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편, 명약관화
(※탈고한 때= 2011년 1월 25일 18시께)
“광고 예산을 어떻게 짜고 집행할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굴지의 대기업에서 언론홍보를 총괄하는 A가 한걱정이다. 쌈짓돈이 주머닛돈인 광고 예산으로 새로 등장할 4개 ‘종합편성 방송채널사용사업자(이하 종편)’를 모두 만족시킬 수 없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해서 한두 종편에 광고를 몰아줘 다른 사업자의 곱지 않은 시선을 뒤집어쓸 수도 없는 상황이다. MBC·SBS·KBS 등 지상파 방송사업자가 시주라도 하듯 종편을 위해 조금씩 광고를 덜어 낼 리도 없어 이래저래 A의 고민이 깊었다.
사실 이러한 상황은 불을 보듯 분명하고 뻔했다. 약 8조1000억 원(2010년)인 한국 광고시장이 종편 4개를 더 품어줄 만큼 넉넉하지 않기 때문이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이에 “광고시장을 올해 8조7000억 원(국내총생산 대비 0.74%), 2015년까지 13조8000억 원(1%)으로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으나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게 중론이다.
‘광고시장(총매출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1% 돌파’는 관련 업계의 오랜 염원일 정도로 어려운 목표. GDP가 늘어나는 것보다 광고가 되레 줄어드는 흐름을 보인다는 분석까지 나온 터라 방통위 계획의 실현 가능성을 더욱 떨어뜨렸다. 2010년 기준으로 3조2000억 원쯤 되는 밥상(방송광고매출)에 많아야 숟가락 한두 개를 더 놓을 수 있을 텐데, 네 명(보도전문방송채널사용사업자를 포함하면 다섯)이 함께 둘러앉으려 하니 사달이 나도 단단히 날 전망이다.
특히 한나라당과 방통위가 종편에게 ‘광고 영업을 직접 할 수 있는 길’을 터줄 태세여서 사달의 수위가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를 것으로 보였다. 종편의 광고 직접 영업이 시작되면, 그동안 ‘한국방송광고공사(KOBACO)의 광고판매 대행 족쇄’에 묶여 있던 지상파 방송사업자까지 팔 걷고 나설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 1월 24일 한국언론학회가 주최하고 MBC가 후원해 한국언론재단에서 열린 ‘방송환경 변화에 따른 미디어렙(Media Representative) 도입정책 방향’ 토론회에서 제기된 ‘1사 1렙’에 MBC가 쌍수를 들었다. MBC는 이날 저녁 9시 ‘뉴스데스크’와 25일 아침 ‘6시뉴스매거진’을 이용해 김상훈 인하대 교수(언론정보학과)의 “1사 1렙 체제가 가장 바람직하다”는 의견에 초점을 맞춰 보도했다. 그러나 ‘1사 1렙’은 곧 방송광고 완전 경쟁 시대의 개막을 뜻해 ‘방송 공영성 훼손 우려’를 불렀다. 태생적 한계를 가졌으되 권력과 자본의 입김이 직접 방송에 닿지 않게 얼마간 기여한 KOBACO와 같은 완충지가 사라지는 것에 대한 걱정이다. 따라서 언론계의 ‘제한적 경쟁 체제’에 대한 고민이 깊고, 김민기 숭실대 교수(언론홍보학과)는 ‘1사 1렙을 반기는 MBC를 자기 욕심’으로 풀어냈다. 상대적으로 강한 MBC (방송프로그램 등) 콘텐츠의 힘과 영향력이 민영 미디어렙과 맞물리면, 한국 방송의 미래를 결정할 정도로 큰 파괴력을 발휘한다는 게 김 교수의 시각이다. 스스로를 ‘공영방송’으로 분류해온 MBC에게 공적 책임 의식을 묻는 발언으로 읽혔다.
종편과 지상파 방송사업자의 광고 경쟁이 가열될수록 방송은 물론이고 신문을 포괄하는 전체 언론계의 눈에 핏발이 설 게 자명한 상태다. 핏발은 출범 뒤 3년 동안 각각 4000억~5000억 원씩 손실을 볼 것으로 예상되는 종편에서 더 빨갛게 돋을 것으로 보였다. 이에 MBC를 비롯한 힘 있는 지상파 방송사업자까지 광고 영업을 강화하면, 지역 방송·신문의 생존부터 크게 위협할 것으로 예상됐다. 궁극적으로는 ‘자본이 사회의 공기(公器)인 언론에 큰 생채기를 낼 게 분명하다’는 분석을 낳았다.
