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곱나 일이 곱지 (1) 이창희
2009년 5월 14일(목) 오후 4시 48분, 전자신문 인터넷 판에 ‘공공기관 ARS 개선된다’는 기사가 떴다.
기사는 이랬다.
공공기관 ARS 개선된다
전자신문 IT/과학 | 2009.05.14 (목) 오후 4:48
(http://www.etnews.co.kr/news/detail.html?id=200905140221)
3분 이상 기다리고, 절차가 복잡해 불편을 초래했던 공공기관 전화 자동응답체계(ARS)가 개선된다.
14일 방송통신위원회는 공공기관별 ARS 운영실태를 점검한 결과, 자동응답 과정이 평균 6∼7단계나 되는 데다 상담원과 통화하기가 불편해 이달 안에 개선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자동응답 단계별로 기다리는 시간까지 통화요금이 부과되는 등 이용자 불만이 많았다는 것. 특히 통화하는 방법도 복잡해 노령층이 이용하기가 어렵다는 지적도 많았다고 덧붙였다.
ARS(15××-××××)는 일반적으로 유료다. 유선전화로 180초 동안 통화할 때 평균 39원(이동전화는 10초에 14.5원)을 내야 하는데, 굳이 듣지 않아도 되는 안내를 듣는 시간에 부과되는 요금에 소비자 불만이 높았다.
방통위는 각 공공기관의 ARS 운영실태 점검결과와 이용자 설문조사 내용을 바탕으로 삼아 개선안(가이드라인)을 제시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자발적인 개선을 유도하되, 일부 개선안을 제도로 규제(의무화)하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이은용기자 eylee@etnews.co.kr
세 시간쯤 지났을까. 저녁 무렵에 방송통신위원회 이창희 이용자보호과장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이 과장은 유선전화, 나는 이동전화였다.
나는 이날 이 과장과 처음 대화했다. 얼굴을 본 적도 없었다.
“안녕하세요.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라는 이 과장의 말투는 차분했지만, 대화가 오가면서 가락이 조금씩 높아졌다.
그는 “(‘공공기관 ARS 개선안 마련’한다고) ‘제가’ 밝힌 적이 없다”고 했다. “그걸 도대체 누가 밝혔습니까. (담당 과장이) 밝힌 적 없는데 왜 기사를 썼느냐”는 거다.
이 과장은 특히 “위원장에게 보고하려고 준비했는데, 기사로 먼저 나가버렸다”며 목소리에 짜증을 묻혀냈다. 이건 결국… ‘밝히는 대로, 알려주는 대로만 쓰라는 얘기’ 아닌가. 아니, 세상에, 뭐 이런 상식 밖 이야기를 기자에게 마구 쏟아내는 공무원이 있나. 더욱 황당한 것은 “(지금 인터넷 판에 기사가 올라 있는데) 내일자 종이신문에서는 넣지 마세요”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설마, 자신이 전자신문 편집국장이라도 되는 걸로 생각한 건 아니었겠지.
음… 말이면 다 말인 줄 아는가!
나는 그에게 “지금 제가 이 과장께 ‘국민의 알 권리’라는 단어를 써가며 이것저것 자세히 설명해야 하는 거냐”고 되물었다. 그 물음과 함께 나의 ‘어의 없어 하는’ 헛웃음도 수화기 너머로 건너갔을 것 같다.
나는 자중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목젖에는 ‘당신만 방통위에서 일하나. 당신 말고 이것저것 밝힐 사람 많고, 그런 밝힘을 제대로 국민에 전하는 게 내 의무이자 권리다. 국민이 당신 월급봉투를 채워주기에 ‘알 권리’를 가졌고, 나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당신의 월급을 아주 조금 떠받치니까’라는 말이 부글부글!
잘 참았다. 14년 6개월쯤 기자생활을 한 덕분이었으리라. 이날 애꿎은 소주잔 엉덩이만 고통스러웠을 게다. 내가 꽝,꽝, 세게 내려놓는 바람에…(^^;)
다음날 아침,<이동전화 마일리지 ‘소비자 편에’>라는 기사(http://www.etnews.co.kr/news/detail.html?id=200905150094)를 준비하는데, 아무래도 이용자보호과장(이창희)이 맡을 업무일 것 같았다. (^^;)
그에게 전화했고… 아주 차분하게 이동전화 마일리지에 관해 물었다. 14년 6개월쯤 기자생활을 한 덕분에… 어제 열 받았지만, 오늘 차분히 이것저것 물어볼 수 있다. 국민 ‘알 권리’에 충실하려는 사명감 같은 것 덕분일 게다.
그는 “(이동전화 마일리지는) 내 소관이 아니”란다. 나는 전화를 끊기 전에 “그런데 이 과장‘님’ 휴대폰 번호가 몇 번이죠?”라고 물었다. 대뜸 “왜요?”란다. 허, 잠시, 말문 막히고…
나는 “휴대폰 번호를 알려주지 못할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과장’님’은 어제 제 휴대폰으로 전화했잖아요. 저도 (공평하게) 과장’님’ 휴대폰 번호를 알아둘 수도 있는 것 아닌가요”라고 차분하고 정중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랬던 게 오히려 이 과장의 마음을 상하게 했을까. 그는 잠시도 머뭇거리지 않고 나에게 말했다.
“앞으로 이 기자님 휴대폰으로 전화할 일 없을 겁니다.”
하, 매우 오랜만에 기자에게 당당한(?), 기자를 마구 몰아붙이는 공무원을 봤다. 아니, 전화로 두 차례 대화해봤다.
사실 기분이 나쁘기도 했지만… 그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서 너댓 명에게 물어봤다. 그 사람, 어떤 사람이냐고. 평가가 좋았다! 한 사람도 ‘못됐다’거나 ‘건방지다’는 류가 없었다. 어느 후배 기자는 “투박하고 진솔하다”고 했다. 이거 도대체 어찌된 영문일까. 다른 이들과 달리, 나만, 그가 아닌 정체 모를 무엇인가에 홀린 겐가.
‘도대체 이게 웬일인지’ 궁금해 참지 못한 나는… 그의 고향, 그가 나온 고등학교와 대학교 학과 등을 알아봤다. 한국의 그 망할 학연·지연 말이다. 만약, 그가 학연과 지연에서 비롯된 자신감(?)으로 ‘전자신문 기자 이은용’을 윽박질렀다면! 그러지 않았을 것으로 믿지만, 만에 하나 그렇다면, 음…!!
사람이 사람을 처음 만나거나 대화할 때에는 예의를 갖춰 매우 조심해야 하는 게… 만나는 사람이 높든 낮든, 무겁든 가볍든 한결 같아야!!!
지금 내 손전화기(휴대폰)의 전화번호 모아놓는 곳에는 ‘이창희 과장의 이동전화번호’가 있다.
글, 이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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