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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을 다시 쓴다 ㅡ 객관성, 여성운동, 인권

eunyongyi 2018. 8. 2. 21:30

정희진, 전희경, 정춘숙, 강김아리, 김효선, 박이은경, 정미례 지음. 한울 펴냄. 2003년 12월 10일 초판 1쇄. 2013년 1월 30일 초판 6쇄.


정희진.
여성에 대한 폭력은 가부장제의 역사와 같다. 여성 폭력은 수천 년간 시대와 지역, 계급과 인종을 초월해 보편적으로 행해져 왔다. 그러나 여성이 당하는 폭력이 사회적인 문제로 제기되고 법의 규제를 받기 시작한 것은 근대 이후의 일이며, 서구의 경우에도 불과 30여 년밖에 되지 않는다. 여성에게 가해지는 육체적, 정신적, 경제적 폭력은 오랫동안 ‘개인적인 일’로서 자연스런 일상 문화의 일부가 되어 왔다(28쪽).

1996년 대법원은 트랜스젠더 여성(male to female)을 남성 3명이 길거리에서 승용차로 납치해 집단 강간한 사건에 대해, “피해자를 여성이라고 볼 수 없고, 생식 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가해자에게 제1심과 제2심 판결에 이어 무죄를 판결했다(30쪽).

전희경.
성폭력 가해자가 피해자를 명예훼손, 무고, 모욕, 심지어 간통 등으로 역고소한 사례는 이전에도 있었다. 1986년 부천서 성고문 사건(명예훼손 고소), 1988년 강정순 씨 피해 사건(무고 및 간통죄로 피해자 구속), 1993년 서울대 신정휴 성희롱 사건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63쪽).

정춘숙.
한국 사회에서 여성 폭력 문제가 최초로 제기된 것은 1983년 여성의전화가 창립되면서부터다. 여성의전화는 ‘아내폭력’을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과 남성의 힘의 차이로부터 오는 사회구조적인 문제의 하나로 봤다(81쪽).

1993년도에 발생한 김명희(가명) 사건을 봐도 알 수 있다. 이 사건은 남편으로부터 18년간 극심한 폭력과 성 학대를 당해오던 피해자가 결국 남편을 전기줄로 목 졸라 살해한 사건이었다(95쪽).

2000년 5월 ‘여성 인권과 아내 강간’ 토론회. 폭력 피해 여성들의 사례는 “구타도 견딜 수 없었지만 구타 후 남편의 성관계 요구는 더욱 치욕스러웠다. 내가 사람이 아닌 쓰레기통이나 물건 같다고 느꼈다”고 말하고 있다(97쪽).

강김아리.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섹스는 결코 사생활이 아니다. 여성의 몸, 여성의 섹슈얼리티는 여성 자신의 것으로 간주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의 부모들은 아들의 혼전 섹스와 달리, 딸의 혼전 섹스에 대해서는 민감하다 못해 금지 명령권 및 금지 집행권까지 가지고 있다(125쪽).

김효선.
(2002년 1월 25일 우근민 제주 도지사 대한미용사회 제주시 지부장을 성추행.) 제주여민회가 지사와 피해자의 대화 내용이 담긴 녹취록을 공개한 다음날, 제주도 정무 부지사는······중략······이 사건의 공론화가 “여성의 성을  무기로 한 게릴라식 폭로전으로 지방선거를 앞둔 도지사에게 정치적 타격을 주기 위한 정치 공작”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1986년 부천서 성고문 사건 당시 가해자 측이 이를 폭로한 피해여성에게 “성을 혁명의 도구로 사용했다”고 비난했던 것과 같은 논리이다(155쪽).

정미례.
2000년 9월 19일 오전 9시 10분경 대명동에서 발생한 화재로 인해 인신 매매돼 감금 상태에서 성매매를 강요당해 오던 20대 여성 5명이 숨지기 전까지, 우리 사회에서 성매매는 어떤 면에서는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외면, 방치돼 왔다(207쪽).

관련 공무원의 무사안일과 책임지지 않는 정부, 지방자치단체의 문제가 결국은 2002년 1월 19일 군산시 개복동에서 더 큰 참사를 빚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중 잠금 장치’가 있는 성매매업소에 대형 화재가 발생해 12명의 여성이 죽음을 당하는 사건이 다시 일어난 것이다(22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