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보기엔 <기생충>보다 <괴물>이 낫다. 더 좋다.”
2006년 8월 14일 자 전자신문 <프리즘> ‘괴물’ 편
By Eun-yong Lee
박강두(송강호), 36세, 침 흘리며 낮잠을 자다가 깼는데 얼굴에 100원짜리 동전 몇 개가 붙었다. 평범하다 못해 좀 모자란 듯 보인다. 박희봉(변희봉), 59세, 강두의 아버지, 서울 여의도 한강 둔치에서 간이매점을 운영한다. 손님에게 팔 오징어 다리 열 개 가운데 하나를 강두로부터 지켜내기 위해 은근슬쩍 협박하고 능청스럽게 다독인다. 박남주(배두나), 25세, 희봉의 막내딸인데 수원시청 양궁 선수다. 결정적인 승부처에서 활시위를 놓지 못하는 게 흠이다. 박남일(박해일), 29세, 희봉의 둘째 아들인데 속칭 ‘도바리(도망치기) 고수’다. 아무리 살펴봐도 무슨 일을 하는지 짐작할 수 없다. 박현서(고아성), 14세, 강두의 딸. 박희봉의 말로는 ‘강두가 사고 쳐서(?) 낳은 딸’인데, 이 가족의 꽃이다. 영화 ‘괴물’에서 만난 주인공들이다. 아니 주인공이라기보다는 그냥 옆집 아저씨고 동생이다. 그러고 보니 주인공이 누군지 헷갈린다. 박강두가 상대적으로 화면에 많이 등장하지만 주인공이라고 하기에는 좀 약하다. 생긴 것, 걷는 것이 조금 우스꽝스러운 괴물도 주인공은 아닌 것 같다. 또 어찌 된 게 괴물이 ‘나 이렇게 생겼어요’라며 영화 초입부터, 그것도 화창한 낮에 모습을 드러낸다. 이 모든 게 뒤로 넘어갈 만큼 통쾌하다. 왜냐고? 이른바 ‘할리우드 영화처럼’에 뺨을 날려 줘서다. 기자는 괴물에 마음을 홀딱 빼앗겼다. 정확하게는 박희봉이 “현서야∼ 네 덕분에 우리가 다∼ 모였다”며 오열할 때부터다. 영화 괴물은 요즘 우리 사회와 관객 사이에 놓인 프리즘인 듯하다. 관객 시선(빛)이 괴물(프리즘)을 통과하면서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분산돼 무지개가 됐다. 무지개에는 ‘관객의 느낌대로’가 담겼고, 앞뒤 없이 떠오르는 일곱 색깔은 △오만한 미국 △소중한 환경 △태만한 공권력 △강력한 시민의 힘 △화려한 디지털 영화 △자랑스런 한국 영화 △화장하지 않은 배우(배두나)다. 두 시간쯤 투자할 가치가 넘치는 영화다. 괴물을 보러 가실 분께 전하는 외침, “여러분∼ 송강호가 범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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