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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크 독트린

eunyongyi 2021. 3. 20. 01:20

나오미 클라인 지음. 김소희 옮김. 살림비즈 펴냄. 2008년 11월 20일 초판 1쇄. 2008년 12월 19일 초판 2쇄.

 

프리드먼은 1970년대 칠레의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장군의 자문으로 일할 때, 대규모 충격이나 위기를 이용하는 방법을 처음 알아냈다. 피노체트의 과격한 쿠데타로 칠레인들은 충격에 빠졌다. 게다가 하이퍼인플레이션으로 정신적 충격을 받고 있었다. 프리드먼은 피노체트에게 세금 감면, 자유무역, 민영화된 서비스, 사회지출 삭감, 탈규제화 등의 신속한 경제 변혁을 조언했다. 심지어 칠레의 공립학교를 바우처로 자금을 조달하는 사립학교로 대체했다. 유례가 없는 가장 극단적인 자본주의로의 개조였다.······중략······이러한 고통스런 기법을 지칭할 용어도 만들어 냈다. 바로 경제적 쇼크요법이다. 그 이후 수십 년 동안 각국 정부들이 전면적인 자유시장 프로그램을 실시할 때마다 쇼크요법이 따라오곤 했다(16쪽).

 

1970년대 아르헨티나 군부체제에서 일어난 3만 명의 ‘실종’은 시카고학파 실험의 핵심이었다. 희생자들은 대개 좌파 운동가들이었다(19쪽).

 

프리드먼도 알고 있었듯이, 커다란 위기상황은 유권자들의 뜻을 무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내고 ‘경제기술관료’에게 국가를 넘겨준다(20쪽).

 

전쟁과 재난 대처가 완전히 민영화되는 바람에 오늘날은 그 자체가 새로운 시장이다. 굳이 전후 경제호황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 요컨대 수단이 목적이 된 것이다(24쪽).

 

그러나 백지상태는 나타나지 않았다. 단지 파괴되고, 산산조각 난 데다, 분노에 찬 사람들만 있을 뿐이었다. 그들은 이라크인들이 저항할수록 더 많은 충격을 가했다(67쪽).

 

프리드먼은 건강보험, 우편배달업무, 교육, 노후연금, 심지어 국립공원까지 민영화할 것을 주장했다. 또한 대공황 이후 대중의 폭동을 막기 위한 국가, 기업, 노동자 간의 불안정한 협정이었던 뉴딜정책을 폐지하라고 과격하게 주장했다. 노동자들이 간신히 획득한 보호조치나 국가가 시장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만든 서비스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시카고학파의 반혁명은 모든 걸 다시 이전으로 돌리고 싶어 했다(78쪽).

 

 항상 수학과 과학의 언어로 포장했지만, 실상 프리드먼의 미래상은 대기업의 이득과 일맥상통했다(79쪽).

 

 시카고 보이즈는 피노체트에게 각 분야에서 정부가 단번에 손을 떼면 ‘자연스러운’ 경제법칙이 즉각 균형을 되찾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시장 내에 불건전한 요소가 개입돼 있음을 암시하는 경제적 과열인 인플레이션도 마법처럼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들은 전혀 잘못 알고 있었다. 1974년 인플레이션은 375퍼센트에 달했다. 이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치이자, 아옌데 정권의 최고 수준보다 두 배나 높았다. 빵 같은 생필품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게다가 피노체트의 ‘자유무역’ 실험으로 값싼 수입품들이 넘쳐났고, 칠레인은 일자리를 잃었다. 국내 산업은 외제품과 경쟁하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실업률은 최고치를 갱신했으며 기아가 만연했다. 한마디로 시카고학파의 첫 실험실은 완전한 실패작이었다(107쪽).

 

프리드먼의 처방책은 쇼크요법을 생각하면 금방 이해될 것이다. 피노체트는 급작스러운 긴축정책이 경제에 충격을 줘 건강하게 만든다는 검증되지 않은 이론에 근거해 고의로 국가를 심각한 퇴행상태로 몰아넣었다. 이런 논리는 1940 ~ 1950년대에 다량의 전기쇼크요법을 처방한 심리학자들의 생각과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다. 그들은 고의적으로 주입된 다량의 충격이 환자의 두뇌를 마법처럼 재부팅할 거라고 생각했다(110쪽).

