정치권의 복지 포퓰리즘’ 운운하는 것은 옳지 않다. 정치권에 투영된 민심을 읽고 어찌하면 재정에 잘 반영할지를 고민하는 게 옳다. 2008~2012년 세제 개편에 따른 세수 효과를 분석했더니 감세 폭이 82조2693억원에 달했다. 이런 돈 가운데 공공복리를 위한 곳에 돌려 쓸 것을 찾는 게 공무원의 올바른 자세 아닐까. 소득세를 한 푼도 내지 않는 성직자에게 세금을 매기자는 제안 같은 것 말이다. 그런 정부라면 아무리 궁해도 ‘유리지갑’을 더 넓게 열 용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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