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물 건너 미루나무, 니(네) 큰아버지가 심은 거다.”
할머니 말씀. 1982년쯤이었을 겁니다. 전주(全州)에서 버스로 두 시간 반쯤 달려 ㅡ 무주(茂朱)를 십여 분 앞둔 ㅡ 적상(赤裳)으로 접어들 무렵. 물 건너 논둑길에 한 줄로 선 네댓 키 큰 미루나무를 가리키시며 내게 알려 주셨죠. 네 큰아버지 미루나무라고. 언젠가 그 미루나무 “심으셨다면서요”라고 여쭸더니 옛일 생각에 웃으시며 “맞다. 내가 어릴 때 심었어”라시던 큰아버지이셨고요.
음. 한국에 미루나무 많지 않았던가요. 어릴 때 많이 봤던 듯싶습니다. 시멘트나 아스팔트로 덮지 않은 옛길에 아득히 늘어서 있곤 했죠. 여름날 들바람에 사라락사라락 미루나뭇잎 웃던 소리. 듣기에 참 좋았는데. 이젠 까마득하네요. 큰아버지께 왜 그 자리에 미루나무를 심으셨는지도 여쭙긴 했는데 뭐라 말씀하셨는지 생각나지 않습니다. 아득해서. 다시 여쭐 수도 없어 섭섭하네요. 할머니 여름비 속에 돌아가신 지 오래고 큰아버지도 계시지 않아서. 그 많던 미루나무는 다 어디로 갔을까요.
▴2018년 팔월 3일 밤 반포 한강 옆 미루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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