 

경제상황이 너무 불안정한 탓에, 피노체트는 결국 아옌데가 했던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즉 많은 회사들을 국유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시카고 보이즈는 실패에 직면했다(114쪽).

 

살바도르 아옌데······중략······“그들은 무력으로 우리를 정복할 겁니다. 그러나 범죄나 무력을 통해 사회의 발전과정을 멈출 수는 없습니다. 역사는 우리의 것이며, 국민들이 만들어 나가는 것입니다(138쪽).”

 

시카고학파의 프로젝트는 남미에서 말 그대로 비밀 고문 캠프 위에 지어졌다(153쪽).

 

프리드먼은 피노체트의 전반적인 통치 형태가 민주주의의 폭력적인 파괴가 아니라 오히려 민주주의의 창조라고 말했다. 당시 17년간 독재가 계속되면서 수만 명이 고문을 당했는데도 말이다(156쪽).

 

시카고 보이즈는 존엄성을 누리며 사는 데 필요한 것들을 수백만 시민들에게서 빼앗으려 했다.······중략······당시 남미에서 감히 누구도 대놓고 묻지 못했던 상당히 중요한 질문이 있다. 신자유주의는 본디부터 폭력적인 이데올로기인가? 잔인한 정치적 숙청과 인권 탄압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표는 무엇인가(167쪽)?

 

대처는 영국 노동자들을 ‘내부의 적’으로 규정한 뒤, 파업 진압에 국가의 힘을 총동원했다. 경찰봉을 든 시위진압 기마경찰 8,000명을 내세워 위협을 가했으며, 공장 피켓라인을 급습해 700명의 부상자를 냈다. 장기간의 파업 동안에 부상자 숫자는 수천 명에 달했다(183쪽).

 

리카르도 그린스푼······중략······그의 설명에 따르면 케인스나 발전주의식 접근법은 주요 행위자인 정부, 노동자, 농부, 노조 간의 협상을 통해 부담을 나눈다. 또한 임금이나 물가처럼 수입 관련 정책에 대한 합의를 도출해 내면서, 동시에 안정화 조치를 실시한다. “반대로 시카고학파 정설은 쇼크요법을 통해 모든 사회적 비용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부과한다.” 볼리비아에서 바로 그런 일이 일어났다(197쪽).

 

천안문 사태의 진실은 권위주의적 공산주의와 시카고학파 자본주의가 매우 유사하다는 것이다. 그들은 기꺼이 정적들을 제거하고, 저항을 일절 허용하지 않으며, 백지상태에서 새롭게 시작하려 했다(250쪽).

 

클린턴과 부시 행정부의 목표는 러시아에서 기존의 국가를 지우고 무자비한 자본주의자들을 위한 환경을 만드는 것이었다. 유럽연합과 G7과 IMF는 말할 것도 없다. 그렇게 하면 자유시장 민주주의가 시작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갓 학교를 졸업한 미국인들이 시장을 관리했는데 그들은 자신감이 과도했다. 폭탄만 없을 뿐이지 이라크와 마찬가지였다(310쪽).

 

시카고 보이즈와 조언자들은 러시아의 제도들을 파괴시키고, 탐욕을 이용해 국가를 구원하려 했다.

 재앙적인 결과는 러시아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지난 30년 동안 시카고학파의 실험 자체가 대규모의 부정부패였다. 그것은 안보를 강조하는 국가와 대기업과의 조합주의적 결탁이었다. 칠레의 피라니아들, 아르헨티나의 패거리 자본주의, 러시아의 과두재벌, 엔론사의 에너지 사기, 이라크 ‘자유사기지대’가 그에 해당한다(312쪽).

