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법, 무엇을 어떻게 바꾸어놓을 것인가
(※사단법인 여의도클럽의 계간지 ‘여의도저널’ 2009년 가을호에 기고한 글. 탈고한 날이 9월 10일인 점을 감안하시기 바랍니다.)
정부와 한나라당이 ‘방송법 일부 개정법률안’을 필두로 하는 이른바 ‘미디어법(신문법·방송법·인터넷멀티미디어방송사업법)’을 이용해 방송 뱃머리를 보수 진영 쪽으로 돌린 채 돛 한가득 바람을 실어줄 태세다. 2009년 10월 말께 헌법재판소가 야권의 ‘미디어법’ 국회 대리·재투표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과 투표 위법성 관련 권한쟁의심판 청구에 마침표를 찍을 예정임에도 불구하고, 2009년 7월 27일 ‘방송법 일부 개정법률안’을 정부로 이송한 데 이어 같은 달 31일 공포하는 등 법 시행을 이미 정해진 일로 만들려는 뜻을 분명히 내보인 것.
궁극적으로 2009년 11월 1일부터 시행하려는 여권의 ‘방송법 일부 개정법률안’과 시행령은 ‘보수 진영에 편안한 방송 환경’을 조성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언론·정치계 중론이다. 국민도 대체로 그렇게 인식하는 것으로 여러 여론조사에서 확인됐다. ‘미디어법’을 ‘언론 악법’으로 규정해 ‘원천 무효’라는 데 뜻(서명)을 보탠 이가 2009년 9월 7일을 기준으로 130만 명을 넘어섰고, 서명부가 헌법재판소에 제출됐다.
그러나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조선·중앙·동아일보를 비롯한 몇몇 신문사가 종합편성이나 보도 전문 방송(채널)에 발을 들여놓기 위해 여러 대기업과 ‘연횡’을 꾀하는 등 여권의 ‘미디어법’에 기대 영향력을 넓히고, 새로운 수익을 창출하려는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다. 각자의 이해타산에 따른 실질적 움직임이 한국 미디어 환경을 어떻게 바꾸어놓을 것인가, 사회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신문과 방송 겸영 허용, 대기업의 방송 진출 제한 완화
지상파 방송, 종합편성·보도 전문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를 소유할 수 있는 1인 지분 한도를 49%에서 40%로 내렸다. 또 대기업, 일간신문, 뉴스통신이 지상파 방송을 가질 수 있는 한도를 20%에서 10%로 조정했다. 이들이 소유할 수 있는 보도 전문 PP 지분도 30%까지로 바꾸는 등 진입 장벽을 낮췄다.
신문과 방송 겸영, 대기업의 방송 진출 등 ‘방송의 자유와 독립을 보장’하고, ‘민주적 여론 형성’을 꾀하는 데 필요한 바탕에 변화가 일어난 것. 이 변화가 방송의 독립성을 훼손하거나 크게 흔들 것이라는 논쟁은 여전히 뜨겁고, 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은 ‘무효’를 선언한 상태다. 방송법 개정을 둘러싼 정치적 이해와 가치관 충돌의 핵심인 셈이다.
방송법 개정을 밀어붙이는 여권의 주장은 ‘방송의 산업화’에 초점을 맞춘 것이고, ‘일자리 창출’에까지 닿는다. 과거에 신문과 방송의 겸영을 금지하고, 대기업 등의 소유를 제한한 것은 여론 다양성과 공정성을 확보하려는 것이었으되, 지금은 방송 시장이 개방돼 매체와 국경을 초월한 미디어 산업의 국제화 경쟁이 치열해진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신문과 방송 겸영 금지를 풀고, 소유 제한을 완화하며, 기업 자본의 방송시장 진입을 장려해 미디어 산업 경쟁력을 확보하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여권은 국내 지상파 방송사 가운데 세계 100대 방송사에 포함되는 곳이 없다는 논리까지 붙이며, 이를 ‘방송의 위기’로 풀어냈다. 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방송사업 진입 장벽을 낮추고, 신문사의 뉴스 제작 역량과 대기업의 자본력을 수혈하자는 주장을 잇댄 것은 여권의 자연스런 선택이었다.
