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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폐로 남은 뇌연구원의 ‘창조적’ 채용 비리

eunyongyi 2017. 7. 27. 12:52

서유헌 전 원장, 특혜 채용에 끼어 공공성 훼손

미래부는 뒷북 감사로 소 잃고 외양간 고친 격

By Eun-yong Lee


박근혜 정부 때 한국뇌연구원(KBRI)에서 일어난 직원 채용 비리가 적폐로 남았다. 공정하지 못한 절차에 따라 뽑힌 직원 2명이 여전히 재직한다. 두 사람은 해임되거나 계약해지됐다가 KBRI에 되돌아가 공공기관 채용 공공성을 깨뜨린 표지가 됐다.

특히 뇌 과학 쪽 유명 과학자인 서유헌 KBRI 초대 원장(2012년 7월 23일 ~ 2015년 7월 22일)이 채용 비리에 끼어든 것으로 드러났다. 서 원장이 간여한 채용 비리가 KBRI에 잔재로 남은 것이다.

서유헌 전 원장은 서울대 의대에서 뇌 과학으로 잔뼈가 굵어 정부가 주는 ‘2009년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을 받은 인물. 뇌 분야 책을 30여 권이나 썼고 ‘나이보다 젊게 사는 뇌 건강법’ 같은 주제를 내건 강연으로 대중 인기까지 얻었다. 2016년 4월에는 과학 잡지 <아시아 사이언티스트>가 뽑은 아시아 선구 연구자였다.

박근혜 정부 미래창조과학부는 KBRI를 국가 뇌 연구 본거지이자 대구첨단의료복합단지 핵심 연구기관으로 길러 낼 계획이었지만 채용 비리와 여러 업무 비위를 끌어안은 곳이 됐다. 여러 비위가 드러나기 시작하자 2014년 11월 한국-네덜란드 정상회담 성과 가운데 하나로 발표했던 뇌 연구 양해각서 자취를 박근혜 정부 청와대가 스스로 홈페이지에서 지웠을 지경에 이르렀다.

2014년 11월 3일 뇌연구원과 네덜란드 뇌은행 연구 협력 양해각서.jpg

▴2014년 11월 3일 빌렘 알렉산더 네덜란드 왕(뒷줄 왼쪽)과 박근혜 전 대통령이 KBRI와 네덜란드뇌은행 간 연구 협력 양해각서 교환식을 지켜보고 있다. 서유헌 원장(앞줄 오른쪽)과 잉게 휘팅가 네덜란드뇌은행장이 양해각서에 서명했다. (사진= 한국뇌연구원 인터넷 홈페이지)


서 원장이 채용 비리에 끼어든 걸 안 탓인지 KBRI 직원 가운데 일부는 연봉을 마음대로 올리거나 깎고 예산 회계에 게을렀다. 출장 중에 쓴 밥값을 정산하지 않기도 했다. 관리 기관인 박근혜 정부 미래부는 서유헌 원장이 KBRI를 떠난 뒤에야 뒷북 감사를 벌여 봐주기 의혹을 샀다.

경영기획실장을 짬짜미로 뽑아

박근혜 정부 미래부의 KBRI 특정감사 결과를 보면 2013년 1월 2일 김 아무개 씨가 경영기획실장에 뽑혔다. 특별 채용이었다. 경영기획실장은 KBRI에서 두 번째로 높은 직위임에도 인사규정에 따른 공개 채용 원칙을 지키지 않은 채 서유헌 원장 결재로 모든 게 이루어졌다. 공개 채용을 할 수 없는 사정이 있어 누군가를 특별히 선발하더라도 자격을 갖춘 지원자들로 제한 경쟁을 벌여 사람을 골라 뽑되 인사위원회 심의와 의결을 거쳐야 하나 무시했다.

실제로 서 원장의 김 씨 채용 재가는 상식과 동떨어졌다. 2012년 12월 10일 강 아무개 KBRI 기획행정팀장이 ‘경영기획실장 채용계획서’에 김 씨만 지정해 올렸음에도 그대로 결재했다. 인사위원회 심의와 의결 절차도 거치지 않았다. 오로지 서유헌 원장과 강 기획행정팀장과 김 씨만 아는 채용 전형이었던 것.

“(서유헌 원장이) 연구만 하시던 분이라 행정적인 것엔 상당히 미숙하셨던 것 같아요. 또 뇌연구원이 신설 기관이다 보니 처리를 미숙하게 했던 것 같아요.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였어야 했습니다.”