 

1932년 대통령 선거에서 미국인 100만 명이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성향의 후보자에게 투표했다. 점점 더 많은 미국인들이 휴이 롱에게 관심을 가졌다. 그는 루이지애나의 상원의원으로 대중의 인기를 끌었고, 모든 미국인에게 연봉 2,500달러를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35년 뉴딜정책에 더 많은 사회복지혜택을 추가한 이유를 묻자, 루스벨트 대통령은 ‘롱의 기세를 꺾기’ 위해서였다고 말했다(323쪽).

 

 모든 제한에서 해방된 자본주의는 바로 시카고학파 경제학의 본질이다. 또는 신자유주의로 알려져 있다. 미국에서는 신보수주의로도 불린다(326쪽).

 

1995년 9월, 온타리오 주 교육부 장관인 존 스노벨렌의 비디오가 캐나다 언론에 공개됐다. 비디오엔 그가 밀실회담에서 공무원들과 나눈 대화가 담겨 있었다. 그는 교육비 삭감과 대중이 반기지 않는 개혁을 발표하기 전에 공포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신이 얘기하는 것보다’ 더욱 끔찍한 내용의 정보를 흘려 공포 분위기를 내라는 것이다. 그는 이것을 ‘유익한 위기 창출’이라고 불렀다(333쪽).

 

 한편 한국의 텔레비전 방송국들은······중략······<당신의 금을 내놓으세요>라는 저질 게임쇼를 방영했다. 세계 금값을 움직일 수 있을 정도인 200톤의 금이 모아졌다. 그런데도 한국의 환율은 계속 곤두박질쳤다.

 대공황 시기에 그랬듯 위기는 자살로 이어졌다. 가정에는 평생 저축이 사라지고, 중소기업 수천 개가 문을 닫았다. 한국의 자살률은 1998년 50퍼센트 상승했다. 60세 이상의 연령대에서 가장 급증했다. 나이 든 부모들의 고생하는 자녀들에게 경제적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한국 언론은 가족 전체의 집단 자살이 놀라울 정도로 급증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가장의 죽음만이 자살로 분류되고 나머지는 살인으로 등록된다. 때문에 당국은 실제 자살 숫자는 발표된 수치보다 훨씬 높다고 지적했다.

 아시아의 위기는 전형적인 공포의 악순환 때문이었다. 공포를 잡을 유일한 방안은 1994년 데킬라 위기 때 멕시코의 환율을 구했던 조치와 같았다. 간단히 말해 즉각 신속하고 단호하게 제공된 차관뿐이었다(341쪽).······중략······그러한 시기적절한 조치가 아시아의 앞날엔 없었다. 사실 위기가 닥치자마자 놀랍게도 영향력 있는 재정기관들은 단합된 목소리를 냈다. 요컨대 아시아를 돕지 말라는 것이다.

 밀턴 프리드먼은 당시 80대 중반의 나이에 들어섰다. 그는 아주 오랜만에 CNN에 나와 뉴스 앵커 루 돕스에게 어떠한 원조 자금도 제공해서는 안 되며, 시장 스스로 해결하도록 두어야 한다고 말했다(342쪽).

 

 외국 다국적 기업들은 인도네시아, 태국, 한국, 말레이시아, 필리핀에서 단 20개월 만에 186개 회사를 인수합병했다(355쪽).

 

 이른바 민영화된 경찰국가를 만들려는 선발대는 부시 행정부 요직에서 일했다. 딕 체니, 도널드 럼스펠드, 조지 W 부시가 바로 그들이다(370쪽).

 

가령 야후는 중국 정부와 협력해 반체제 인사들의 위치를 찾아낸다. AT&T는 미국 국토안보부를 도와 영장도 없이 고객들을 도청한다. 부시 행정부는 이러한 관행이 근절됐다고 주장하지만 말이다(387쪽).

 

큰 계약을 제공하는 정부 부서에서 멋진 직함을 얻어 내부 정보를 모을 때까지 공직에 있어라. 그리고 사임한 뒤에는 사기업체 동료들에게 정부와 연결될 수 있는 방법을 팔아라. 공직 근무는 재난 자본주의 복합체가 어떤 일을 해야 할지 파악하기 위해 갔다 오는 사전답사에 불과했다(403쪽).

