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식 지음. 위즈덤하우스 펴냄. 2017년 일월.
지은이는 내 페이스북 친구. “1987년에 한양대 자원공학과에 입학”했다는 얘기에 내 가슴 안에서 까닭 없이 한두 꺼풀 벗겨지는 성싶은 느낌 일었다. 1987년. 그때 나도 뻣뻣한 머리와 가슴 들고 ○○대 신문방송학과에 갔기 때문. 열아홉 살 팽팽한 내 머리와 가슴이 마구 뜨거워졌으되 두려움도 함께 커진 그 무렵에 같은 서울 하늘 아래에 있었다는 것 말고는 서로 닿을 게 없는데… 까닭 모를 꺼풀 벗겨짐은 대체 뭘까. 그저 알쏭할밖에 달리 풀어낼 만한 게 잡히지 않았다.
음. 나는 1987년 그 뜨겁던 봄과 여름, 학교 중앙도서관에 틀어박힌 학과 친구와 복학생 형을 멀리했다. 싫기도 했고. 영어에 꽂혀 도서관을 좋아했다는 지은이가 나와 가까운 곳에 있었다면 아마도 비슷한 거리로 동떨어졌을 터. 그 간격은 오로지 뻣뻣 팽팽했던 내 머리와 가슴 탓. 이젠 내 머리와 가슴도 아주 조금은 말랑말랑해졌으니 달리 오해하진 마시길. 부러움이 부른 투정쯤으로 여겨 주시길 바랍니다.
음. 나는 1987년 그 뜨겁던 봄과 여름, 거리로 나섰다 하여 또 다른 내 페이스북 친구 — 옛 친구이기도 한 88학번 ― 한철수처럼 온몸과 마음 다 던진 것도 아니었다. 두려워서. 조금씩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고 돌아보니 어느 틈엔가 철수와 멀찍이 떨어졌던 터. 그 간격은 오로지 야들야들 물렀던 내 머리와 가슴 탓. 이젠 내 머리와 가슴도 아주 조금은 단단해졌으니 그저 대견한 노릇. 부끄럼이 부른 투정쯤으로 여겨 주시길 바랍니다.
나는 사실 ‘자기 계발하라’는 책을 잘 읽지 않는데 페친 출간 알림에 끌려 죽 삼켰네. 내가 영어 익히던 때 되새기며. 신문사 시험 겨냥해 독해•영작에 매였을 때. 바다 밖 나라 취재에 쓰려 했을 때. 국제 — 외신 ― 면에 기사 쓸 때. 음. 내 나름대로 수첩에 이런저런 말 따로 써 두고 틈 날 때마다 외웠고 소설 읽었으며 에이에프케이엔(AFKN) 라디오 꾸준히 들었는데… 아이고, 지은이에 견주니 새 발 피였구나 싶다. “참 대단하시네요. 영어 잘할 만하십니다. 부럽네요. 저도 땀 더 흘려 보겠습니다. 아주 조금은 더 쉬 말하고 싶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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