하지만 여권의 ‘산업화 논리’는 일자리 창출 관련 통계 오류, 보도 매체와 오락 미디어의 혼선 등으로 빚어낸 허구였음이 드러났다. 궁극적으로 종합편성·보도 전문 PP에 관심을 가졌거나 과거에 방송사를 보유했던 일부 신문사와 대기업이 ‘권토중래’할 길을 튼 것에 불과하다는 해석이 잇따랐다. 여론과 야당의 반대가 분출했고, 헌법재판소에 옳고 그름을 따지러 간 상태다.
여론·야권의 반대와 헌법재판소 판결 여부의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지상파 방송은 물론 종합편성·보도 전문 방송채널사용사업을 암중모색하는 몇몇 신문사와 대기업이 생겼다. 그 움직임이 점점 활발해질 뿐만 아니라 몇몇 신문사는 머뭇거리는 대기업들에게 연횡을 제안하는 등 매우 적극적이다. KT, SK텔레콤 등 인터넷(IP)TV 사업을 시작해 종합편성이나 보도 PP를 운영할 가능성이 있는 대기업들은 물론이고 은행, 중소기업, 지역 신문사에까지 방송 진출을 위한 자본투자를 종용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신문사는 방송 진출 밑천을 마련하기 위해 과도한 광고 영업을 전개해 눈총을 사기도 했다. 또 자산을 매각해 자금을 마련하려는 신문사가 있는 등 국내 방송시장 규모에 여유가 없어 새로운 사업자가 등장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애초 예상을 깰 전망이다. 진흙탕 싸움까지 일어날 조짐이고, 결국엔 자금 확보능력이 성패를 가를 것으로 읽힌다.
종합편성 PP를 기준으로 방송에 진출하려면, 초기 자본금으로 3000억~5000억 원이 필요하고, 4~5년간 매년 1000억 원 이상을 운영경비로 쓰며 버틸 수 있어야 한다는 게 방송계의 중론. 더구나 지난해 국내 방송사업 총매출액인 8조6213억 원 가운데 지상파 3조3917억 원, 종합유선방송(SO) 1조6795억 원, PP 3조537억 원 등으로 시장이 견고하게 안정화한 상태여서 섣불리 발을 들여놓을 수 없는 상황이다. 가장 큰 수익원인 광고 수입도 2007년부터 1530억 원(4.5%↓) 줄었고, 지상파 방송사 대부분이 적자를 면치 못한 것도 뒷덜미를 부여잡는다.
상황이 이렇다면, 조선·중앙·동아일보는 물론이고 한국경제신문, 매일경제신문 등 그 어느 곳이든 방송 사업을 향한 독자 행보가 어려워 보인다. 따라서 위험 부담을 줄이기 위한 몇몇 신문사의 기업을 향한 구애(투자유치)가 ‘기업 입맛에 맞는 뉴스’와 ‘몇몇 언론의 정보 과점’을 잇는 생태계를 만들 것으로 풀이된다. 신문사와 기업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는 방송 생태계가 형성되면, ‘이윤 추구’라는 피할 수 없는 자본의 구조적 목표에 닿아 방송의 독립성을 크게 훼손할 게 자명하다.
그러나 방송 독립성 훼손을 견제할 도구는 빈약하다. 지상파 방송 등의 주식이나 지분을 소유하고자 하는 일간 신문사의 경영 투명성을 위해 전체 발행부수, 유가 판매부수 등을 방통위에 제출해 공개하게 했으나 공시하는 발행부수 자체의 신뢰도가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일간 신문의 구독률이 20% 이상일 때 지상파 방송사업 등에 진입할 수 없게 한 것도 당장 적용할 대상을 찾을 수 없는 상태다. 있으나 마나 한 규제가 될 개연성이 크다.
또 대기업, 일간신문, 뉴스통신이 2012년 12월 31일 이전에 지상파 방송 사업자의 최다 출자자가 되거나 경영권을 실질적으로 지배할 수 없도록 한 것도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당장 종합편성이나 보도 전문 PP를 향한 길이 트인 것만으로 충분한 데다 덩치 큰 지상파 방송 사업자를 지금 떠안는 게 도박이기 때문. 예전에 보유했던 특정 방송사를 되찾고 싶은 바람이 있다면, 방송시장 흐름을 보아가며 2012년쯤 다시 생각해봐도 충분할 것이다.
굳이 2012년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자본만 있다면 지금도 얼마든지 지상파 방송사 지분을 확보할 수 있다. 상대적으로 규제 수위가 높은 현행 방송법의 ‘소유 제한’ 규정을 무색하게 하는 기업과 신문의 지상파 방송사 주식 보유 사례가 많다.
