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월드 피난

2010.12.27. 18:42 ㅡ 설마 지금도 그 탄을?

eunyongyi 2020. 6. 28. 22:20

박격포와 전자계산기

 

2010년 12월 20일 오후. 한반도를 딛고 사는 사람에게 잊히기 어려울 시간이 됐다.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폭발할 것 같던 순간이었으되 시민은 차분했고, 현명했으며, 냉철했다. 왜 그 긴장이 조성됐는지 알 만큼 알고, 느낄 만큼 느꼈기 때문이리라. 그날 연평도 해상사격훈련에는 155㎜ K-9 자주포, 105㎜ 견인포, 81㎜ 박격포, 20㎜ 벌건포를 동원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런데 81㎜ 박격포라고? 박격포에 따로 시선을 둔 이가 그다지 많지 않았을 것이나 나에게는 매우 특별한 주목거리였다.
바다에 쏘는 사격 훈련에 왜 박격포가 등장했을까. 사실 이 포는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곡사화기인 까닭에 중대나 대대 단위 보병의 고지 탈환전 등을 지원할 때 쓰인다. 사격한 뒤 탄착점 같은 것을 확인하는 데에도 바다보다는 산악지형이 더 쉬웠을 텐데, 왜 박격포를 동원했을까. 상대에게 힘(화력)을 보여주려는 훈련에 재래 화기인 박격포를 동원했다? 역시 꺄우뚱! 쉽고 편하게 이해할 만한 상황은 아니었다.
81㎜ 박격포에 대해 조금 더 알아보자. 81㎜ 박격포는 포 입구(지름)가 대략 어른의 두 손으로 둥그렇게 감싼 정도다. 입구 크기가 그러하니 포탄도 그만하다. 올 7월 유명을 달리한 코미디언 백남봉 씨가 ‘삐유우우~’ 하는 휘파람으로 포탄 날아가는 소리를 흉내 내고는 했던 그 포다. 살상반경은 34미터. 반지름(반경)이 그러하니 포탄이 떨어진 곳으로부터 사방 70미터 안쪽에 있으면 곤란하다. 사실 ‘삐유우우~’ 하는 소리를 듣고 날아오는 포탄을 잘 살피며 피하라는 우스개는 살상반경 등을 감안할 때 81㎜보다 60㎜ 박격포에 가깝겠다. (그렇다고 60㎜ 박격포를 깔보는 것은 절대 아니다. 60㎜든 81㎜든 터지면 사람이 죽거나 크게 다친다.)
여하튼 81㎜ 박격포를 쓰려면 타격할 지점을 정할 관측병, 포탄을 날려 보낼 방향과 거리에 따른 장약(화약) 등을 결정할 계산병, 둘 사이를 이어줄 통신병이 필요하다. 또 겨냥대를 꽂을 탄약수 두 명, 포탄을 넣을 부사수, 조준경을 이용해 실제 발사과정을 지휘할 사수가 있어야 한다. 어떤 이는 술자리에서 “너, 무더운 여름날 뙤약볕 아래서 ‘81밀리 포판’ 들고 뛰어 봤어?”라고 심심치 않게 말하는 모양이던데, “그럼 언 땅에 겨냥대도 꽂아보았겠네?’ 하고 되물어 보시라. 그의 반응이 어떨지 잘 살피면 제법 재미있겠다. 그가 진짜 포판 들고 뛰어보았는지 살짝 느낌으로 엿볼 수 있을 테니까. (^^;)
나는 계산병이었다. 관측병이 무전으로 불러준 지역(표적)에 81㎜ 박격포 ‘하나 둘 삼’포(3대)의 포탄을 떨어뜨리기 위해 열심히 계산했다. 수학을 잘해서가 아니라 지도에 찍힌 점을 볼 줄 알고, 전투교범에 따라 만든 계산판을 쓸 줄 알면 됐다. 실제로 이등병 시절 자대(自隊)에 가자마자 중대 행정반에 앉아있던 나에게 화기소대 선임하사가 벽에 걸린 지도에 펜으로 점을 하나 찍더니 “야, 너 이 점 보여?”라고 물었고, “네, 보입니다!”라고 목청껏 외쳤을 뿐이었다. 그게 내가 81㎜ 박격포 계산병을 맡은 덜어낼 것 더할 것 없는 진짜 이유였다. (나는 계산병이어서 언 땅에 겨냥대를 꽂거나 뙤약볕 아래서 포판·포열을 들고 내달릴 일이 상대적으로 많지 않았다. 포를 잘 알아야 계산도 잘 한다는 이유로 포판·포열·포다리를 들거나 겨냥대 여러 자루를 들고 뙤약볕 아래를 아주 ‘조금’ 뛰어보았을 뿐이다. 하지만 언 땅에 꽂히지 않은 채 픽 쓰러지는 겨냥대가 어찌나 원망스럽던지!)
제대할 날(1991년 8월)이 조금씩 가까워지자 나에게도 계산판을 넘겨줄 부사수가 생겼다. 공과대학을 다니다가 입대한 친구였는데, 겅중거리며 뛰는 모습 등으로 이른바 ‘고문관’ 취급을 받았다. 군대 생활에 어수룩해 보였던 그는 사실은 매우 혁신적인 사람이었다. 전투교범과 계산판을 가지고 이것저것 생각해보더니, 휴가를 다녀오는 길에 전자계산기를 하나 사들고 왔다. 1990년쯤에 용산전자상가 등에서 팔았던 보통 전자계산기보다 ‘버튼이 조금 더 많은 것’이었다. 그는 그 계산기를 이용해 버튼 몇 번 누르는 것으로 사격 방향과 거리 등을 결정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었다. 매우 놀라웠다.
요즈음 여기저기서 “혁신, 혁신” 하던데 혁신은 결코 거창한 게 아니다. 이것저것 없던 틀을 새로 만들기보다 사람에 주목해야 한다. 지금 군대에서 그 ‘혁신적 고문관의 81㎜ 박격포 계산 체계’가 쓰이고 있을까.


참, 덧붙일 것 하나. 그대로 믿기 어렵겠지만, 내가 군대에 있었던 1989년 5월부터 1991년 8월까지 사격했던 81㎜ 박격포 고폭탄(포탄) 가운데 ‘1930년대 말에서 1950년대 초’에 만든 게 섞여 있었다. 꽤 많이! 탄통에서 포탄을 꺼낸 뒤 장약 등을 뜯어내면서 ‘1938년’과 ‘1941년’ 등으로 적힌 생산연도를 들여다보며 적잖이 놀라고는 했다. 1990년을 기준으로 삼을 때 거의 50년이나 묵은 포탄으로 사격을 하니 웃지 못할 일 많았다. (살상반경이 34미터나 되는 포탄이니 정말 웃지 못할 일이었다.) 특히 포탄을 날아가게 하는 장약이 들쭉날쭉했다. 양이 적은데도 멀리 날아가기에 다음에 쏠 탄에서 장약을 더 많이 뜯어냈음에도 불구하고 표적을 지나 아예 산을 훌쩍 넘어가는 게 아닌가. 그래서 우리는 케케묵은 그 탄을 ‘지랄탄’이라고 불렀다. 다른 중대 화기소대에서는 포열 안으로 들어간 탄이 발사되지 않아 그야말로 혼비백산한 일도 있었다고 들었다. 설마 지금도 그 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