옛 미래부 관계자의 말. 그는 공정성을 생명으로 하는 공공기관 직원 채용 절차를 어긴 서유헌 원장의 행위를 행정에 서투른 탓으로 감쌌다. 하지만 서 원장이 아시아태평양신경화학회장, 강원대 의과대학장, 옛 과학기술부 치매정복창의연구단장, 서울대 인지과학연구소장 같은 자리를 두루 겪은 것을 헤아리면 ‘행정 경험 미숙’은 설득력이 없어 보였다.

KBRI는 상급 기관인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의 종합감사에 따라 2015년 12월 인사위원회를 열어 임금 규정을 어기고 임의로 급여를 올린 문제 등으로 김 씨를 해임했다가 그의 이의 제기를 받아들여 ‘정직 3개월’로 처분했다. 김 씨가 2016년 1월 1일부터 3월 31일까지인 정직 기간을 끝내고 그해 4월 1일 다시 출근할 수 있게 길을 터 준 것. 김 씨는 정직 처분 전까지 맡았던 김경진 제2대 KBRI 원장의 정책보좌관에 다시 배치됐지만 2016년 6월 말까지 따로 맡겨진 일이 없는 상태였다. 그해 7월 1일에야 김경진 원장이 김 씨에게 ‘연구본부 행정지원업무’ 가운데 학‧연 협력 프로그램을 맡겼다. 특히 김 씨는 2014년 12월 사무용 가구 3억여 원어치를 KBRI에 사들일 때 잘못이 있었는지를 두고 2016년 10월부터 대구지방경찰청 조사를 받았는데, 2017년 4월 사건이 검찰에 송치된 것으로 확인됐다.

박근혜 정부 미래부 감사담당관실은 2015년 11월 김 씨 채용 비리와 관련한 특정감사를 벌여 2016년 2월 1일 기관 경고와 함께 강 아무개 당시 KBRI 기획행정팀장을 징계하라고 요구했다. 기획행정팀장과 달리 서 원장은 2015년 7월 22일 임기 3년을 채우고 퇴직한 뒤여서 “책임을 묻지 않기로 했다”는 게 옛 미래부 쪽 설명. 소 잃고 외양간 고친 격이다.

2014년 12월 4일 뇌연구원 준공 초청 인사 연구원 투어.jpg

▴2014년 12월 4일 한국뇌연구원 준공식에 참석한 이한구 전 국회의원(앞줄 왼쪽에서 세 번째)과 유승민 의원(이한구 의원 오른쪽 뒤), 권영진 대구시장(이한구 전 의원 왼쪽)이 서유헌 원장(오른쪽 끝)과 함께 연구시설을 둘러보고 있다. 이때 경영기획실장이 김 아무개 씨였다. (사진= 한국뇌연구원)


더 세게 밀어붙인 두 번째 채용 비리

서유헌 원장의 직원 채용 비리는 한 번에 머물지 않았다. 두 번째엔 직접 청탁을 받아 채용 담당자를 3개월 동안이나 내리눌렀다. 사람이 필요할 때가 아니었는데 채용 부탁을 받은 최 아무개 씨를 계약직 연구원으로 뽑게 한 것. 최 씨가 연구원 자격 요건을 갖추지도 못한 터라 서 원장의 비위에 무게를 더했다.

김 아무개 씨를 경영기획실장으로 뽑은 지 3개월여 만인 2013년 3월 15일 서 아무개 당시 KBRI 경영지원팀장은 서 원장의 지시로 ‘계약직(연구원) 및 청년 인턴 공개 채용 계획(안)’을 짰다. 3월 18일 채용 공고를 냈고, 4월 1일 서류 심사와 4월 8일 면접을 거쳐 4월 15일 최 아무개 씨를 계약직 ‘선임 연구원’으로 뽑았다.

서유헌 원장은 “2012년 7월 최○으로부터 직원으로 채용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고 2015년 5월 감사원에 진술했다. 최 씨는 자신을 뽑아 달라고 서 원장에게 부탁한 때를 2012년 12월로 기억했으되 시점에 관계없이 두 사람 사이에 일어난 채용 청탁 정황이 드러났다.

서 원장은 2005년 1월부터 HFSP(Human Frontier Science Program) 이사로 활동했는데, 2009년 12월 14일부터 2012년 12월 13일까지 이명박 정부 교육과학기술부 국제교류협력과에서 관련 업무를 맡았던 최 씨를 알게 됐다. 이런 인연에 따라 최 씨가 서유헌 원장에게 채용을 부탁한 것으로 보였다.