예를 들어 남양건설은 1994년 9월 30일 ‘광주방송’ 주식 24만주(3%)를 취득한 데 이어 97년 12월 27일 4만주(0.5%)를 더 사들였다. 또 2006년 9월 25일 ‘광주매일신문’을 경영하는 광주매스컴 주식 100%를 사면서 신문·방송을 모두 소유했다. 허재호 대주그룹 회장도 2001년 5월 18일 ‘광주방송’ 주식 8만주(1%)를 취득했고, 같은 날 허 회장이 주식 100%를 가진 동양상호저축은행도 ‘광주방송’ 주식 14만주(1.75%)를 압류했다. 허 회장은 2003년 11월 7일 광주일보 회장 겸 발행인으로 취임, 방송법 소유제한 규정을 어겼다. (그는 지난 7월 방송통신위원회의 시정명령 사전 통지에 따라 ‘광주일보’ 회장직을 내놓았다.)
‘대구문화방송’ 주식을 소유한 쌍용도 ‘외국 정부, 단체, 외국인 등이 대주주인 법인의 지상파 방송사 주식 소유를 금지한’ 방송법을 2006년부터 위반했다. 기존 법에 따라 최다액 출자자일 경우를 포함한 외국인이 대구문화방송 주식 ‘100분의 50 이상’을 소유할 수 없으나, 2006년 5월 모건스탠리 계열 사모펀드인 ‘MPSE SSY 홀딩스 AB’가 대구문화방송 주식 1만3871주를 보유한 쌍용의 주식 69.53%를 취득하면서 법을 어긴 상황이 빚어졌다.
옛 방송위원회는 이에 2006년 12월과 2007년 7월 두 차례나 ‘외국자본 출자·출연 금지법령 위반 상황’을 시정할 것을 명령했다. 쌍용은 이에 응하지 않았다. 지난해 10월에는 방송통신위원회가 세 번째 시정명령을 내렸는데, 역시 시정하지 않았다.
이들은 ‘기존에 소유제한을 초과해 지상파 방송의 주식이나 지분을 보유한 방송사업자에 대해 경과조치를 둔다’는 정부 여당의 ‘방송법 일부 개정법률안’ 부칙에 따라 면죄부를 얻을 것으로 보인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족벌신문이나 대기업 등의 간섭으로부터 여론 다양성을 확보·보장하기 위해 ‘미디어다양성위원회’를 설치한다거나 ‘시청점유율 제한제도’를 도입한다는 등 ‘방송법 일부 개정법률안’의 이런저런 규제 방안이 실질적인 효과를 발휘할 것으로 기대되지 않는다.
연합뉴스가 보도 전문 채널에 관심을 보이는 것도 방송계 판도 변화의 큰 변수다. 연합뉴스의 보도 전문 채널 진출이 ‘YTN 민영화’라는 연쇄반응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 YTN 민영화 논쟁이 바람을 타기 시작하면, 자금을 준비해 팔 걷고 나설 신문사를 서너 손가락만으로 충분히 꼽을 수 있을 전망이다. 이럴 경우, 정부 여당의 ‘방송법’을 비롯한 ‘미디어법 밀어붙이기’의 실질적인 목표는 ‘YTN을 특정 신문사에게 넘겨주는 것’이라는 언론계와 방송계의 기존 예측·분석에 더욱 힘이 붙을 게 분명해 보인다.
한편, 지상파 방송사업자와 종합유선방송사업자 간 겸영이나 주식·지분 소유 허용도 개정안에 포함됐다. 주식이나 지분이 ‘100분의 33을 초과’하지 않으면 된다. 따라서 지역 MBC와 민영방송 등에서 종종 일어나던 교차 소유가 적법해질 것으로 풀이된다.
방송광고 사전규제, 사후규제로 전환
2008년 6월 26일 헌법재판소가 방송광고 사전심의를 ‘위헌’이라고 판결해 방송법 관련 규정을 삭제했다. 방송프로그램 내용 심의처럼 사후에 심의해서 책임을 묻는 체계로 바꾼 것. 방송사업자 ‘스스로’ 사전에 심의하는 게 전제조건이다. 즉 광고를 방송하기 전에 자체 심의해 문제가 될 만한 내용을 내보내지 말라는 얘기다. 관련 기관이나 단체에 심의를 위탁할 수도 있게 했다.
