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피TV
인터넷 프로토콜(IP)을 이용한 TV, 이른바 IPTV에 한창 적응해간다. 본격적으로 리모트 컨트롤러를 손에 쥐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10월쯤이다. 처음에는 버튼이 많아 황망했는데 4개월 정도 이리저리 눌러본 덕에 이제는 ‘느긋하게 보고픈 프로그램을 끌어오는’ 정도가 됐다. 이것 하나로도 놀라운 변화다. 1970년대 김일의 통쾌한 박치기를 보려고 TV 한 대 앞에 동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옹기종기 모여 앉았던 추억을 간직한 터라 그야말로 뽕나무밭이 바다가 된 것 같다.
지난 19일 밤에는 3500원을 내고 영화 ‘아저씨’를 끌어다 보았다. 이날 3500원을 냈으니 이후로 10일 동안 ‘아저씨’를 즐길 수 있는 것으로 아는데, 다시 끌어낼 때마다 추가로 결제되는 듯해 늘 불안하다. 능수능란한 IPTV 시청자가 되기까지 아직 갈 길이 멀다.
사실 아날로그 종합유선방송(케이블TV)을 볼 때에만 해도 버튼 서너 개면 충분했다. 위나 아래 한쪽으로 채널을 바꿔가며 ‘볼만할 것 같은’ 실시간 방송이나 재방송 프로그램을 선택했으니 전원·채널전환·볼륨 버튼이면 그만이었다. 그랬던 게으름뱅이가 이제 ‘아저씨’ 같은 프로그램을 시청하기에 편안한 시간에 불러내고는 한다. 스스로 제법 흐뭇한 시청자이자 능동적인 누리꾼이 된 느낌이어서 뿌듯하다.
그런데, IPTV를 보는 눈살이 늘 편안한 것은 아니다. 때로는 아무 생각 없이 채널을 위나 아래로 죽 훑어보고 싶은데 화면 바뀌는 속도가 늦다. 채널 전환이 늦는다고 해야 겨우 1초도 되지 않는 시간이지만, 리모트 컨트롤을 누르는 엄지손가락은 늘 네댓 번 앞서 나간다.
화면이 멈출 때도 있다. 모 방송사의 인기 다큐멘터리를 끌어내 볼 때였다. 소리는 들리는데 화면이 섰다. 1분 이상 기다렸음에도 화면은 움직이지 않았다. ‘나가기’ 버튼을 눌러야 했고, 다시 그 프로그램을 불러내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이어보기’ 표시가 떴고, 화면이 멈췄던 곳에서 다시 이어지기 전에 ‘흔들면 더 부드럽다는 술 광고’부터 시청해야 했다. 볼 마음이 없었고, 볼 필요도 없던 광고에 노출됐던 것이다.
우연히 서로 다른 방에 놓인 지상파 TV 방송(MBC·EBS·SBS·KBS)과 IPTV의 채널이 겹칠 때에는 돌림노래를 들어야 했다. 지표면을 따라 퍼지는 지상파 TV와 이를 인터넷으로 다시 전송하는 IPTV 사이에 시차가 나기 때문. 뉴스를 볼라치면, 한 문장 정도를 두고 돌림노래 현상을 빚는다. 또 갑자기 볼륨이 커지는 현상이 잦은 등 기술적으로 손볼 게 적잖이 남은 상태다.
지난달 IPTV 시청자(가입자)가 300만명을 넘어섰다. 올해 그 수가 500만명을 돌파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왔다. 시청자를 위한 세심한 기술적 배려(개선)가 더욱 중요한 시점이다.
IPTV 상용 서비스 준비가 한창이던 2008년 10월 28일, KT 경영연구소는 IPTV 가입자 수가 2009년 상반기에 280만, 그해 말에 350만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실제로는 지난해 12월에야 300만명을 돌파했으니 예측치보다 1년쯤 늦었다. 기술을 비롯한 여러 측면에서 IPTV를 제대로 손질할 때가 된 것 아닐까. 기술적으로 조금 모자란 ‘아~이피(IP)TV’ 말고 ‘즐겁고 풍요한 IPTV’를 기대한다.
※추신: 2008년 IPTV 상용 서비스를 준비할 때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은 ‘연도별 일자리 창출 효과 예측치(누적)’를 내놓았다. 2009년 8300명, 2010년 1만5200명, 2011년 2만2600명, 2012년 2만9700명, 2013년 3만6500명이었다. IPTV가 2013년까지 일자리 3만6500개를 만들어낼 것이라는 얘기였다. 당시 방송통신위원회는 ETRI 예측치를 바탕으로 삼아 IPTV를 ‘신성장동력과 일자리 창출 과제’의 첫째로 삼겠다고 밝혔다. 지금쯤 지난해 말까지 IPTV에서 일자리 1만5200개가 새로 생겼는지 점검해야 하지 않을까. 아무리 살펴도 IPTV 3사에 지난 2년여 동안 새로 생긴 일자리 1만5000개는 없었던 것 같은데……. 애초 목표대로라면 올해에도 새 일자리 7600개를 추가해 연말까지 2만2600개에 닿기를 ‘기대’해야 할 텐데, 글쎄… 될까. 2009년부터 2013년까지 5년 동안 IPTV 관련 투자 4조5000억 원(인프라 2조8000억 원, 콘텐츠 1조7000억 원)에 따른 생산유발효과도 8조9000억 원에 달할 것이라는 ‘듣기 좋은’ 예측치도 있었는데, 글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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