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희정 지음. 나무연필 펴냄. 2017년 8월 1일 1쇄.
신자유주의 지배 체제는 노동력을 비롯한 다양한 삶의 조건들을 유연하게 하기 위해 모든 생산력을 ‘가정주부화’해 왔다. 마리아 미즈와 베로니카 벤홀트톰젠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들은 주부이기 때문에”라는 말로 여성의 노동을 가치 절하하는 데서 착안해, 노동력을 유의미한 생산성에서 탈락시켜 착취하는 과정을 ‘가정주부화’라고 명명했다. 그런데 산업자본주의 시대에 여성의 노동력을 가정주부화했던 자본주의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이르러 성별을 가리지 않고 모든 노동력의 가정주부화를 확대, 가속화한다. 그리고 우리 시대에 유휴 노동력은 잠재적인 생산력이 아니라 그저 잉여로 처리된다. ‘쓰레기(바우만)’의 탄생이다. 이런 노동력의 가정주부화는 구성원들의 경제적 삶을 불안하게 할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스스로를 경제적 주체로 여겨 왔던 남성들로서는 경험해 보지 못한 ‘탈각’의 순간을 선사했다. 특히 우리 시대의 남성들이 불안과 분노를 느끼게 되는 이유다(26쪽).
IMF 이후 여성의 사회 활동은 급격히 감소한다. 특히 결혼한 여성은 정리해고 1순위에 올랐고 공적 영역에서 사적 영역으로 ‘쫓겨났다.’ 하지만 실제로 여성들이 ‘가사와 육아’로 통칭되는 재생산 노동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면 오히려 다행이었을 것이다. 여성들이 내몰린 곳은 일용직이나 계약직, 비정규직 등 더 열악하고 불안정해진 고용과 노동 조건이었다(58쪽).
여전히 성별 권력관계가 명확한 한국 사회에서 ‘남성 혐오’는 가능하지 않다(85쪽).
일본의 병참기지로서 모든 것이 ‘자원화’된 조선에서 자발성은 이야기될 수 없다. 그것이 ‘성노예화’라는 규정이 지시하는 바다(238쪽).
페미니즘 문화비평의 관점에서 볼 때, <제국의 위안부>가 ‘식민 지배’라는 특수성의 문제를 ‘가부장제’라는 보편성의 수사로 가리고 있는 점은 주목해 볼 만하다. 말하자면 일본 식민 지배의 인종주의적이고 민족주의적인 성격을 지워 버리고, 폭력의 문제를 가부장제 일반의 문제로 환원함으로써 일본 제국에 면죄부를 주는 것이다(240쪽).
우리는 왜 그토록 처절함에 대한 페티시에 사로잡혀 있는가. 폭력을 볼거리로 만들지 않기 위해 우회로를 택하는 것이 피해자를 또다시 대상화하고 물신화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245쪽).
‘동도(東道)’를 ‘서기(西器)’에 담기 위해 군사정권은 국민 교육을 통한 전통의 고취를 시도했고, 이를 위해 조직됐던 국민윤리교육연구회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등은 남성을 중심으로 한국의 전통과 역사를 재구성해 낸다. 그 결과 형성된 한민족 주체는 남성뿐이었다(29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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