사후 규제로 전환한 만큼 위반행위의 책임을 따져 묻는 방법도 손질했다. 허위·과장 등 시청자가 잘못 인식할 수 있는 광고를 방송한 사업자에게 3000만 원 이하 과태료에 처하기로 하고, 시행령에 부과 기준을 1000만 원으로 설정했다. 방송사업자에게 심각한 부담을 줄 만한 정도는 아니라는 게 방통위의 판단이다.
방송광고 심의 규정 및 협찬고지 관련 규칙을 위반하거나 시청자불만처리결과에 따라 제재가 필요하면, 5000만 원 이하 과징금을 부과한다. 과징금 산정기준으로는 방송사업자에 3000만 원, 중계유선방송사업자 등에 2000만 원을 적용하기로 했다. 과징금을 부과하지 않고 ‘시청자에 사과’ 등을 명령할 수도 있게 했다.
과징금도 규제 실효성을 높이려는 정도에 불과하고, 방송사업자에게 큰 부담을 주는 수준은 아니라는 게 방통위의 설명이다. 방송사업 규모에 따라 차이가 있게 마련이나 과징금이 두려워 방송광고 편성방향에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을 것으로 읽힌다.
방송광고 심의제도 변화와 함께 간접광고, 가상광고를 허용한다. 시청자 편익 훼손 논란을 빚기도 했던 광고기법이지만 정부 여당의 ‘미디어 산업화 논리’에 걸맞았다.
다만, 축구 등 운동경기를 중계하는 방송프로그램에만 가상광고를 할 수 있게 했다. 가상광고가 시청자의 시청 흐름을 방해해서는 안 되며, 경기장에서 뛰는 선수·심판·관중 위에 광고를 노출해서도 안 된다.
또 노출시간이 전체 방송시간의 5%를 초과하거나 TV 수상기 화면의 4분의 1을 넘어서지 말아야 한다. 이동형 디지털 멀티미디어 방송(DMB)의 경우에는 가상광고가 화면의 3분의 1을 초과할 수 없게 했다.
광고 사전심의 폐지에 따라 가상광고 편성·내용의 책임은 방송사업자에 있다. 심의 규정 위반의 책임을 묻기 위한 것인데, 3000만 원 이하 과태료와 5000만 원 이하 과징금 등이 얼마나 효력을 발휘할지 지켜볼 일이다.
한때 방송 공익성 훼손의 첨병으로 인식되던 간접광고도 허용하되 오락·교양 프로그램에 할 수 있게 했다. 보도, 시사, 논평, 토론처럼 객관성과 공정성을 바탕으로 하는 프로그램에는 여전히 적용할 수 없다. 하지만 인기 오락 프로그램 전체 방송시간의 5%까지 상표와 로고를 노출할 수 있어 소비자 신뢰도를 높일 개연성이 한층 커질 전망이다. 방송 화면의 4분의 1(이동형 DMB는 3분의 1)을 상표나 로고로 채울 수 있는 것도 활용할 만한 가치가 있는 새 광고기법으로 풀이된다.
특히 시행령에 ‘제작상 불가피한 자연스러운 노출일 경우에는 간접광고로 보지 않는다’는 덧글(규정)이 달려 눈여겨볼 만하다. 또 간접광고 규정을 어긴 듯하지만 “시청자의 원활한 시청흐름에 방해되지 않았다”거나 “광고를 포함한 방송프로그램에서 상품 등의 구매·이용을 권유하지 않는” 등 법에 정한 바대로 귀나 코에 건 뒤 규제기관을 잘 설득한다면, 그나마 얼마 되지 않는 과태료나 과징금까지 피할 여지가 충분해 보인다.
신문사는 걱정부터 앞선다. 가상광고와 간접광고가 신문광고시장을 잠식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 당장 가상광고가 연간 약 300억 원, 간접광고가 약 1900억 원대 시장을 형성해 신문광고를 위협할 전망이다.
방송사업자에게 광고를 중지하게 하거나 허가기간을 단축할 수 있는 사후 규제 근거도 마련했다. 방송사업자가 허위나 부정한 방법으로 허가·변경허가·재허가를 받았을 때 사후에 광고 중단 조치와 허가·승인기간을 단축하겠다는 것.
방통위는 이에 대해 ‘허가·승인·등록을 취소하거나 6개월 이내로 방송 업무의 전부나 일부를 정지하게 명령’하는 기존 규제가 현실적으로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측면이 있어 광고 중지 등과 같은 실효성 있는 사후 규제 수단을 꾀하는 것으로 설명했다. 허가 취소 등으로 규제하면 시청자에게도 피해가 미칠 수 있다는 논리다.