서 원장은 “경영기획실장(김○○)과 경영지원팀장(서○○)에게 최○을 채용할 수 있는지 알아보라고만 했다”고 주장했고, 김 씨와 서 팀장은 “원장이 최○을 채용하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서로 진술이 어긋났지만 채용 계획의 처음과 끝이 모두 서 원장 재가로 이루어진 걸 덮을 수 없었다.

최 씨는 대학에서 소비자경제학을 전공했다. 옛 교육과학기술부에 계약직 공무원으로 들어가 국제기구 협력 업무를 맡았을 뿐 뇌를 연구해 본 적이 없었다. 연구개발 경력이 아예 없기 때문에 KBRI에 ‘연구원’으로 뽑힐 자격을 갖추지 못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감사원 감사결과를 보면 서 원장은 자신을 뽑아 달라는 최 씨 부탁에 따라 2012년 12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세 차례나 그를 채용하라고 경영지원팀에 지시했다. 서 아무개 경영지원팀장은 서 원장의 지시에 따라 ‘계약직 연구원’ 지원 자격을 ‘글로벌 연구협력 업무담당자로 정부출연연구기관 등 유관기관 전임 상근 경력 3년 이상인 자, 글로벌 연구 네트워크 구축 경험자, 국가연구비 관리 경험자’로 제한했다. 최 씨의 교육과학기술부 경력에 딱 맞춘 채용 공고를 낸 것.

최 씨 직급도 문제였다. DGIST 직원 인사규정에 따른 ‘선임 연구원’ 자격 가운데 어느 것 하나 들어맞지 않았음에도 선임으로 뽑았다. 연봉 또한 선임 직급에 걸맞은 1년 차 5652만6000원, 2년 차 5765만7000원을 줬다. 최 씨가 채용된 2013년 이후로 계약직 연구원 1, 2년 차에게 주는 평균 연봉보다 각각 1966만9000원과 2104만5000원이나 많았다. DGIST에서 선임 연구원이 되려면 박사학위를 가졌거나, 석사학위를 받고 4년 이상 전공 분야에서 연구했거나, 대학 이상 과정을 이수하고 학회에서 논문을 5편 이상 발표한 사람이어야 한다.

최 씨는 2015년 5월 청탁 채용 사실이 드러났음에도 2016년 1월 31일까지 8개월 동안 계속 출근했다. 그는 KBRI 쪽의 계약 해지 조치에 불복해 2016년 4월 29일 경북지방노동위원회, 그해 8월 17일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잇따라 부당 해고였음을 인정받아 같은 해 10월 21일 복직했다. 노동위원회로부터 ‘해고가 지나쳤다’는 취지의 판정을 받았지만 청탁 채용 의혹까지 뒤집어진 건 아니다.

2015년 5월 감사원은 DGIST로 하여금 최 씨를 뽑은 서유헌 원장에게 ‘주의’를 주라고 요구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특히 미래부가 KBRI 경영기획실장이던 김 아무개 씨 채용 비리를 잡아낸 2015년 10월은 서 원장이 퇴직한 지 3개월이나 지났을 때였다. 가중 처벌됐어야 할 서유헌 원장이 떠난 곳에 찾아가 뒷북을 친 셈이다.

원장 비리에 직원 기강도 흔들려

“스스로 사퇴하셨겠죠.”

서유헌 원장 임기 중에 김 씨와 최 씨를 연거푸 특혜 채용한 게 발견됐다면 어찌됐겠느냐는 질문에 돌아온 옛 미래부 관계자의 대답. 그때 미래부 관계자들은 KBRI를 ‘감사할 게 많은 골칫거리’로 인식했다.

조상원 당시 미래부 감사담당관은 “(서 원장이 퇴직하지 않았다면 추가로) 징계가 나갔을 것”이라며 “비슷한 시기에 (두 채용 비리가) 함께 발견됐다면 가중해서 징계할 수 있고, 최소한 정직 이상 중징계일 것”으로 봤다. 그는 “결격 사유가 있는 사람을 채용했다면 채용한 사람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덧붙였으되 “원장은 퇴직했기 때문에 징계할 수 없다”고 밝혔다.

