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호]이상하게 꾸민 과학기술용어에 얽는 작은 투정
(시속 350킬로미터를 돌파했다는 한국형 고속열차 HSR-350x. 사진=한국철도기술연구원.)
서울 영등포역에서 쏜살같이 내달리는 케이티엑스(KTX)를 뚫어져라 시선 안에 담는 꼬마. 케이티엑스가 저 멀리 모습을 드러냈을 때부터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새마을호, 무궁화호, 전철 바퀴 굴러가는 모양을 살피느라 얼굴이 땅에 닿지나 않을까 걱정스러울 정도인 꼬마!
필자, 필자와 함게 사는 친구의 유전 정보 절반씩을 품고 세상에 나온 꼬마다. 2001년 1월 30일 23시 57분께 배 바깥에서 처음 만났다.
그토록 기차를 좋아하는데 아직 케이티엑스를 함께 타보지 못했으니... 필자는 참 무심한 아빠다. 그 꼬마와 필자가 영등포역에서 수원역까지 하릴없이 무궁화호를 타고 다녀오며 마냥 헤죽헤죽 웃는 즐거움만으로는 부족하리라.
요즈음 걱정 하나가 새록새록 가슴으로부터 싹을 틔워 올렸다. 그 꼬마가 기차를 바라보기만 하지 않고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는 것. 그냥 "멋지다"거나 "빠르다"는 차원이 아니라 "왜 빠르냐"거나 "어떻게 빨리 달려갈 수 있느냐"는 류다. 머뭇머뭇, 신문방송학을 전공한 필자에게는 꼬마의 질문이 적지않은 시련이다. 진땀이 난다. 대충 얼버무릴 수 없으니까.
인문사회계열 전공자가 과학기술을 말하는 것, 정~말 힘들다. 아예 '제대로 들여다 보기'조차 어렵다. 그래서 더욱 재미있었을까. 과학기술부를 출입한 지난 2년 9개월여 동안 늘 재미있었다. 때로는 불현듯 '애정'까지 묻어난 글(신문기사)에 스스로 놀라기도 했다.
그렇게 재미있게 들여다 보려 노력했던 까닭일까. 과학기술을 '이상하게 꾸민 말(수식어)' 몇 개를 발견했다. 인문사회계열 전공자로서 갸우뚱할 수밖에 없는 것들이다.
우선 2006년 7월 28일 러시아 플레체스크에서 발사한 인공위성 아리랑 2호를 꾸민 말인 '다목적 실용위성'이다. 구체적으로 '다목적 실용위성 아리랑 2호'라고 부르는데, 오해를 부르는 꾸밈이다. '아리랑 2호가 여러 목적으로 쓰이나 보다'라는 오해!
아리랑 2호는 '지구관측위성'이다. 그게 목적이자 쓰임새다. 따라서 '지구관측위성 아리랑 2호'가 맞는 말이다. 실제 아리랑 2호는 땅 위 '1미터 곱하기 1미터'를 한 점으로 찍어내는 광학카메라를 달고 한반도를 비롯한 세계 곳곳을 촬영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그것 말고 다른 임무? 쓰임새? 글쎄...
앞으로 쏘아올릴 아리랑 5호(5호를 먼저 발사), 3호도 모두 지구관측이 주목적이다. 그런데 왜 '다목적 실용위성'이라는 꾸밈을 붙였을까. 위성을 만들 때 뼈대가 되는 본체(플랫폼 혹은 basic unit system)가 다목적이어서다. 비슷한 형태의 전자회로기판(PCB)으로 휴대전화, 텔레비전, 컴퓨터 등을 만드는 것처럼 하나의 본체를 과학실험용, 관측용, 기상관측용 등으로 다양하게 활용해보자는 뜻이다. 1994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아리랑 위성 개발사업을 시작할 때 '적은 돈(예산)으로 알뜰하게 해보자'는 의지를 담아 사업명을 그렇게 정했다. 그렇게 출발해서 '다목적 실용위성'이라는 말이 굳어졌을 뿐, 엄밀하게는 '지구관측위성'인 것.
또 하나, '해수담수화 일체형 원자로(SMART: System-integrated Modular Advanced ReacTor)'도 단어를 늘어놓다 보니 애초 뜻에서 조금 벗어났다. 말 그대로는 '바닷물을 생활용수로 만드는 기능을 원자력발전그릇(원자로)에 일체화한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조금 다르다.
정확하게는 '해수담수화'와 '일체형 원자로'가 따로따로다. 별개이되, 해수담수화 플랜트(plant)와 일체형 원자로를 중심에 놓는 중소형급 원자력발전소를 한꺼번에 짓는다. 중동처럼 사막이 많아 물이 부족한 나라에서 인기가 높다고 한다.
그렇다면 왜 '일체형 원자로'라고 할까. 옛 원자로들은 증기발생기, 주냉각재펌프, 가압기 등 냉각재 계통(reactor coolant system) 기기들을 그릇(로) 바깥에 설치했는데 중소형급으로 몸집을 줄이기 위해 관련 계통을 하나의 압력그룻 안에 배치해서다.
과학기술부는 이 같은 일체형 원자로 특징에 주목, 2005년 6월부터 2010년까지 약 4400억원을 들여 전략적 수출제품으로 만들 계획이다. 한국전력을 중심으로 웬만한 국내 중소도시를 소화할 수 있는 열출력 330메가와트(MW)급 일체형 원자로를 만든 뒤 두산중공업의 해수담수화 플랜드를 묶어 중동, 남미, 동남아 등지로 수출하겠다는 것.
좀 더 들여다 보자면, 일체형 원자로를 이용해 전기를 생산한 뒤에 남는 열로 바닷물을 끓여 먹는 물(생활용수)까지 만들어낼 수 있는 제품이다. 따라서 그냥 '해수담수화 일체형 원자로'라고 하면 뜻이 잘못 전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무슨 큰 일이라도 난 듯, 큰 실수라도 되는 양 성토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어려워 부담스러운 과학기술용어가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까지 멀어지게 할까 걱정스러워서다. 세심하게 배려한 작은 것이 큰 흐름을 결정할 수도 있으니까! 이렇게 과학기술계에 관심을 두고 살았다며 미주알고주알 하는 필자도 '안경을 쓴 까닭에 한국 첫 우주인에 도전할 수 없는 것'으로 알았을 정도니까.
!
-한국철도기술연구원 발행 격월간 '한국철도기술' 2006년 11, 12월호 '기자단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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