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역사기행
이영권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2004년.
#5 이 책, 읽을수록 여물다. “무속과 유교와 불교가 완전히 짬뽕된 형태(186쪽)”라는 ‘화천사 오석불’이나 관에서 ‘해신사(海神祠)’를 만든 이유 같은 속살이 차지다. “관에서 해신사를 마련한 건 정치적 포석일 수도 있다. 통제권 밖 민중 신앙을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였다. 이것은 민심을 얻기 위한 지방관의 지혜다. 민중의 정서를 거스르지 않고 함께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통치의 첫 번째 기술(198쪽)”이라 풀어냈다.
백성이 이반해 일어난 조선 후기 제주 민란. 그중 이재수의 난. 지은이는 이재수의 난을 소재로 삼은 영화를 두고 “그놈의 영화가 영 개판으로 만들어졌다……중략……감독이 제주의 역사, 제주의 정서를 몸으로 느끼진 못한 것 같다(210쪽)”고 썼다. 그야말로 ‘개판’이었던 모양이다. 지은이의 그 느낌 그대로 영화가 ‘개판’이었을 것으로 나는 믿는다.
제주 대정 홍살문 거리 비석. 이재수 난의 실상을 묘사한 비문. 특히 “제주 무뢰배들이 천주교에 입교해 그 위세를 믿고 탐학을 마음대로 하고 부녀를 겁간하여”라는 표현. “당시 천주교도들의 폐해를 아주 직설적으로 드러낸 것(219쪽)”인데 지금 비석엔 빠진 내용이라 했다. 끌끌. 꼭 감춰야 했던 모양이다. 대정 삼의사비 첫 문장에 “무릇 종교가 본연의 역할을 저버리고 권세를 등에 업었을 때 그 폐단이 어떠한가를 보여 주는 교훈적 표석이 될 것(222쪽)”이라고 쓰여 있단다.
간과할 수 없는 문장 하나 더. “민중은 사회 모순의 철저한 척결을 내세웠던 이재수를 진정한 장두로 생각했던 것 같다(221쪽)”고 보았다. 왜? “이재수는 민중적인 인물”이었기에. 실제로 이재수는 관노, 사령, 하인, 심부름꾼, 천민, 마부, 통인 등으로 기록됐다. “민중의 요구를 진정 해결해 줄 수 있는 사람은……중략……관노 출신 이재수였을 것”으로 지은이는 통찰했다.
정말이지 속살이 옹골차지 않은가. 이런 책을 품을 수 있어 기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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