방통위의 이러한 논리는 ‘간섭’으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다. 사후 규제를 강화할수록 ‘언론 장악 시도의 개연성’이 커질 것이기 때문. 더불어 일부에서는 방송사업자와 광고주 간 사적 계약에 따른 광고를 행정기관의 방송 규제 수단으로 삼는 게 ‘행정권 남용’을 부를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기도 했으나, 시청자 편익을 보호하고 방송의 공적 책임을 구현하기 위한 선택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방송사업 회계‘분리’제 도입 토대 마련
방송통신위원회 내부 훈령으로 규정했던 ‘방송회계제도’를 상향 입법해 구체적인 회계정리 기준을 대통령령(시행령)으로 마련한다. 매년 말 그해 재무제표(손익계산서, 대차대조표 등), 감사보고서, 주주명부 등 ‘재산상황’과 함께 TV, 라디오, 인터넷 등 사업별 회계를 따로 제출하는 ‘회계분리제’ 도입을 위한 밑돌을 놓은 것.
‘방송사업 회계분리제’는 방송 규제의 새로운 출발점이자 아킬레스건이다. 전기통신사업에 따른 통신사업 회계분리가 거의 모든 금지·위반행위를 제재(과징금 등)하는 바탕이라는 점에서 방송계에서 찾아보기 어려웠던 규제가 등장할 것이다.
방통위는 회계분리를 이용해 ‘우월적·지배적 영향력을 바탕으로 불공정한 콘텐츠 이용계약을 강요하거나 경쟁사업자를 압박하는 행위’를 규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정부가 인터넷(IP)TV 사업자를 포함한 모든 방송사업자와 방송 콘텐츠·프로그램 제공업자 간 거래 원가 정보에 근접하면서 규제력에 힘이 붙는 구조다. 방통위는 이 제도를 활용해 방송사업자 간 공정경쟁 환경을 조성할 계획이다.
방통위는 2008년 12월, 이미 ‘방송사업자 회계처리 및 보고지침(고시)’을 준비해 시행했다. 올해에는 ‘방송사업 회계분리제도’를 도입하는 게 목표. 변호사, 회계사 등 회계분리제를 입법하고, 집행할 전문가를 뽑았다.
제도가 도입되면, 모든 방송사업자는 통신사업자처럼 TV·라디오·인터넷·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 등 사업 분야별 유·무형 설비를 포함한 자산, 영업 수익과 비용, 영업 외 비용 등의 회계자료를 따로 처리해 방통위에 내야 한다. 방송 수신료, 광고수익, 프로그램 판매수익도 세분화해 제출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1개 법인에 속한 지역 방송사의 회계도 분리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들은 이미 올 1월부터 ‘전기통신사업회계분리기준’에 준용해 방송과 통신을 결합한 상품의 회계를 따로 정리해 보고했다.
통신사업 회계분리제도는 KT와 같은 기업의 경쟁사 압박행위를 막는데 쓰였다. 예를 들어 시외전화 시장경쟁이 달아오르기 시작했을 때, KT가 시장의 90% 이상을 점유하던 시내전화 사업 수익을 이용해 시외전화 부문 판촉비용을 보전해가며 다른 시외전화사업자를 압박하지 못하도록 회계를 ‘분리’했다. 방송사업에도 마찬가지로 적용·활용되고, 특히 정부가 방송사업 원가에 근접할수록 ‘방송통신진흥기금’을 출연하거나 ‘보편적 방송통신서비스 기금’을 부과하는 게 한결 수월해질 것이다.
종합유선방송사업자가 전기통신사업 허가를 얻어 초고속 인터넷 상품을 내놓고, 이를 유료방송과 결합해 판매하는 등 시장의 방송·통신 융합 현상도 ‘방송사업 회계분리제’ 도입을 가속화하는 요인이다. KT나 SK와 같은 통신사업자가 대표적인 방송·통신 융합 상품인 인터넷(IP)TV로 징검다리를 놓아가며 방송시장으로 건너가는 상황도 회계분리제 도입에 힘을 더하고 있다.
IPTV사업법, 방송 규제 완화의 첨병
대기업, 신문, 뉴스통신이 종합편성이나 보도를 전문으로 편성하는 ‘인터넷 멀티미디어 방송(IPTV) 콘텐츠 사업자’의 주식·지분을 ‘100분의 49’까지 열었다. 외국 자본의 출자·출연도 ‘100분의 20’까지 가능하다.
