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월드 피난

2005.02.18. 10:41 ㅡ 김유승, 박정희

eunyongyi 2020. 6. 30. 12:53

[14호]김유승과 키스트, 그리고 박정희

 

“저는 원래 연구원입니다. 언제나 연구원 시절로 돌아가고 싶었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2005년 2월 16일 저녁, 마포대교를 오가는 자동차 불빛이 끊임없이 창가를 물들였다. 김유승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원장의 얼굴에도 불빛이 어른거렸다.
첫 직장의 머리(首長)가 되는 것, 쉽지 않은 일이다. 김 원장은 1977년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연구원(화학전공)으로 시작해 2003년 4월 원장이 됐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40대라면 KIST에 대해 잘 알고들 있다. 우리나라 첫 국책 연구기관으로서 올해로 설립 39주년을 맞았다. 우리나라 최고 과학 영재(석사 이상)들의 연구공간이다.
“고 박정희 대통령 시절, 적극적인 과학기술 진흥정책에 힘입어 KIST가 생겼죠. 전두환 대통령도 과학기술에 관심이 많아 자급자족(연구 프로젝트 성과로 알아서 먹고 사는)형 KIST 연구원들에게 ‘월급’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노태우, 김영삼 대통령도 과학기술에 관심은 많았지만 상대적으로 소원했고, DJ 정권 때 국가 과학기술 예산이 크게 늘었습니다.”
박정희의 경제, 과학기술 중흥의지를 높게 평가하는 이들이 많다. 특히 경제활동인구로서 70년대를 살아낸 선배들은 더욱 그렇다. (모두가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전두환에게도 경제안정(?) 등의 공적(?)에 점수를 주기도 한다.
박정희, 전두환 경제정책의 잘, 잘못을 가리기에 앞서 그들의 반민주 쿠데타부터 제대로 응징하고 정리해야 하는 것 아닐까. 뿌리가 이상하면 줄기, 잎, 열매도 이상하게 마련.
최수문 서울경제 기자는 “우리나라가 짧은 기간에 극빈국에서 잘 사는 나라로 부상해 세계가 주목하는데, 박정희 같은 사람이 잘해서라기보다는 원래 잘 살던 만큼의 저력을 회복한 것”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