 

 지난 35년 동안 산티아고부터 모스크바, 베이징, 부시의 워싱턴에 이르기까지 어디가 됐든간에, 재계 소수 엘리트와 우파 정부의 동맹은 일종으로 탈선으로 간주됐다. 마피아 자본주의, 과두재벌 자본주의, 부시의 ‘정실(Crony) 자본주의’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그것은 일탈이 아니었다. 민영화, 탈규제화, 노조박멸이라는 세 가지 강박관념을 갖고 있는 시카고학파 운동이 이끄는 세상이었다(403쪽).

 

헤리티지 재단은 1973년 설립된 이후 줄곧 프리드먼주의의 근거지였다(451쪽).

 

요컨대 이라크에서 발생한 폭력사태는 미국이 이라크에서 민주주의를 부인한 것에 대한 폭력적 반발 및 이념적 반발이었다(465쪽).

 

 이라크의 쇼크요법가들도 역시 여러 층을 파괴하며 새로운 모델 국가를 세울 백지상태를 추구했다. 그러나 자신들이 만들어 낸 폐허 무더기만 발견했을 뿐이다. 그리고 수백만 명이 심리적 육체적으로 무너졌다. 사담 후세인에 의해 무너지고, 전쟁에 의해 무너지고, 서로에 의해 무너졌다. 부시의 재난 자본주의자들은 이라크를 정화시킨 게 아니라 오히려 혼란스럽게 휘저었다. 과거의 흔적이 없는 백지상태가 아니라 오래된 원한을 수면으로 떠오르게 했다. 그 결과 카바라에서, 사마라 사원에서, 시장에서, 정부 부서에서, 병원에서 유혈사태가 일어났다.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국가는 충격을 가한다고 해서 제로 상태로 재부팅되는 게 아니었다. 그들은 파괴하고 또 파괴할 뿐이었다(474쪽).

 

“그들에게 약간의 땅을 내주었더니, 이제는 땅 전부를 달라고 하고 있어요(511쪽).”

 

 시카고학파 운동이 승리를 거둔 곳은 어디든지 인구의 25 ~ 60퍼센트에 달하는 만성적 하류계층을 만들어 냈다(514쪽).

 

그런데도 가장 큰 요인은 좁은 범위의 군산복합체가 아닌 재난 자본주의 복합체로 확장된 데서 찾을 수 있다(538쪽).

 

석유와 가스 산업은 재난경제와 긴밀히 연결돼 있다. 재난의 숨겨진 원인이자 가장 큰 수혜자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석유와 가스 산업은 재난 자본주의 복합체의 명예직원으로 불려야 할 것이다(540쪽).

 

 밀턴 프리드먼은 2006년 11월에 사망했다(563쪽).

 

“에콰도르는 주권국가입니다.” 외무부 장관 마리아 페르난다 에스피노사가 말했다. “따라서 어떤 외국 군대도 필요하지 않습니다(577쪽).”

 

아르헨티나에선, 파산한 사업장 200곳이 노동자들에 의해 다시 회복됐다. 노동자들은 사업장을 민주적으로 운영하는 협력체로 바꾸었다. 투자자들이 떠나 경제적 충격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없었다(577쪽). 이미 투자자들은 다 떠나고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과거의 실수를 고쳐 나가는 실험은 새로운 종류의 재건이라 하겠다. 서서히 진행된 신자유주의의 재난으로부터 벗어나 경제를 재건하려는 것이다.······중략······한마디로 일상생활에서의 민주주의다(578쪽). 

 

8장 주 (22) 전 시카고 대학 교수 겸 연구원 스탠리 피셔는 1994년에 IMF 부총재였고, 라구람 라잔은 2003년에 IMF 수석 경제전문가였으며, 마이클 머사는 1991년에 IMF 연구실 책임자였고, 셰단양은 2003년에 IMF 아프리카 부서 선임 경제전문가로 일했다(6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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