신성철 당시 DGIST 총장(현 카이스트 총장)도 “(KBRI 채용 비리가 두 번이나 일어난 걸) 잘 몰랐고, 그분(서유헌 총장)이 그렇게 한 걸 알고 나서는 임기가 만료돼 그만뒀기 때문에 (뭘)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구광역시 동구 첨단로 61번지에 자리 잡은 한국뇌연구원(왼쪽)과 4층 실험실. 건물 오른쪽으로 우뇌를 상징하는 연구동이 더 들어설 예정이다.


서유헌 가천대 뇌과학연구원장(2015년 10월 7일 ~ 현재)은 김, 최 씨 채용 비리를 두고 자신이 “자세히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일어난 일로 돌렸다. 그는 김 씨를 “자세히는 모르고 DGIST 쪽에서 이야기 듣고, 추천 받고, 그렇게 (채용)했다”며 “거기(DGIST) 있는 아는 사람(교수 한두 사람)이 추천한 거죠. 내가 그 사람(김○○)을 자세히 알 수 없고, 추천에 의해서 조금은 알았지만 자세한 건 몰랐다”고 말했다.

김 씨를 공개 채용하지 않고 원장 결재만으로 뽑은 게 나중에 문제가 될 걸 알지 못했느냐는 질문에도 “그것까지는 내가 알 수 없었다”고 대답했다. 최 씨 채용과 관련해서도 자신이 “최○과 특별한 관계가 있는 게 아니었다”며 “내가 잘 안다고 뽑고 그런 건 아니었다. 새로운 기관(KBRI)이 생기면, 알아서 지원하든 말든 그건 개인(최○)의 자유”라고 주장했다.

서유헌 원장이 두 채용 비리를 ‘주의’ 하나로 갈음한 것에 따른 학습 효과가 KBRI에 고스란히 내려앉았다. 그 무렵 한 책임연구원은 원장 승인 없이 8개월 15일 동안 다른 곳(병원)에서 겸직했는가 하면 해외 장기 출장을 가서는 31일 치 여비 311만6685원을 쓰며 개인적으로 논문 보정 작업을 벌이기도 했다. 직원 22명의 연봉이 급여 규정과 달리 주관적으로 높거나 낮게 책정됐는가 하면 정규직 4명과 계약직 1명의 연봉이 부당하게 인상되기도 했다. 출장을 다녀온 뒤 결과를 보고하지 않거나 밥값과 항공 마일리지를 등록하지 않은 직원도 여럿 나왔고, 월‧분기별 회계 결산과 보고가 미흡해 세 명이 ‘주의’ 처분을 받았다.

서유헌 원장은 자신의 채용 비위와 KBRI 기강 문란에도 불구하고 연임을 꾀했다. 그는 연임을 꾀한 까닭을 “(설립) 초창기 기관이니까 인프라도 안 갖춰졌고 사람도 계속 뽑아야 하니까”라고 설명했다. 주변에서 자신에게 “좀 더 수고하고 (KBRI를) 갖춰 놓은 다음에 나오는 게 좋지 않느냐고 했다”고 덧붙였다.

KBRI 한 관계자는 최 아무개 씨와 관련해 “채용 절차의 정당성과 공공기관으로서의 공공성, 청렴성이 결여됐기 때문에 (2016년 7월 그를 복직시킬 수 없다는 결론을 내고)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신청했다”며 “문제가 있는 사람을 복직시키면, 채용될 수 있는 다른 사람의 기회가 박탈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2016년 8월 17일 중앙노동위는 KBRI가 아닌 최 씨 손을 들어 줬다. KBRI 쪽은 행정 소송을 벌이면 시간과 비용이 들 뿐만 아니라 기관 이미지가 훼손될 것을 걱정했다. 최 씨를 복직시켜도 조직 분위기가 흐려질 것으로 봤으나 달리 대응할 수단이 없자 2016년 10월 21일 복직시켰다.

최 아무개 씨는 채용 부탁 의혹에 대해 “HFSP 사무총장이 한국에 왔을 때 (관련 행사의) 같은 자리에 있던 (서유헌) 원장께 웃으면서 (가볍게) 말씀드린 것”일 뿐 청탁하지 않았으며  “출연연에서 일해 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 (KBRI) 채용 공고를 보고 지원했다”고 말했다. 김 아무개 씨도 “(자신이 경영기획실장) 특채 요건을 갖춰 문제가 없었고, 서유헌 원장 권유로 DGIST에 복귀하지 않고 뇌연구원에 남았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KBRI 관계자는 “과거 일(초대 원장 때 일어난 채용 비리 뒷일)을 저희(제2대 원장의 KBRI)가 맡다 보니 부담스럽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