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銀容사說] 어리석은 말과 행동에 대해 사리를 밝힌 대답 2
슬기롭지 못하고 무딘 대답을 어디 감히 내놓겠는가. 더욱 쪼고 갈아야 터. 못내 아쉽고 모자라되 땀 흘리며 끙끙댄 흔적만이라도 지금 내보이련다.
넷. “회사가 먼저.”
구원모 전자신문 사장이 이은용과 마주하고 앉아 단체 교섭을 벌이다가 한 말. “회사가 먼저죠. 회사가 있어야 직원도 있는 거 아닙니까”라고.
음. ‘직원’을 ‘노동자’로 바꿔 놓는 것부터 하자. ‘회사가 있어야 노동자도 있는 건가’로. 그다음. 회사가 먼저라는데 노동자 없이 어찌 회사가 있을 수 있나.
이거 뭐,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를 다투는 건가. 아니, 그렇지 않다. 당연히 “노동자가 먼저다. 노동자가 있어야 회사도 있는 거다.”
이렇게 말해 보자. 회사가 없다고 치자. 노동자도 없을까. 있다. 회사가 사라져도 사람은 살아 있게 마련. 이제 노동자가 없다고 치자. 회사도 없을까. 없다. 사람이 사라지면 회사는 없어지게 마련.
사람을, 노동자를 첫손에 꼽아야 한다는 얘기. 노동자를 소중히 여기지 않은 채 “회사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건 기망(欺罔)일 뿐이다. 곰곰 생각해 보기를. 꼭.
다섯. “너 ×대 나왔다며.”
×대(학교)를 나온 이에게 허물없이 툭 던질 수 있는 말. 뭐, 얼마든지 그럴 수 있지. 누구나 같은 학교를 다닌 걸 알게 된 사람에게 한결 가깝게 느껴 ‘내가 너를 매우 친히 여긴다’고 내보일 수 있는 거니까. 어쩌면 예삿일이다.
한데 이런 말은 열에 여덟아홉이 사석에서 오갈 때가 많다. 특히 공인이라면 “학연에 매인다”는 입길에 오르지 않게 더욱 조심하게 마련. 사회 공기(公器)인 전자신문의 사장이 다른 사람에게도 목소리가 닿는 곳에서 누군가에게 “너 ×대 나왔다며”라고 툭 던지는 건 좀 그렇지 않나. 그 누군가의 힘과 능력이 좋으면 좋은 대로, 나쁘면 나쁜 대로 ‘사장과 같은 학교를 다닌 덕에 시절이 좋은 모양’이라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밉보일 수 있으니까. 한 조직 안에 패거리가 이리저리 몰려다니면 곤란하니까. 조직이 망가질 테니까.
혹시 그게 도리가 아닌 줄 알면서도 “너 ×대 나왔다며”라고 일부러 던진 거라면? ‘나도 ×대 나왔다’는 걸 주변에 알리고 싶은 것일 터. 음. ‘나도 ×대 나왔다’는 걸 좀 알아 달라는 뜻일 터. 음. 맞는 것 같은데, 거짓말은 아닌 모양인데 그렇다고 구원모 사장에게 “×대 나온 걸 알리고 싶을 땐 서울 캠퍼스가 아니라 경기도에 있는 캠퍼스였다고, 거기로 옮기기 ㅡ 편입하기 ㅡ 전에 다닌 학교는 따로 있다는 걸 먼저 밝히라고 요구할 것도 좀 아닌” 듯. 하여 사장이 노동자에게 가벼이 소리 높여 “너 ×대 나왔다며”라고 툭툭 던지지 않는 게 아무래도 좋을 성싶다.
여섯. “징계를 당한 직원의 배우자를 잘 압니다.”
“쉽지 않은 결론이었습니다. 한 가족의 가장에게서 밥그릇을 빼앗는 일일 수 있으니 왜 마음에 걸리지 않겠습니까.”
구원모 사장이 2014년 9월 18일 이은용 부당 해고 사태를 두고 전자신문 사내 게시판에 그리 말한 것까진 괜찮았다. 밥그릇. 음. 그래 뭐, 그리 말할 수 있겠지. 이은용 마음이 크게 흔들릴 게 없었다.
그러나… 구 사장은 “이번에 징계를 당한 직원의 배우자를 잘 압니다”라고 덧붙이지 말았어야 했다. “같은 부서에서 함께 일도 했습니다. 착하고 성실했습니다”라고 말하지 말았어야 했다. “징계를 결정하는 막판까지 가장 아른거렸던 사람입니다”라고 덧붙이지 말았어야 했다. “그래도 이런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심정을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말하지 말았어야 했다.
구원모 사장이 결정한 ‘징계’는 ‘부당 해고’였다. 사람 사는 이치에 맞지 않은 결정을 하면서 이은용과 같이 사는 친구가 “착하고 성실했”고 “막판까지 가장 아른거렸다”는 건 결코 해선 안 될 말이었다. 구 사장의 경망한 말이 빚을 세상 사람의 온갖 억측은 곧 비열(卑劣) 되어 이은용 가슴에 꽂혔다. 똑똑히 말해 두는데 이은용과 같이 사는 친구는 구원모 사장으로부터 “착하고 성실했다”는 칭찬을 듣거나 구 사장 눈에 “막판까지 가장 아른거릴” 까닭이 없다. 구 사장의 말에 상처를 입거나 명예를 더럽힐 이유도 없다. 욕된 말씀이다. 구원모 사장이 사죄해야 마땅하다.
이렇게 말해 보자. 이은용이 구원모 사장에게 ‘부당 해고’에 버금갈 해코지를 하게 됐다고 치자.
그러나… 이은용은 “구원모 사장의 딸 둘을 잘 안다”고 말하지 않겠다. “대여섯 살 때로부터 성인이 됐을 때까지 장례식장과 전자신문에서 몇 번 봤습니다. 착하고 예뻤습니다”라고 덧붙이지 않겠다. “막판까지 가장 아른거렸던 사람입니다”라고 말하지 않겠다. “그래도 이런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심정을 헤아려 달라”고 덧붙이지 않겠다. 결코 하지 말아야 할 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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