정부 여당의 이른바 ‘미디어법’ 개정작업에 포함된 ‘인터넷 멀티미디어 방송사업법’ 개정안이다. 대기업 등이 소유할 수 있는 종합편성·보도 매체의 주식 소유 비율이 방송법 개정안에 정한 것보다 높다. 이제 막 IPTV를 도입한 까닭에 시청자와 공익에 미치는 영향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배경이 깔렸다.
IPTV 콘텐츠 사업자는 ‘IPTV의 PP’다.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가 방송프로그램을 종합유선방송사업자 등에게 공급하는 것처럼 IPTV제공사업자에게 방송프로그램, 주문형 비디오(VoD), 인터넷 쇼핑 등을 제공한다. 대기업, 신문, 뉴스통신은 이처럼 ‘거의 PP와 같은’ IPTV 콘텐츠 사업에 한결 수월하게 진출할 수 있을 전망이다.
정부 여당은 이와 관련, ‘미디어 융합환경에 부응하고, 국제적인 시장개방 조류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는 입법취지를 내놓았다.
그러나 돋우어볼 것은 ‘PP와 IPTV 콘텐츠 사업자’가 비슷한 것처럼 ‘방송법과 IPTV사업법’이 닮은 꼴이라는 점이다. 관련법 주관 기관인 방송통신위원회도 ‘방송법을 준용한 IPTV사업법·시행령’ 입법 작업을 했다. 때에 따라서는 ‘IPTV사업법과 방송법 간 형평성’을 고려한 방송법 개정작업도 선보였다. 예를 들어 방송법에 따라 PP로 등록한 사업자는 KT, SK브로드밴드 등 IPTV 제공사업자에게 방송프로그램을 포함한 콘텐츠를 제공하는 사업자로 큰 어려움없이 등록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 두 법이 같은 규제 철학을 바탕으로 삼아 하나가 될 개연성이 크다. 따라서 정치·사회 환경에 민감한 ‘방송법 개정’에 앞서 ‘과감한 IPTV사업법 개정작업’을 감행하는 사례도 빈번할 것으로 우려된다.
방통위는 기존 방송법과 IPTV사업법을 ‘방송통신기본법’, ‘방송통신사업법’ 등으로 통합하려는 목표도 세웠다.
정부 여당의 방송법 일부 개정안에는 이밖에 공익채널을 운용하지 않는 종합유선방송사업자와 위성방송사업자에게 ‘3000만 원 이하’ 과태료를 물리는 규정이 담겼다. 그동안 공익채널을 의무적으로 운용하게 했으되 이행하지 않는 사업자를 규제할 처분조항이 없었는데, 앞으로 책임을 묻겠다는 것. 종합유선 등 유료방송사업자로 하여금 상업적 수익을 내는 채널뿐만 아니라 사회·문화적으로 유익한 채널을 편성해 ‘최소의 공익성’을 확보하는 게 규제 목표다. 다만, 과태료 부담이 적어 실효성을 담보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채널 자원 낭비 논쟁’을 부르기도 하는 공익채널 방송프로그램의 질적 향상 여부도 규제 적정성을 구현할 요건 가운데 하나다.
새로 허가하거나 승인하는 방송사업자 납입자본의 10%까지 방송발전기금에 출연하게 하는 근거를 마련했다. 종합편성 PP도 방송광고 매출액의 6% 안에서 방송발전기금을 내도록 했다. 종합편성 PP가 유료방송 의무 송출 채널이고, 보도 프로그램까지 편성할 수 있어 사회에 미칠 영향력이 커 이익 환수 차원에서 방송발전기금을 징수해야 한다는 논리다. 방송사 경영 상황과 사정에 따라 유동적으로 기금 징수 비율을 정하던 데서 완전하게 벗어날지 주목된다. 이럴 경우 국민의 보편적 방송 시청권 확보와 방송통신 기술과 산업 발전 자금으로 쓸 기금이 조금 늘어나는 효과가 기대된다.
또 한국방송공사(KBS)의 경영목표·예산·인력·조직·시설 등을 포함하도록 ‘명시’한 경영(운영)계획서를 받기로 했다. 정부 여당의 방송 규제 강화의지를 엿보게 하나, ‘방송 장악 시도’로 불씨가 옮겨 붙을 개연성이 있다.
글, 이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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