자본의 언론 공공성 훼손 조짐은 이미 뚜렷하다. 소비자(시청자) 편익을 저해할 것으로 우려돼 광고를 할 수 없게 했던 ‘전문 의약품’을 TV에 등장시키자는 주장이 고개를 들었다. 방통위도 “주무 부처와 협의해 방송광고 금지 품목을 완화하겠다”고 밝혔던 터라 전문 의약품 광고 허용 논란에 불이 붙었다.
먼저 생존이 급한 몇몇 종편이 ‘전문 의약품’에 군침을 흘렸다. 한 종편은 자사 신문을 나팔수로 삼아 “종편에만 의약품 광고를 허용하라”는 요구까지 내놓았다. 하지만 의약품 광고는 오·남용을 부추길 수 있다는 점에서 비판 수위가 높다. 시민의 건강을 외면한 채 서너 개 민간 방송사업자에 도움이 될 정책을 방통위가 검토하려는 상황이어서 주목됐다. 종편의 눈길은 먹는 물, 알코올 17도 이상 술, 병원·의원 등 이른바 ‘돈(광고비) 많은 곳’에도 꽂혔다. 그러나 여러 병원·의원이 TV 광고에 경쟁적으로 돈을 쓰기 시작하면, 의료비 상승을 불러 시민에 이중고를 안길 개연성이 있어 허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지적이 분출했다.
MBC·EBS·SBS·KBS 등 종합편성을 하는 기존 지상파 방송사업자의 채널번호(6~13) 가까운 곳에 종편을 심으려는 이른바 ‘황금채널 지원 작업’도 가시화할 개연성이 커졌다. ‘황금채널’ 논쟁은 2010년 10월 최시중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이 “종편을 선정한 뒤 행정지도를 이용해 채널(번호)을 관리하겠다”는 뜻을 밝힌 뒤 비판이 일면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하지만 새해 들어 ‘시청자 채널 선택의 편익’을 이유로 들어 다시 여론의 틈새(반응)를 엿볼 조짐이다. 방통위 실무진으로부터 “새로운 사업자(종편)가 (시장에) 정착할 수 있게 (정부가) 지원하는 것이 맞다. “법 테두리 안에서 (종편을 위한) 채널 지원 문제를 검토할 것”이라는 발언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방통위 등의 이 같은 지원을 등에 없고 광고 영업전에서 승리한 한두 종편은 ‘경쟁사업자 삼키기’에 나설 것으로 예상됐다. 신문과 방송을 모두 가진 한국판 ‘뉴스코프’와 ‘폭스TV’의 등장이다. 한국판 언론재벌이 탄생하면 객관적이고 다양한 언로에도 상처를 낼 게 분명해 보였다. 특히 다른 종편을 사들이는 사업자로 크기 위해, 또 시청자 눈길을 붙들기 위해 TV 화면을 노란색(옐로 저널리즘)으로 물들일 개연성이 크다는 걱정이다. 광고 영업에 도움이 될 선정적 프로그램이 쏟아질수록 방송의 공익성도 크게 훼손될 것으로 풀이됐다.
공적 책임을 외면한 채 자본에 휘둘리고 권력에 야합하는 한두 종편이 득세하면, 도미노가 넘어지듯 지상파 방송사업자와 신문의 ‘정론(正論) 직필(直筆) 뿌리’까지 흔들릴 전망이다. 특히 지역 미디어로부터 고사가 시작돼 한국 언론 생태가 송두리째 바뀔 것이라는 예측도 나왔다. ‘돈을 만들지 못하는 순서’대로 보도·시사·교양 방송시간이 오락물에 점령당할 것이라는 얘기다. ‘언론 사유화 저지 및 미디어 공공성 확대를 위한 사회행동’을 비롯한 여러 시민단체는 종편의 등장에 따른 언론 생태 변화 가능성을 위기로 인식했다. 대한항공과 삼양사 등 종편에 참여(투자)하는 기업을 대상으로 상품 불매운동을 벌일 예정이다. 또 방통위원회의 종편 선정 과정을 자세히 들여다보기 위한 정보공개 청구 등 실질적인 ‘개국 저지 운동’을 전개할 태세여서 더욱 시선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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