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영희 지음. 한길사 펴냄. 2006년 8월 30일 1판 1쇄. 2010년 12월 20일 1판 4쇄.
나는 좌•우의 어떤 정치•이데올로기적 권력이건 진실을 은폐•날조•왜곡하려는 흉계에 대항해서 진실을 찾아내고, 그것을 바른 모습대로 세상에 밝혀내는 것을 글 쓰는 목적으로 삼고 일관했다. 광적인 반공•냉전•전쟁 애호•반평화통일 세력이 이 나라를 지배하고 있던 시기에 특히 그러했다(18쪽).
이상의 획기적 평화조치의 실현을 돕기 위해서 해야 할 중요한 일이 한 가지 남아 있다. 남한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핵무기 숭배사상을 타파하는 일이다. 특히 “핵무기와 주한미군 없이는 불안하다”는 미신과 같은 주술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이데올로기적으로 과장되고 조작된 이 미신의 주술의 사슬을 끊지 않고는 이 민족의 삶의 터에서 외국 핵무기의 요괴가 물러갈 날은 요원해 보인다. 1991. 7(57쪽).
중동석유의 지배권을 위해서 미국 군부는 그들의 ‘눈엣가시’인 북한을 ‘제2전선’의 핵공격 목표로 삼았던 것이다(69쪽).
셋째, 한·미 합동 ‘팀스피리트’ 훈련은 1991년의 경우, 그 규모가 27만 명이 참가한 세계 최대였다. ‘민족주체성’을 강조하는 북한은 소련이나 중국과의 이런 유형과 크기의 합동군사훈련을 거부해왔다(92쪽).
진실과 사실은 ‘우익’이건 ‘좌익’이건, 그 어느 것의 가치보다 앞서고 그보다 높은 것이다. 그것은 바로 민주주의의 생명이기 때문이다(102쪽).
일부 언론과 타락한 언론인들이, 지난날 영구집권을 꿈꾸는 독재자들을 “단군 이래의 성군”으로 추어올리고 광주 대학살의 원흉들을 “세종대왕에 버금가는······” 따위로 아첨하던 피묻은 펜대를 씻지도 않은 채 지금 바로 그 펜대를 가지고 대통령의 정책을 오도하고 전쟁을 부채질하는 데 여념이 없다. 경계할 일이다. 1994. 4(103쪽).
중국의 공산주의가 그렇게 훼손된다는 것이 도대체 이해가 안 가더라고요. 그런데 요즘 사회를 보면 맞아요. 소수의 사람들이 변하는 것을 그냥 끌어안고, 곤두박질치는 바위를 밀어올린다고 되지 않을 겁니다(153쪽).
한 번은 북한 현지에 공장을 설립해주고 물건을 생산해 일본에 보내주면 일본에서 받아서 수출하기로 했는데, 생산한 상품 모두를 아무 말 없이 유럽 쪽으로 다 팔았대요. 이쪽에 납품을 해야 되는 것을 그렇게 해서 돈을 받은 거죠. 그리고 이쪽에는 돈을 안 주고요. 그래서 북한의 고위간부가 왔을 때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원료, 기계, 자본을 모두 대주고 북한에서는 단순히 임가공만 한 건데, 그걸 마음대로 팔고서 여기로는 돈도 안 보내고, 그럴 수 있느냐, 계약이니 상거래니 그런 것도 모르느냐”고 했더니 그 사람 대답이 “그거야 돈 더 많이 받으니까 팔 수도 있는 것 아느냐”고 했답니다(156쪽).
우리만 하더라도 해방 직후, 1948년에 민주주의 형식으로 헌법을 만들면 민주주의가 다 되는 줄 알았어요. 그 당시 학자들이 자꾸 민주주의는 헌법이나 정치체제가 아니라 ‘사는 방식이다’라고 할 때, 이해를 못 했어요. “헌법 만들고 대통령 선거하면 민주주의지, 생황양식이라는 게 다 뭐냐”고 했는데, 이제야 자동차 운행 규칙 하나에도 생활양식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 것이지요(158쪽).
주한미군이나 ‘한국 안보’는 미국 정부 책임자들이 서슴없이 공언해왔듯이 한국 국민의 이익보다 “미국의 국가 이익과 필요 때문”인 것이다(197쪽).
지구상에 평화가 자리잡는 것을 두려워하는 자들이 있다. 인류에게서 전쟁이 멀어져가는 것을 혐오하는 세력이 있다. 무슨 수를 써서든지 무기를 만들어 팔아먹을 구실을 찾는 집단이 있다. 불이 날 조건이 없으면 기름을 붓고, 열이 식으면 부채질을 해서라도 불을 일으키려는 정부가 있다. ‘평화’의 가면 아래 지구상의 도처에 불씨를 뿌리고 다니는 국가가 있다. 진정 평화를 사랑하고, 전쟁 없는 삶을 원하는 사람은 그 정체를 확인해야 한다(201쪽).
나는 ‘공산주의식 교조주의’의 불모성과 자본주의적 물질 지상주의와 극단적 이기주의를 다같이 거부하는 인간복지 위주의 평등지향적 사회주의를 대안으로 생각합니다(236쪽).
국가는 그 구성요원의 행복을 위한 수단이지, 그 반대가 아니다. 더욱이 ‘국가이익’이니 ‘국가안보’니 하는 명분이 소수 권력집단의 사적 이익과 동의어인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래서 앞으로는 ‘국민들’이라는 관념 대신에 ‘시민’, ‘국가’ 대신에 ‘사회’로 관심을 돌렸으면 좋겠다. 오랜 왕조의 ‘신민’, 외세식민지의 반노예, 해방 후의 열광적인 집단 개념의 국민으로만 살았을 뿐, 민주주의의 주체적 존재인 시민의 가치와 권리는 박탈강한 상태였다. 이제 국가에 앞서 ‘시민’의 존재를, 그 가치와 복지를 염두에 두면서 방송내용을 제작해주었으면 고맙겠다. 추상적인 ‘국민’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세금을 내는 ‘납세자’라는 개념, 정치결정의 원천으로서 투표를 하는 ‘투표자’를 관점의 중심에 세우면 좀 내용이 달라질 것이다.······중략······민주주의의 주체적 행위자와 책임자는 ‘국민’이 아니라 ‘시민’이다. 시민의 구성체는 ‘국가’이기에 앞서 ‘사회’다. 여태까지 우리나라에서 망각되었던 이 자기발견은 지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423쪽, 424쪽).
박정희와 전두환을 세종대왕급으로 신격화한 언론인들 중에서 자기반성의 글을 썼다는 말을 들어본 일이 없고, 부끄러워서 사표를 내고 신문사를 떠났다는 말을 더더구나 들어본 일이 없다(429쪽).
나는 촬영인들에게 적어도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 한 권쯤은 반드시 읽기를 권한다(434쪽).
나는 기독교의 예수나 불가의 불타가, 해마다 대학 입학시험 때 불상 앞에서 천 번 기도하거나 교회에 거액의 재물을 바친 부모의 자식들은 합격시키는 ‘기적’을 행하지 않아주면 좋겠다(448쪽).
모든 종교의 성직자도 중생(신도)이 온갖 고생과 땀을 흘려서 얻은 공양을 가지고 땀 흘리지 않고 살 것이 아니라, 중생과 같은 현생의 고생을 하고 땀을 흘려야, 진정코 ‘인간’ ‘중생’ ‘사람’의 진실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4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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