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제숙 지음. 황성원 옮김. 동녘 펴냄. 2016년 6월 30일 초판 1쇄.
연구참여자 중 90%가 군사정권에 맞선 학생운동가 출신이었다. 또한 이들은 1990년대 초 군사정권의 종식과 민주정권 쟁취의 경험 역시 공유했다. 많은 연구참여자들이 (군부독재의 남성 중심적이고 독단적인 위계질서를 빼다 박은) 남성 중심적인 학생운동 조직에 대한 비판적인 자기성찰 과정에서, 학생운동 조직보다 덜 경직되고 주변적인 지위와 정체성에 개방적인 여성운동과 (시민사회운동이라는 범주에 속하는) 비정부기구에 참여하게 됐다(21쪽).
기독교라 해서 보수적 성도덕과 거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 부부 간의 출산을 위한 섹스만을 합법적인 섹슈얼리티로 인정하는 보수적인 젠더 규범에 토대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국에서 지배적인 기독교 교파를 주도한 것은 근본주의적인 개신교도들이었기 때문에, 보수적 전통을 뒤집기가 더 어려워졌다고 볼 수 있다(50쪽).
1920년대와 1930년에도 일부 한국 여성들은 결혼과 가족제도를 벗어난 삶을 추구했다.······중략······자신의 자유로운 의지대로 살아가는 고등교육을 받은 여성의 이미지는······중략······1950년대 말의 짧은 자유주의 레짐에서 일시적으로 다시 등장했다. 하지만 이런 시절과 분위기는 잠시뿐이었다. 결혼하지 않고 자유로운 삶을 살고자 하는 여성들은 그로부터 한참 뒤 해외여행이 자유화된 1989년쯤 되어서야 늘어났다(52쪽).
준희는 이렇게 말했다. “결혼하지 않은 남자가 혼자 살겠다고 부모님 집을 나오면 독립적인 성인이라고 존중을 받죠. 반면 결혼하지 않은 여자가 부모님 집을 나오면 결혼을 포기했거나, 결혼시장에 진입할 수 없는 이유가 있는 게 아닌지 의심을 받아요(81쪽).”
대기업에 우호적이었던 발전주의 국가 한국은 개별 가정에는 은행에서 돈을 빌리는 것이 아니라 저축을 하라고 장려했고, 이를 토대로 은행에는 대기업에 저리로 돈을 빌려주라는 압력을 넣었다(102쪽).
특히 이들 좌파 성향의 여성들은 교조적이고 남성성 위주의 문화로 악명 높은 좌파 학생운동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투하는 과정에서 (여성주의 의식의 고양이라는 의미에서) 자신에 대한 발견을 했다고 회상했다. 이들이 최저임금을 받으며 일하는 조건을 선택했던 것은 여성과 전직 학생운동가들에 대한 구조적인 차별 때문이기도 했지만, 이들 스스로가 자신이 향유할 수 있는 일자리와 생활양식을 추구했기 때문이기도 하다(133, 134쪽).
도진은 농민운동에 깊이 간여하면서 좌파 내 여성차별을 크게 느끼게 됐다. 그녀는 농민운동 집단이 여성구성원을 홀대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도진의 친구였던 여성 학생운동가가 지역운동에 참여하고 있던 한 남성 농민에게 성폭행을 당하는 일이 발생하자 같은 학교 남성 학생운동가들은 농학 연대가 깨질까 봐 이를 쉬쉬했다. 그 일 이후 도진은 여성운동 내에서 새로운 운동의 발판을 찾기 위해 서울로 옮겨왔다. 도진은 성차별주의자 남성 동료들과 자신도 크게 다르지 않았음을 고통스럽게 회상했다. 자신도 여자였지만 계급이나 통일 문제가 아닌 젠더나 다른 사회 문제에는 둔감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당시의 자신이 명예남성이었다고 회고했다(138쪽).
준희는 다음과 같이 적절하게 설명했다. “민주화가 한국 자본주의의 문제를 해결하지는 않았어요. 그보단 자본주의를 더 촉발시킨 것 같아요. 사실 이젠 ‘민주화’라는 말도 그렇게 자주 듣지 못해요. 자유주의적인 민주화와 자본주의의 가속화는 거의 동의어가 아닌가 싶기도 해요(187쪽).”
(주 1장) 3. 유교주의 전통의 역사는 오래됐으나 성리학 이후 성립된 보수적 유교주의가 한국에 정착한 것은 조선 말기인 17세기 이후다(197쪽).
19. 권명아의 <무한히 정치적인 외로움>(2012)은 지난 20년간 출간된 비혼여성들의 베스트셀러와 대중 문화를 분석함으로써 비혼여성의 정치적 고립감과 정동을 살핀다(199쪽).
(주 2장) 18. 내 집 장만을 일생일대의 집착에 가까운 욕망으로 품는 것은 한국인에게만 해당되는 사회적 산물이 아니다. 이 같은 꿈은 20세기의 역사적인 구성물로 이해할 수 있다. 정치적, 경제적으로 빈번한 격랑이 휘몰아쳤던 20세기에는 사람들이 최소한의 안정을 추구했다. 가정의 상향이동을 위한 핵심 수단으로서 주택소유가 가진 가치를 점점 높이 평가하게 됐다. 한국은 국가적으로 아직도 농업적인 생산양식을 ‘참’되고 ‘전통’적인 유산이라는 생각을 고수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이는 땅에 대한 애착과 연결될 수도 있다(2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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