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銀容사說] 신문사 A… 앞날 안 보여
시름시름 앓는 신문이 많다. 앓다 스러질까 두려워 다들 근심과 걱정이 앞선다. 살아 보겠다고 발싸심했지만 병이 날로 깊어졌을 뿐이다.
앵벌이. 살아 보려 발싸심하다 스스로 돌아보니 그게 글쎄 구걸이나 도둑질 따위로 돈벌이하는 짓이었다. 그러니 푼돈깨나 던져 주는 자본가와 재벌에게 굽실거릴밖에. 독자를 발로 찬 거였지. 앞날을 걷어찬 거고.
광고. 신문사 앵벌이를 잘 나타내는 표지. 신문사마다 조금 낫고 못한 차이는 있겠으되 살림살이 흐름이 거의 매한가지이다. 시름하되 좀 지나치다 싶은 신문사 A의 사례를 들어 흐름이 얼마나 어두운지 가늠해 보자.
결론부터. 앞날이 보이지 않았다. 병든 까마귀 어물전 돌듯 빙빙 광고 옛 ‘구좌’를 돌았기 때문. 곶감 빼 먹듯 할 뿐 뭐 하나 새로운 게 없었다. 그렇다고 제 돈이나 곶감을 미리 맡겨 둔 게 아닌 터라 빼 먹을 때마다 ‘기사(記事) 같은 걸’ 줘야 했다. 기사는 ‘사실을 알리는 글’이기에 온전히 줄 수 없었고 ‘기사와 비슷한 걸’ 내줬다. 그런 걸 내주기 어려우면 광고 게재 횟수라도 늘렸다.
본보기를 들자면 예전엔 2000만 원쯤을 받고 신문에 광고를 네댓 번 싣는 것으로 넉넉했는데 수년 전부터 덤을 붙여 줬다. 자본가가 돈 내고 광고하기를 꺼리니 덤을 주며 꾀기 시작했던 거. 살아남으려는 발싸심이 늘면서 덤도 늘었고.
A의 덤은 2000만 원에 열 번쯤으로 늘더니 사사롭게는 이십 번, 심하게는 삼십 번이 됐다. 사사롭다는 건 A를 경영하는 자의 매출 증대 압박에 떠밀린 광고 영업 사원이 암암리에 이삼십 번으로 횟수를 늘렸다는 뜻. 2000만 원을 받고 광고를 삼십 번이나 실어 주기로 한 광고 영업 사원이 “일 잘한다”고 칭찬받는다니 마냥 웃을 일이 아니었다. 결국 한 번에 사오백만 원쯤 하던 A의 광고 가격이 삼백삼십삼만 원(2000만 원에 6회), 이백만 원(10회), 백만 원(20회), 심지어 육십육만 원(30회)으로 떨어졌다. 광고주와 계약하지 않은 채 신문에 광고를 펑펑 실은 뒤 나중에 손 벌려 돈을 주면 좋고 안 주면 할 수 없고 하는 ‘대포’까지 헤아리면 실제 가격은 더 떨어진 상태. 30만 원쯤으로 떨어뜨린 적이 있는가 하면 1년 전 광고 값을 한 푼도 받지 못하기도 했다니 그야말로 암울.
A에서 일하는 기자들이 한 면(쪽)에 쓴 기사의 가치를 66만 원이나 그 이하 광고비에 직접 견줄 순 없겠지. 하지만 66만 원쯤을 건네거나 ‘대포’여서 아예 돈을 건네지 않는 광고주의 눈에는 A나 A에서 일하는 기자가 미덥지 않게 마련. 기자나 신문이라기보다 “구걸로 돈벌이하는 것들”로 깔본 지 오래다.
더 큰 문제는 2000만 원에 열 번이나 이삼십 번씩 광고를 내주기로 한 약속을 ‘2년 안’에 지킬 수 없다는 거. A의 지면 가운데 1년간 광고를 담을 수 있는 쪽(판)수로는 도저히 약속한 만큼 해 낼 수 없다. 허투루 약속해 둔 게 대략 2년 치 쪽 수를 넘겼기 때문. 약속한 것만 소화해도 2년이 지나갈 거란 얘기. 광고 게재 횟수를 채우지 못하면 사기를 친 거나 마찬가지일 터. 속사정이 그러하니 ― A의 주식을 가진 개인이나 법인도 그런 형편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 같으니 — ‘A의 앞날’이 깜깜할 수밖에.
모든 신문이 그렇진 않을 것이되 A처럼 될 성싶은 곳 많고, A는 더 끔찍해질 듯하다. 그게 망징패조(亡徵敗兆)일진 모르겠으나 “앞날 보이지 않는” 건 틀림없을 것 같다. 캄캄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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